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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주석 13-그리스 정신에서 로마 정신으로
이병창 2019.08.27 36
정신현상학 정신장 주석 13- 그리스 정신을 넘어 로마의 정신으로


1) 국가에 의한 가족의 부정

앞에서 그리스 정신의 죄와 운명에 대한 헤겔의 설명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 정신, 안티고네나 클레온으로 대변되는 두 자아(가족 구성원, 시민)는 스스로 겪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무지와 책임, 죄를 인정하게 되죠.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죄와 운명의 개념을 통해 그리스 정신의 일면성은 극복되고 새로운 정신이 등장합니다.


“... 그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륜성[실체]과 자기의식[즉 자아]에 내재한 무의식적인 자연과 그런 자연을 통해 등장하는 우연성[즉 운명]과의 투쟁이다. .. 내용상으로 보면 신의 법칙[국가와 시민]과 인간의 법칙[가족과 그 구성원] 사이의 분열이다.”


헤겔은 이 그리스 정신에 관해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젊은이는 ... 가족 정신으로부터 벗어나서 공동체의 개인이 된다. 그는 그가 벗어난 본성에 아직 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두 형제의 우연성 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우연성[왕위 상속]이란 곧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젊은이를 지배한다. ... 그러나 정부는 ... 그런 개체성의 이원화를 견디지 못한다. 형제의 나이의 많고 적음이라는 우연성으로서 자연은 [정부의] 통일의 필연성에 대립한다.”


“결국 국가권력에 대한 형제의 동등한 권리는 둘 다를 파멸시킨다.... 공허한 개체성에 의해 공격받았으나 자신을 방어한 공동체는 유지되며 형제는 상호적인 몰락을 겪는다. .. 평민에 부딪혀 공격받기에 이른 자는 ... 죽은 정신의 영예조차 박탈당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안티고네 비극에서 두 형제는 서로 왕위를 교대로 계승하기로 합니다. 헤겔은 이런 계승의 방식은 아직 가족 정신에 속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형제간 평등성이란 가족에 속하는 원리이니까요. 국가에서 왕위란 최고의 권력이며 배타적인 단일성에 속합니다.


따라서 형제간 싸움은 필연적인데 국가로 볼 때 그중 국가를 공격한 자는 불법이며, 국가를 옹호하는 자는 정당합니다. 국가를 공격하는 자는 가족의 원리로는 정당하지만 국가로서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국가의 행위는 가족의 원리를 파괴한 것이 됩니다.


2) 가족의 부정에서 국가의 몰락으로

여기서 가족은 자연적인 것[피]을 통한 단결이고 헤겔은 이를 무의식적인 것, 따라서 지하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봅니다. 반면 국가는 현실적인 이해의 공통성 위에 성립합니다. 헤겔은 이를 공공의 것, 의식적인 것으로 봅니다.

이런 지하의 가족 원리는 지상에서 성립하는 국가 원리에 굴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의 원리는 단결의 원리로 국가의 내적 통일성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가족의 원리가 파괴되면서 국가는 개인의 이기적 목적이 지배하게 되면서 스스로 해체의 위기를 겪게 되죠. 헤겔은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반 사자는 신적인 법칙과 .... 전쟁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 무의식적 정신[신의 법칙]은 ... 핏기가 없는 그림자[blutlose Schatten]에서 자기를 현실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도움을 얻는다. 약함과 어둠의 법칙으로서 이 정신은 처음에는 공공의 법칙, 힘의 법칙에 굴복한다. 왜냐하면 그런 권력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것은 이를 통해 그 본질을 고갈한다.”


“공적인 정신은 그 자신의 힘의 뿌리를 지하에서 갖는다. ... 민족의 확실성은 모든 사람을 하나로 결합하는 맹세의 진리를 모든 사람의 무의식적이며 침묵하는 실체 속에서 즉 망각의 물속에서 갖는다. 이를 통해 공적인 정신의 실행은 오히려 그 반대로 전환되며, 그의 최고 권리가 사실은 그의 최고 불법임을 경험하게 된다.... 죽은 자는 자신의 복수를 위한 도구[여성성]를 발견한다.”


3) 국가의 개인적 목적을 위한 수단화

그리스 정신에서 개인은 자기가 자연적으로 속한 법칙, 원리를 실현하는 단순한 존재 즉 ‘일반적 개인’입니다. 안티고네는 가족의 원리를 대행하며, 클레온은 국가의 원리를 대행합니다. 각자는 자기의 원리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자연적 원리로 간직합니다. 이런 상태를 헤겔은 파토스적 상태로 말합니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파토스에 따라서 행위 한 결과는 자기가 기대한 것과 달리 오히려 자기를 파괴하게 되는 데 이 결과는 처음에는 그에게 우연한 결과로 나타나죠.


“[신적 법칙과 인간의 법칙의] 필연성은 개인의 열정에서 표현되며 따라서 우연성이라는 가상을 얻는다.”


하지만 이런 우연한 결과는 그리스 정신 내부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형제자매의 평등성은 가족의 원리에서 나오지만 국가의 기초인 개체성의 출발점이 됩니다. 국가는 이를 범법으로 간주하며 부정합니다.


