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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4) 도덕성의 자기 증식
이병창 2020.03.03 26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4) 도덕성의 자기 증식


1) 내적인 자연

앞에서 의무론자에게 도덕의 실현 즉 행복에의 요구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헤겔은 이런 도덕의 실현에의 요구가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결과를 설명합니다. 도덕이 자연 속에서 실현되는 것 즉 행복에의 요청은 이제 새로운 요청으로 발전합니다.


“자연은 ... 전적으로 자유롭게 외면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의식은 그 자체가 우연적이며 자연적인 존재이다. 의식이 그 자신의 것으로서 가지고 있는 자연은 곧 감성이다.”


이 감성이 바로 욕망, 충동, 경향성입니다. 이는 자유의지, 순수의지에 대립하죠.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의무론자의 자아 속에서 이 두 가지는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두 가지가 통일되어야 합니다.


2) 감성과 도덕성의 조화

그런데 의무론자에게서 자유의지가 본질이고 욕망은 무의미한 것이니 양자의 통일은 욕망이 자유의지에 의해 청산되는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 대립하는 두 가지 계기 가운데 감성은.... 부정적인 것이고, 그에 반해서 의무에 대한 순수사유가 본질이니, ... 통일이 출현한다면 그것은 다만 감성을 제거함으로써만 성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의무론자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의무론자는 자유의지가 아직도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의무의 실현을 여전히 욕망에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도덕의 실현이라는 앞에서의 요청을 위해서는 욕망을 버릴 수도 없게 됩니다.


욕망이 제거되어야 하지만 욕망이 필요하니, 여기서 또 하나의 요청이 생기게 되죠. 즉 “감성이 도덕성에 적합해야 한다."라는 요청입니다. 이 요청의 의미는 감성을 제거한다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 도덕성에 어울리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3) 도덕적 의식의 전치

그런데 헤겔은 첫 번째 요청과 두 번째 요청을 구별합니다. 첫 번째 요청은 대상, 현실, 자연 속에서 도덕이 실현되는 것이니 즉자적인 요청이라 합니다. 반면 여기서의 요청은 내면에서 욕망이 도덕에 어울리는 것이니, 이는 “행위 하는 자아”에서 나타나는 요청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요청에 대해 설명했듯이 요청이란 말 그대로 요청만 하는 것이며 절대로 실현되기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 요청은 항상 무한한 미래로 미루어지는 것이죠. 이점은 욕망, 감성과 도덕의 조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조화의 완성은 무한히 뒤로 미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런 조화가 현실적으로 등장하게 된다면 그것은 도덕적 의식을 중단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덕적 의식이 중단된다"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도덕적 의식이란 곧 감성, 욕망, 충동을 극복하면서 도덕 법칙을 자유의지가 따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덕적 의식은 처음에는 도덕 법칙을 수행한다는 데서 발생합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변질되죠. 도덕적 의식은 욕망을 극복하면서 도덕 법칙을 수행했다는 데서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극복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도덕적이라는 느낌이 들죠. 도덕적 의식이 말하자면 전치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극복 없이 자신의 욕망이 도덕 법칙을 원해서 수행한다면 그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수행이 아니게 되면서 도덕적이라는 느낌도 사라지게 되죠. 사실 이미 칸트자 자선의 마음에서 자선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칸트는 오히려 자기는 싫은데 자선이 도덕적 법칙이므로 수행한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도덕성이라 했지요.


4) 도덕의 자기 증식

이런 도덕적 의식의 전치는 실제로 자주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보다 상당히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신부나 청소년에게 실제 죄의식에 대한 고민이 보통 이상으로 강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자학하면서 더욱 어떻게 보면 그런 자학을 통해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평범한 도덕적 과제의 충족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에게 더욱 어려운 도덕적 과제를 세우죠. 그래야 자기가 도덕적 존재라는 만족감이 들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 의식도 말하자면 자기 증식적인 것이라 하겠어요.


마치 바이러스가 증식하듯 도덕적 의식은 기왕에 수행했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높은 도덕을 세우는데, 그것은 마치 운동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더욱 높은 과제를 세워서 자신의 신체를 가혹하게 훈련하면서 만족을 얻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5) 요청의 지연

이에 대해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도덕성은 부정적 본질로서만 도덕적인 의식이 된다. 이런 도덕적 의식이 지닌 순수한 의무에 대해서 감성은 다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다만 적합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감성, 욕망, 충동이 강해야 도덕성이 느껴지므로 결국 감성과 도덕성의 조화는 무한히 뒤로 미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완성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완성은 오히려 다만 절대적 과제로서만 사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내용은 단적으로 존재해야 하며 과제로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돼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런 목표 속에서 도덕적 의식을 전적으로 지양하였거나 또는 이에 대해 사정이 어떤지를 생각하지 못할 것이며, 어두운 무한의 먼 거리에서... 자신을 더는 구별하지 못하게 하게 될 것이다.”


헤겔은 이런 요청이 포함하는 모순 때문에 이 도덕적 의식은 건전하지 못하며,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순을 포함하는 관념은 사람들은 흥미를 상실하게 되고 점차 추구하는 것조차 거부하게 됩니다


“이런 고찰을 즉 완전한 도덕성이 모순을 포함한다는 고찰을 통해 도덕적 본성의 신성함이 손상되며, 절대적 의무는 어떤 비현실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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