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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7) 전치
이병창 2020.03.10 25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7) 전치


1) 전치

정신 장 C 절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은 세 소절로 이루어집니다. 그중 a 소절이 도덕적 세계관이며, 칸트의 의무론을 다룹니다. 그리고 c 소절이 양심이며, 이것은 낭만주의를 다룹니다. 가운데 b 소절은 제목이 전치 Verstellung인데, 이 말은 위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로 옮기면서 마치 해결된 듯한 만족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소절은 332:14에서 340:25까지인데, 어떤 다른 철학적 개념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칸트 의무론이 가지는 모순을 설명하는 절로 보입니다. 사실 내용을 읽다 보면 이미 앞의 a 소절에서 했던 얘기의 반복으로 들립니다. 다만 a 소절에는 의무론을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지만 여기서는 이제 그 모순을 설명하는데 주안점이 주어집니다.


2) 도덕적 의식의 모순

앞에서 칸트 의무론의 기본 개념이 도덕 법칙, 순수 또는 자유 의지, 의무라는 세 가지 개념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행위가 목적으로 삼는 것은 일반적인 추상적 법칙입니다. 이 행위는 동기가 의무가 의무이기 때문에 수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행위를 수행하면서 의지는 타인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의 목적을 수행한다고 생각하기에 자유의지입니다.


“도덕적 의식은 항상 대상적 본질을 설정한 어떤 이유에 따라서 행동한다. 이 도덕적 의식은 그런 대상적 본질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도덕적 의식은 자신을 활동하는 자로서 대상적 본질을 생산한 자로 인식한다. 따라서 도덕적 의식은 안정과 만족에 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구절에서 헤겔은 대상적 본질 즉 도덕 법칙이 자기 자신이 설정한 것이며 따라서 그 법칙을 수행하면서 자유를 느낀다는 점[자기를 확신한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아에는 또 하나의 의지가 있으니 그것이 욕망입니다. 욕망, 감성, 경향성 등으로 표현되는 이것이 구체적 현실적이며, 쾌락을 동기로 하고, 물질적 강제에 속하는 것이죠.


이런 욕망이 개별 자아를 지배하므로 따라서 앞에서 말한 도덕 법칙을 수행하는 자아는 이 개별적 자아 밖에 존재하게 됩니다. 그런 도덕 법칙은 욕망에 대립하는 것이며, 또한 그 실현은 현실이 아니라 피안에서 가능합니다.


“다른 측면에서 도덕적 의식 자신은 그 대상을 자기 밖에 그 자신의 피안으로 설정한다.”


3) 전치

동일한 자아 속에 이 두 가지 자아가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므로 헤겔은 칸트의 의무론은 칸트 자신의 표현을 빌려 “멍청한 모순의 소굴 자체”라고 합니다. 칸트의 표현이 칸트 자신에 가장 적합하다면서 말이죠. 헤겔은 이런 모순을 끝없는 전치라고 표현합니다. 이때 전치의 의미를 헤겔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도덕적 의식은 이런 전개 과정 중에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여준다. 즉 하나의 계기를 확정하면 여기서부터 직접 다른 계기로 이행하면서 처음의 계기를 지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의식은 이제 이 두 번째 계기가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다시 전치하며, 오히려 그 반대를 본질로 삼는다.”


이런 전치의 과정은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보는 것이죠. 대체로 서로 대립된 것이 동시에 요구될 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교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를 보죠. 교수는 정치를 자기의 이론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요청되죠. 언뜻 보면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자아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왜냐하면 교수는 이론을 연구할 때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홀히 합니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이때는 떠들죠. 그리고 정치에 참여할 때는 이제는 자신은 어디까지나 이론가라는 관점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참여의 기회를 이론을 연구하는 기회로 삼고 실천을 이제는 소홀히 합니다. 다시 강단으로 돌아오면 이제는 온통 눈과 귀를 정치에 기울이느라고 여념이 없죠.


