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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2) 양심의 개념
이병창 2020.03.18 24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2) 양심의 개념


1) 양심적 자아에 이르기까지

이어서 헤겔은 양심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그 정신 장에서 등장했던 이전의 자아 개념과 대비하여 설명하려 합니다. 먼저 이성 장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가에 관해 객관적 행복, 모두의 행복이라는 개념 즉 이성이 제시되었습니다.


정신 장에선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실천적 의지의 측면을 다루죠. 여기서는 이런 이성을 목적으로 실현하려는 의지 즉 일반적 자아(또는 의지)와 개인적인 주관적 목적을 추구하는 욕망, 개별적 자아(또는 의지) 사이의 관계가 문제 됩니다.


A 절 진정한 정신의 장[그리스 시대]에서는 아직 개별적 자아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성적 실체 즉 민족의 관습을 무의식적으로 실현하죠. 그 가운데 개별적 자아가 점차 성장하면서 인격이라는 자아가 출현합니다.


이 인격은 형식적으로는 상호 인정을 받은 일반적인 자아입니다만 그 내용은 자의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아입니다. 개별적인 자의적 자아는 내용적으로는 상호 대립합니다. 그 결과 개별 인격의 대립의 결과 자의적인 황제의 전제주의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것은 나중에 홉스가 만인의 상호 투쟁을 통해 절대주의를 설명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인격의 현존은 승인된 존재이다. 인격이 실체 없는 자아이듯이 인격의 이런 현존은 추상적인 현실이다.... 일반자[황제]는 자기 내에 어떤 구별을 갖지 않으며, 자아는 내용이 충족되지 않으며 자아는 자기 자신을 통해 충족되지도 않는다.”


두 번째 출현한 자아는 개별적 자아이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일반적 자아입니다. 그게 신앙을 통해 출현하죠. 계몽은 세상을 전전하는 교양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주관적 자아를 비판합니다. 그는 세계를 일반적 자아의 눈으로 보죠. 하지만 그 자신은 자기의 주관성을 보지 못합니다.


여기서는 계몽의 자아는 데카르트의 자아입니다. 데카르트의 자아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일반적 자아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 자아는 경험적인 개별 자아의 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카메라가 개인의 머리에 위치해 있는 것과 같죠. 결국 주관적인 세계인데, 계몽적 자아는 자기가 객관적으로 본다고 믿습니다.


이런 일반적 자아가 여전히 자기가 부착된 계몽의 개별적 자아를 파괴하는 과정이 곧 절대적 자유의 공포입니다.


“이런 절대적 자유의 자아 속에서는 개별성과 보편성의 최초의 직접적인 통일성[인격]은 분리된다. 일반자는 순수한 정신적 본질, 인정된 존재 또는 일반적인 의지와 지로 머무르면서, 자아의 대상이나 내용이 되고 자아의 일반적인 현실이 된다. 그러나 일반자는 자아에서는 자유로운 현존의 형식을 얻지 못한다. 일반자는 이런 자아 속에서 어떤 충족에도 이르지 못하고 어떤 긍정적 내용에 이르지 못하며, 어떤 세계에 이르지 못한다.”


이런 절대적 공포를 통해 주관적 자아가 일반적 자아를 수용하면서 자기 확신하는 정신이 출현합니다. 첫 번째가 도덕적 의식이고 여기서는 일반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 사이에 끝없는 전치가 일어납니다. 이런 전치가 극복되고 양자가 통일에 이르면서 양심이 출현하게 되죠.


2) 양심의 개념

앞에서 인격, 계몽적 자아, 도덕적 의식을 거치면서 양심이 출현하는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출현한 양심은 개념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됩니다.


“도덕적 의식이 양심이 되면서, 그의 자기 확신 속에서 이전에 공허한 의무에 내용을 얻는다... 이런 자기 확신은 직접적이므로, 도덕적 의식은 [여기서] 현존 자체를 얻는다. ”


“양심은 구체적 도덕적 정신이다. ... 여기에서 순수 의무와 그것에 대립하는 자연은 동시에 지양된 계기가 된다. 구체적 도덕 정신이란 직접적인 통일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도덕 정신이며 그 행위는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도덕적 형태이다.”


이런 규정에서 잘 설명되듯 도덕적 의식에서 서로 분열되어 끊임없이 전치되던 두 계기 즉 즉자와 자아가 여기서는 통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자란 곧 도덕적 법칙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추상적 도덕법칙이 아니라 구체적 도덕법칙이 됩니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서 그 실현이 이제 확실해지죠.


자아란 곧 개별적인 욕망, 감성을 의미하는데 도덕적 의식에서 순수 의지와 대립했으나 여기서는 순수 의지, 자유 의지와 통일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도덕 법칙을 즉각적으로 실현하면서 그 속에서 욕망과 동일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죠.


3) 인식의 직접성

그런데 헤겔은 이런 양심 개념을 설명하는 가운데 이미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양심에서 이런 즉자와 자아의 통일은 직접성의 한계 내에 머무른다는 겁니다. 그 직접성이 어떤 의미인지는 곧 설명됩니다.


