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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0) 도덕적 세계관에서 양심으로의 이행
이병창 2020.03.12 26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0) 도덕적 세계관에서 양심으로의 이행


1) 전치에서

앞에서 도덕적 의식에서 전치를 설명했습니다. 전치는 서로 대립적인 것이 동시에 요구되는 경우 불가피하게 일어납니다. 칸트의 도덕성은 순수 의무를 즉각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므로, 법칙과 행위, 순수 의지와 욕망, 추상적 도덕과 구체적 도덕과 같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동시에 요구되면서 전치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헤겔에게서 모순은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출구가 됩니다. 이런 전치를 통해 칸트의 도덕적 의식에서 서로 대립된 계기의 통일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절충적 관념에 맴돌던 모순의 계기는 즉 대립적이지만 동시적으로 존재하던 계기는 순수한 도덕적 본질에서 서로 다가간다. 도덕적 본질은 이런 그의 [대립된] 사상을 결합하지 못하고 차례차례 따라다니면서 항상 자기의 대립을 다른 대립을 통해 해소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의식은 여기서 도덕적 세계관을 포기하고 자기 내로 되돌아 피신하게 된다.”


그렇다면 도덕적 세계관을 넘어 어떤 새로운 정신이 등장하게 될까요?


2) 통일로

이런 전치는 도덕적 세계관이 겪는 모순이 절충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치를 통해 두 가지가 즉 도덕법칙과 그 실현, 순수 의지와 욕망, 추상적 도덕과 구체적 도덕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죠.


“절충이 기초하고 있는 구별은 필연적으로 사유되고 정립되어야 하는 구별이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본질적인 것이며, 더는 말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구별로 된다. 동일한 것 즉 현존이나 현실은 .... 무실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것이다. 순수 의무 또는 것을 본질로 아는 지식은 절대적으로 ... 피안에 있는 것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동시에 현실적 존재 속에서만 존재하는 ...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현실과 순수 의무는 동시에 이중적인 것으로서, 즉 긍정적인 것인 동시에 부정적인 것으로 인정됩니다. 그 결과 순수 의무와 현실을 구별했던 도덕적 의식은 무너지고 새로운 정신이 출현하게 됩니다.


“도덕적 의식은 구별을 더는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면서 현실을 무실적인 것이고 동시에 실재적인 것으로 표현하며, 순수한 도덕성을 진정한 본질로 동시에 본질을 결여한 것으로 언표 하는 가운데 여기서 분리된 사상을 함께 언표 하면서...”


이제 도덕적 의식은 자신이 전개했던 전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면서 이런 자신이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구분된 것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양심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는 그가 비진리로 여긴 것을 진리로 주장하는 비진리로부터 혐오감을 가지고 자기 내로 복귀한다. 그것이 순수 양심이다.”


3) 양심의 개념

양심은 곧 상황마다 구체적인 도덕 법칙을 즉각적으로 인식하며, 도덕 법칙을 의무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하며, 피안이 아닌 현실 속에 도덕 법칙이 실현 가능하다 믿습니다. 여기서 도덕적 의식에서 분리된 세 가지 즉 법칙과 그 실현(행복), 순수 자아와 욕망, 추상적 도덕과 구체적 도덕이 하나로 통일되죠.


“양심은 자기 내에서 단순하게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이며, 그런 관념의 전치 없이 직접적으로 양심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진리를 이런 직접성 속에서 갖는다.”


5) 위선에 대한 경멸

헤겔은 이런 순수 양심은 도덕적 세계관에서 “진리란 사칭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획득된 의식’이라고 합니다.


“도덕적 의식은 이런 사칭된 진리를 항상 그의 진리로 사칭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덕적 의식은 자신을 대상적인 관념으로 표현하고 서술해야 하지만 다만 전치만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상적 관념이란 관념의 대상적인 실현을 고려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도덕적 의식은 실현과 대립하면서도 항상 이를 요구한다는 것 때문에 이런 전치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도덕적 의식의 이런 절충, 전치를 위선으로 경멸하죠.


“절충주의는 따라서 사실상 위선이다. 그러한 전치에 대한 경멸은 이미 이런 위선에 대한 최초의 표현이다.”


4) 내로남불

생각해 보면 의무를 강조하는 자의 위선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의무론자의 가장 유명한 위선이 소위 내로남불이죠. 내가 하면 낭만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전치입니다. 의무론자는 타인에게는 의무를 요구하고 자기에게는 현실을 인정합니다. 의무와 현실 사이의 전치가 여기서는 타인과 자기 사이에 전치로 대체되죠.


이런 전치가 일어나는 근본적 이유는 그것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마음이고 결혼은 현실입니다. 마음에 속하는 사랑은 늘 유동적이고 반면 현실에 속한 결혼은 고정되어 있죠. 따라서 사랑은 흔들리는 마음을 고정하기 위해 결혼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의 유동성을 파괴하죠. 여기서도 서로 대립하는 것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결과적으로 전치가 일어나게 되는데, 사랑을 하면 사랑을 붙잡으려고 결혼하고 싶어지고 결혼하면 다시 사랑의 유동적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이런 전치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면 곧 내로 남불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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