헤겔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도덕적 의식이 보기에 어떤 계기는 어떤 실재성을 갖지 않으므로 오히려 그 계기를 실질적인 것으로 설정하며, 같은 말이지만 하나의 계기를 즉자적인 것으로 주장하기 위해서 오히려 그 대립된 계기를 즉자적인 것으로 주장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현재에는 미래가 중요하다고 하고 미래가 되면 그때는 지금 하는 것이 중요한다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도덕적 의식은 어떤 주장을 내세워 놓고는 항상 그 주장에 전혀 진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헤겔은 이런 전치가 도덕적 의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하는 오류가 아니라 스스로 자각적으로 이런 전치를 범한다고 합니다. 일종의 회피고 자기 기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도덕적 의식에서 어떤 전치가 일어나는지 보기로 하죠.


4) 도덕 법칙과 그 실현

우선 출발점으로 도덕 법칙의 실현으로부터 시작해 보죠. 이런 도덕 법칙은 무조건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도덕 법칙은 그 자체로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도덕 법칙의 실현은 즉자적인 것이라 할 수 있죠. 이 경우 도덕 법칙을 수행하는 자의 행복은 포기됩니다. 도덕 법칙은 오직 그 자체로서 수행될 뿐이죠.


그러나 사실 도덕 법칙의 실현을 통해 행복은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현실은 고유한 법칙을 지니고 도덕 법칙과 대립합니다.


“이런 조화는 즉자적인 것이어야 하며, 실제 의식에 대해 존재하지 않고 현재적이지 않다. 현재는 오히려 양자의 모순이다.”


하지만 행위로 이행하면서 전치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행위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행위는 행복을 고려해야 하고 이런 가운데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서 도덕 법칙을 수정하거나 완화하게 되죠.


“수행된 행위에서는 도덕적 의식은 개별자로서 자신을 실현하거나 현존이 도덕적 의식에 소급되는 것을 직관하며, 향락이 이 속에 존립하게 되므로, 도덕적 목적의 실현 속에는 향락과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실현의 형식이 포함된다.”


결국 이런 행위로 이행하면서 도덕 법칙의 즉자적 실현이라는 의무의 원리에서 즉자적 실현은 포기되고 맙니다. 현실과 행복에 대한 고려가 없을 수 없습니다.


“행위가 사실상 충족하는 것은 일어나는 것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 즉 다만 요청일 뿐이며 피안이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은 행위를 통해 이런 요청에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한다. 행위의 감각은 현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현재화하는 것이라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5) 행위와 도덕의 피안

이제 행위에 나서게 된다면 이것은 결국 도덕 법칙의 즉자성을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도덕 법칙을 행위 하는 자는 행복을 고려하면서 결국 도덕 법칙을 수정하고 완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는 행복을 얻는 대신 자신이 도덕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게 되죠.


여기서 행위 하는 자는 이제 행위 자체에 대해 진지하지 않게 되면서 또 한 번의 전치가 일어나게 되죠. 그는 도덕적 느낌의 회복을 위해 이제 현실과 행복에 대한 고려를 거부하게 됩니다. 도덕 법칙은 다시 즉자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가정되죠.


“그러나 이성의 목적은 일반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목적이며 전체 세계보다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도덕적 행위는 어떤 우연적인 것이 아니며, 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덕적 행위는 순수한 의무를 그 본질로 삼기 때문이며, 이 의무가 유일하게 전체적인 목적을 이룬다.”


이렇게 순수한 의무, 즉자적인 도덕 법칙이 다시 강조된다면 이 도덕 법칙은 현실과 다시 대립하면서 도덕 법칙의 실현, 행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다시 도덕 법칙의 즉자적 실현은 무한히 뒤로 미루어지고 피안에 설정될 뿐이죠.


이런 식으로 도덕 법칙의 순수성과 도덕 법칙의 실현은 두 가지 순수 의무의 중요한 계기이면서 동시에 서로 대립합니다. 결과적으로 끊임없는 전전이 일어나게 되죠. 순수성이 강조되면 실현과 행복이 옹호되고 실현과 행복이 강조되면 도덕 법칙의 순수성이 다시 옹호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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