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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1) c 항 양심으로의 이행
이병창 2020.03.18 23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1) c 항 양심으로의 이행


1) 양심 절

정신은 A 절 그리스 로마의 정신을 다루고, B 절은 소외된 정신 즉 교양과 계몽주의를 다룹니다. 그리고 마지막 C 절은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인데 먼저 a, b 소절에서 칸트의 의무 의식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이어 c 절에서 자기 확신하는 정신의 핵심이 되는 양심을 다룹니다.


이 양심 소절로 정신 장은 마감되고, 이어서 종교 장이 시작됩니다. 이 종교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계시종교가 마지막 장인 절대정신에 이어집니다. 양심 개념이 정신 현상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볼 때, 헤겔은 이 양심 개념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심 개념의 한계를 아주 깊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양심이 종교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설명합니다.


2) 헤겔과 낭만주의

헤겔이 다루는 이 양심 개념은 물론 칸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자의 양심 개념입니다. 헤겔과 낭만주의자의 관계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일반적으로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쓰기 직전 1800년 전후 셸링의 초청을 받아 예나에 머무르면서 셸링의 자연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내가 보기에 어쩌면 그것은 셸링의 영향이라기보다 횔덜린과 셸링, 헤겔이 이 시기 동시적으로 이런 낭만주의적 철학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은 셸링이 아니라 비극적 시인 횔덜린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미 횔덜린이 엔 카이 판 즉 “하나가 전체”라는 사상을 전개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1800년 경 셸링은 무차별성 개념에 이릅니다. 그리고 1801년 셸링은 낭만주의 문학 이론가 아우구스트 슐레겔의 부인이자, 낭만주의자의 뮤즈였던 카롤리네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합니다. 이 시기 이후 헤겔은 낭만주의를 비판하게 됩니다. 정신현상학 서문에서는 이런 낭만주의의 한계가 잘 지적되어 있죠. 헤겔은 셸링의 무차별성 개념을 비판하면서 “모든 소를 검은 소로 그려낸다"라고 비판합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낭만주의자와 헤겔의 대결은 그 후 더욱 심해집니다. 이런 대결은 정치와 연관되면서 아주 복잡하게 전개되죠. 헤겔은 프러시아 개혁주의자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그 결과 베를린 대학의 교수, 그리고 총장이 되죠.


프러시아 개혁파는 나폴레옹의 지배 시절 득세했으나 나폴레옹이 물러난 다음 프러시아는 다시 반동파가 장악합니다. 반동파는 낭만주의자를 이용하죠.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파와 낭만주의파 사이의 대결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슐라이어마허가 헤겔을 견제했고 헤겔 사후에는 헤겔파를 견제하기 위해 셸링이 베를린 대학교수로 초청되었습니다.


초기 낭만주의자는 급진적 자유주의자이고 학생운동을 일으킵니다. 이들은 학생조합(부르센샤프트)을 통해 발트부르크 축제를 벌이면서 루터의 종교 개혁을 옹호하고, 반동파의 저서를 불에 태웁니다. 그러나 나중에 상당수의 낭만주의자는 반동화합니다. 이들은 나폴레옹 침략에 대항하는 해방운동을 계기로, 반동의 소굴인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 체제를 지지합니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시인 잔트가 러시아 스파이 코제부를 살해한 사건을 다루면서 양심에서 나온 행위는 정당한가 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이를 통해 헤겔은 급진적 낭만주의자를 비판했죠. 그가 법철학을 썼던 이유는 동시에 반동화하는 낭만주의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법철학에서 봉건적인 관습법이 아니라 로마의 자연법, 즉 이성을 전제로 법 이론을 전개했던 이유입니다.


3) 키어케고어와 헤겔

헤겔은 급진적 낭만주의가 반동적 낭만주의로 전환하는 것은 필연적이라 보았습니다. 양자는 동전의 이면이라는 거죠. 바로 그런 논리가 이미 정신현상학 양심 장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낭만주의의 이런 전도를 헤겔이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헤겔이 낭만주의를 넘어서 종교가 요구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있습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키어케고어의 사상에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키어케고어의 대표 저서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냐 저것이냐>입니다. 여기서 그는 감각적 정신, 윤리적 정신, 종교적 정신을 비교합니다. 키어케고어는 종교적 정신이 요구되는 근거를 감각적 정신과 윤리적 정신의 한계에서 찾고 있습니다.


키어케고어가 말한 윤리적 정신은 우리가 바로 앞에서 다루었던 칸트의 의무론, 도덕적 의식입니다. 그가 말한 직관에 기초하는 감각적 정신이 바로 헤겔의 양심 개념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헤겔과 키어케고어는 배치를 달리했습니다. 헤겔은 도덕적 의식 다음에 양심 개념을 그러나 키어케고어는 감각적 정신 다음에 윤리적 정신을 배치했죠. 그러나 결론은 종교 정신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종교 정신으로 끌어나가는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나는 키어케고어가 쓴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나의 짐작이고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개념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키어케고어가 헤겔의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책 자체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나오는가는 좀 더 연구해 보아야 확인될 수 있을 겁니다.


4) 전치에서 양심으로

이제 양심 소절에 들어가면서 헤겔은 처음에 도덕적 의식에서 전치가 어떻게 양심으로 나가는지를 설명합니다.


“모순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 바로 그것과 동일한 것은 도덕적 세계관이 배회하면서 분리하고 다시 해소하는 것이므로, 순수한 지로서 순수 의무가 다름 아닌 의식의 자아이며 그리고 의식의 자아가 다름 아닌 존재와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현실적 의식의 피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순수한 사유이며, 사실상 자아이다. 그러므로 자기의식은 우리에게 있어서 또는 본래 자신 내부로 복귀하면서, 그러한 본질을 자기 자신으로서 인식하며 그 속에서 현실이 동시에 순수한 지이고 순수한 의무가 된다.”


여기서 헤겔은 도덕적 의식에서 서로 전치하던 것 즉 의무와 현실, 순수 의지와 욕망이 마침내 합치하면서, 본질과 자아, 현실과 순주 의무가 통일된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등장하는 양자 즉 의무와 현실, 의무와 자아의 통일이 양심입니다.


전치가 사실 이미 통일의 한 방식이죠. 다만 자기의 반대로 이동하는 것이 전치라면 서로가 자기를 부정하면서 통일이 이루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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