“개인적인 파토스의 단순한 운동으로 표상되는 것은 또 다른 모습을 얻으니 즉 범법과 공동체의 파괴는 그것의 현존이 지닌 본래적 형태이다.”


이제 그 결과가 무엇인지 보죠. 국가는 가족의 원리를 파괴하면서 결국 자기를 파괴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내적 통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지금까지 자연적인 가족적 통일의 원리밖에 없었으니까요. 결국 국가는 개별적 개체로 해체되고 이기적인 개체의 힘에 굴복하게 되면서 국가는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죠.


“인간의 법칙은... 가족으로의 자립적인 개체화를 자체 내에서 해소함을 통해서 자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가족은 그 지반이며 .... 공동체는 가족 행복을 파괴함을 통해 존립하므로, 그것이 억압한 것은 그것에 본질적인 것이므로, 여성성 일반에서 내적인 적을 발견한다.”


“여성성은 음모를 통해 정부의 일반적 목적을 사적인 목적으로 변화하며”


“이를 통해 여성성은 성숙한 세대의 진지한 지혜를 이 성숙한 청년의 경솔함을 위하여 조롱하고, 청년의 열광을 위하여 경멸한다. 이를 통해 청년의 힘, 아들의 힘, 형제의 힘, 젊은이의 힘을 정당화한다.”


4) 민족 간 전쟁과 국가의 통일성

헤겔의 이상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우리는 뫼비우스의 띠를 발견합니다. 가족은 자연적 통일성입니다. 그 내부에서 형제간 평등이라는 개체성의 원리가 자라나죠. 이는 국가의 통일을 깨뜨립니다. 국가의 통일이 깨어지면 국가는 개인의 이기적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국가 자신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죠. 국가는 다시 그 자연적 지반인 가족적 통일성을 요구합니다.


이런 상호 파괴의 과정이 그리스 정신입니다. 가족과 국가 사이의 불안한 동요를 통한 균형이 그리스 정신입니다.

이런 그리스 정신의 불안한 동요를 깨뜨리면서 새로운 정신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것은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고대 민족국가 사이의 전쟁이지요. 전쟁을 통해서 개인은 국가를 개인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목적이 국가의 목적에 종속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 통해 국가는 진정한 통일성을 얻습니다. 이런 통일성은 과거 가족적 통일성과 같은 자연적, 무의식적 통일성이 아니라 자각적이며 합리적인 통일성입니다. 이제 국가는 내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현실적인 자아가 되며, 개인 역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적인 개체가 됩니다.


“이런 개체성의 원리는 일반적 목적으로부터 분리된다면 사악한 것이 되니, 공동체가 청년의 힘, 아직 성숙하지도 개체성에 머무르지도 않는 남성성을 전체의 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쟁은 인륜적 실체의 본질적 계기, 인륜적 자아 존재의 절대적 자유를 현실화하고 보장하는 정신이며 형태이다. 전쟁은 한편으로 소유와, 인격적 독립성 또한 개별적 인격 자체로 이루어진 개별 체계가 부정성의 힘을 느끼도록 하며, 다른 한편 이런 전쟁 속에 이 부정적 본질은 전체를 유지하는 힘으로서 드러난다.”


5) 로마 시대 황제와 개인

이제 헤겔은 그리스 정신을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정신으로 이행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설명합니다.

우선 그는 그리스 정신의 문제점은 개별적인 개체가 완전하게 등장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고 합니다. 안티고네든 클레온이든 그들은 어디까지나 일반적 법칙을 대행하는 존재에 불과하죠. 그들은 자연적으로 자기가 속한 법칙을 수행합니다.


그리스 인륜적 법칙은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 국가와 가족이라는 양면성을 지니는데, 자연적인 대행자는 자기의 법칙을 수행하는 가운데 대립된 법칙을 위반합니다. 이것은 그의 불가피한 운명이었죠.


그리스 정신은 이런 행동과 그것의 부정, 도를 넘치는 행위와 그것을 회복하는 정의, 무지와 책임이라는 순환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 정신에서 인륜적 의식은 직접적으로 법칙을 지향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행위에서 자연성이 개입하며 그 현실은 모순과 파괴의 싹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협조와 고요한 균형이 고요와 아름다움 자체에서 파괴를 갖는다. 왜냐하면 직접성은 자연의 무의식적 고요와 자기의식적인 불안한 고요라는 모순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순환을 깨뜨리는 것이 전쟁입니다. 전쟁을 통해서 이제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으로서 가족적 자연적 통일성은 자각적인 목적, 합리적인 목적으로 전환됩니다. 이제 국가도 통일된 개체가 되며 개체 역시 자립적입니다. 바로 이것이 로마 시대, 황제의 자의적인 권력과 개인의 무제한적 자유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형식적 일반성으로서 인륜적 실체는 개체성에서 공적으로 드러나며 더는 개체성에게 생동적인 정신으로 내재하지 않으며, 개체성의 단순한 순전성이 다양한 점으로 분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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