우선 구체적 현실에서 어떤 도덕 법칙에 따라 행위 해야 하는지, 그 도덕 법칙 즉 현실에 맞는 구체적 도덕 법칙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양심은 그런 도덕 법칙을 직관적으로 인식하죠. 쉽게 말해서 매 순간 현실 속에서 그때 적합한 도덕법칙이 마음에 절로 떠오른다는 말입니다.


“양심으로서 인식하는 의식은 이런 행위의 경우를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인식한다. 그 경우는 양심이 인식하는 대로만 존재한다. 이런 인식은 인식이 대상과 다른 것인 한에서 우연적이다.”


이런 양심적 인식은 경험적 인식이 그렇듯이 현실의 각 경우를 개별적으로 경험한 것이거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공상이 아닙니다. 양심은 각 경우를 그 본질에 따라 인식하는 본질 직관적 인식이죠. 그런데 그가 인식한 것이 현실의 본질이라는 생각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확신에 불과한 거죠. 마치 신을 보았다는 사람이 이를 자기만이 확신하듯 말입니다.


그는 자기 확신을 타인에게 이성적으로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는 타인도 마찬가지로 자기와 같은 인식을 얻을 것이라 믿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직접적으로 인식의 감각적 확신 속에 그 본질대로 존재한다. 이 경우는 그런 인식 속에 있는 대로 있지만 다만 즉자적으로 그렇다.”


4) 즉각적 행동

양심의 직접성은 이처럼 인식에서뿐만 아니라 행위에서도 나타납니다. 양심은 자기가 인식한 도덕 법칙을 즉각적으로 실현하죠.


“이를 통해 실현으로서 행동이 의지의 순수한 형식이다. 즉 존재하는 경우로서 현실이 사유된 현실로 단순하게 전환하는 것이다.”


이런 즉각적인 행동은 “단순하고 비매개적이며” 즉 양심은 아무런 주저 없이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는 “내용의 변화 없이 순수한 개념을 통해 이행하는 것”입니다. 즉 양심의 행위는 도덕 법칙을 법칙 그대로 아무런 가감이나 변경 없이 실현하려 든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심은 무서운 측면이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중학교 여학생이 친구의 지우개를 훔쳤다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했습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양심의 명령에서 그는 지우개 하나를 훔치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던 겁니다.


5) 구체적 도덕 법칙

앞에서 도덕적 의식이 인식하는 법칙은 추상적입니다. 이 경우 어떤 행위의 경우에, 이는 일반성과 각 행위에 적절한 특수성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행위자가 어떤 관점에 서는가에 따라서 다른 도덕적 법칙이 적용되죠.


예를 들어 살인 행위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이를 범죄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를 질병의 관점에 접근합니다. 각자는 다른 도덕 법칙을 가지고 이 경우에 적용하게 되죠. 범죄의 관점에서는 이 사람이 고의성을 지녔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고의적인 행위만 처벌된다는 법칙으로 이 행위를 판단하죠. 반면 질병의 관점에서는 이 행위를 치유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합리적 이유인지, 무의식적 충동인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경우 어떤 법칙을 적용해야 할지 당혹하게 되면서 그때마다 비교와 검증을 시도하든가 아니면 심지어 어떤 행위가 일어나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양심은 그런 구체적 행위의 경우에 자기가 서야 할 구체적 도덕 법칙을 즉각적으로 판단합니다. 여기서는 행위에 주저가 있을 수 없으며, 비교나 검증이 불필요합니다.


“양심은 이런저런 의무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법을 인식하고 행위 하는 단순하면서도 의무에 합당한 행위이다.”


“양심의 단순한 도덕적 행위 속에서 의무들은 파묻어지고, 이 모든 개별적 본질에 직접적인 단절이 가해지면서 의무를 검증하려는 진동이 양심의 부동하는 확신 속에서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6) 신적 존재의 제거

도덕적 의식의 경우 항상 신적인 존재를 끌어들입니다. 만일 도덕적 법칙이 순수한 추상적 사유라면 그것의 실현은 신의 세계서나 가능하죠. 이를 위해서는 욕망이 영원히 순화되어야 하며, 신이 그 현실적 실현을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구체적인 도덕법칙을 행위 하려 한다면, 이는 그 자체로서는 도덕적이지 못하니 신적인 존재의 명령으로 보장되어야 하죠. 도덕적 의식은 이런 신적 존재를 의심하면서 결국 자신의 사유 속의 순수한 추상적 도덕으로 돌아려 하죠.


그러나 양심의 경우 구체적 도덕 법칙을 직관하면서 이를 양심을 통해 즉각적으로 실행하므로 이런 신적인 존재를 요청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양심은 이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확신”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양심]의 본질이다. 이런 확신을 [도덕적] 의식의 대립에 따라 고찰한다면, 고유한 직접적인 개별성이 도덕적 행위의 내용이며 그 형식은 개별적인 자아의 순수한 운동이다. 즉 그것은 인식이거나 또는 고유한 확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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