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만년필의 용도를 읽고
네이년정 2019.08.21 74
잠이 안와서 사이버 주유 천하를 하다
한철연 홈페이지에 닿았는데
이병창의 만년필의 용도란 글을 읽고 코구멍이 발신발신하여
글을 남긴다.
왜 화창하고 평안한 일요일에 이병창은 이런 글을 썼을까, 여기에 몇가지 추정되는 이유가 있다.

그는 감수성이 부족해서 시를 쓰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는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이 글에서 그의 감수성은 차고 넘치고 있다. 요즘말로 감수성 쩔어~.
그는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깜짝쇼도 감동적이었고 시루떡도 맛있었으며 현수막 앞에서 모두가 헬레레 하며 하트뿅뿅 사진도 찍었다. 선후배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나 사이보그가 나와 춤도 추었다. 그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일요일까지 감당하지 못한 채, 모니터 앞에서 고마움의 노래를 소쩍 소쩍 훌쩍 소쩍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 정도 감수성이라면 시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주절이 주절이 산문을 쓰고 있다.

또한 그는 젊은 날 시를 못쓴 것이 술 때문이라고 말한다. 엉터리 말에 속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시 핑계를 대고 술을 먹었을 몇 이병창과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이 말도 못믿겠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적 눈이 뜬다고 하니 그때부터 술을 먹었다"가 아니라 "자자, 누가 물어보면 시적 눈이 뜨이기 위해 마신다 하자고~"하고 친구들과 입을 맞춘 다음에 술을 먹은것이다. 적어도 그 일당들은 그리 암묵적으로 동의한 채 쒼나게 마셨을 것이다. 그래놓고서 마치 자기는 속은 것 처럼 "엉터리였다"하고 순진한척 쓰고 있다. 이렇게 수줍게 말하면 쪼금 귀여워 보일줄 아나? 어처구니가 없다. 귀여운건 난데.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로부터 받은 만년필이 무척 맘에 들었는지 시는 그만두고 사인이나 하고 돌아다니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50년이라는 시간을 핑계로 시를 쓰는 것으로부터는 여전히 거리를 둔다. 하지만 사인을 하고 돌아다니기엔 그의 책은 너어무 팔리지 않는다. 사인을 하고 돌아다니는건, 베스트셀러 작가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먼빛으로 사장님과 독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장님은 책 홍보에 소질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러한 악조건인데, 왜 그렇게 출판기념회 이야기가 나왔을때는 극구 사양했을까? 이병창은 정말 개구쟁이인가??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이병창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같다. 시인도 사랑하는 사람같다. 단지,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다. 만년필 주는 사람도 없고, 술먹자는 사람도 없고, 현수막 만들어 주는 사람이나 사이보그도 없었다면, 어쩔뻔 했는가?

고린도후서 3장 2절 이하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

나는 이병창이 가을시인 이병창으로 거듭나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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