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자유의지에 관해
이병창 2021.05.21 91
1) 자유의지
인간에게는 또 하나의 의지가 존재한다. 이 의지는 욕망에 대립하고 이를 제어하며 극복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기에 자유의지라고 불린다.
철학에서는 이런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오랫 동안 논쟁해왔다. 자유의지란 일반적으로 나의 선택 가능성을 의미해 왔다. 이런 자유의지는 실제로 우리가 행위를 해보면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손을 들자고 의욕하면 누구나 손을 들 수 있고 손을 내리고자 하면 손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자유의 사실이라 한다.
그런데 자연은 인과적으로 결정되는 체계이니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이런 결정론적 체계에 종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연하게 일어난 사건과 구분되지 않는다. 내가 집으로 가는 도중 돌연 술집으로 간다면, 이것은 나의 절대적 선택일까? 아니면 우연히 술집에나 나오는 냄새가 나를 유혹한 것일까? 구분하기 어렵다.
이런 딜렘마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이 나왔는데, 여기서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간단하게 살펴봄으로써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정의해 보고자 한다.

2) 자유로운 행위
자유로운 행위라는 개념은 우선 그 행위가 행위자 자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것은 자기에서 유래한다는 자유라는 용어의 의미와 일치한다. 자유는 자기 즉 행위자를 원인(넓은 의미에서의 원인)으로 하는 것, 무엇보다도 행위자가 제일 원인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는 상당수는 동물적인 조건 반사에 해당된다. 이런 행위는 외적 자극에 의해 이미 정해진 방식으로 일어나는 행위에 속한다. 이런 행위는 자극 반응 사이에 욕구가 개입하기는 하지만 자극과 반응이 직결되어 있으므로 물리적 인과과정과 닮았고 자유를 논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생리적 원인에 의한 행위 물질 중독적, 심리 강박적 행위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자유가 논해지는 대상으로 우선 등장하는 것이 도구적 행위일 것이다. 이런 행위는 상황에 적절하게 행위하며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행위이다. 이런 행위는 상황이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여기서 행위는 합리적으로 일어난다. 욕망에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행위는 이런 행위 즉 도구적 행위이다.
욕망에서 나오는 행위는 자유로운 행위로 규정된다. 그것은 이 행위가 여러 대안들 가운데 선택된 것이기 때문일까? 자유주의자는 이런 선택가능성을 자유 개념의 기초로 보지만 과연 이런 선택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선택가능성을 좁게 사용하면서 일정 상황에서 달리 선택할 가능성을 의미한다면, 이런 가능성은 대체로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상황이 주어지면 가능한 행위는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만일 선택가능성 개념을 좀 넓게 사용하면서, 의식을 매개로 해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다 자유로운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자유라는 개념의 의미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일단 의식을 매개로 하는 행위는 모두 상황이 달라지면 달리 선택가능한 것이다. 행위가 자유롭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다른 기준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합리성이라는 기준이다. 즉 행위가 자유롭다면 그것은 욕망이 인과적으로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방식으로 행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과성과 합리성은 관계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인과성이 상황과 행위 사이에 일방적인 관계가 성립한다면 합리성은 상황에 영향을 받은 행위가 다시 상황에 영향을 주면서 상호 피드백이 일어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바꾸어 나가는 인간이 환경에 종속하는 동물보다 자유로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유의지를 결정론과 공존시키려는 양립론자들은 대부분 이런 입장을 취한다. 법적인 차원에서 고의적 행위를 자유로운 행위로 규정하면서 처벌대상으로 삼는데, 이때 고의라는 개념은 이런 행위가 행위자 자신이 생각한 합리성에 따라 일어난다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3) 자유로운 의지
행위의 자유라는 문제와 의지의 자유라는 문제는 서로 구별된다. 의지의 자유는 우리가 앞에서 설명한 두 번째 행위의 모델과 연관된다. 즉 자신의 욕망에 대한 반성이 일어난 경우이다. 이 경우 행위자는 자신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유를 이처럼 두번째 행위 모델과 연결시키는 철학자로서 우선 프랭크퍼트를 들 수 있다. 프랭크퍼트는 일차적 욕망(desire)과 이차적 욕망을 구분한다. 여기서 이차적 욕망(의욕, voltion)이란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는 경우를 말한다. 일차적 욕망은 이차적으로 욕망된 경우, 유효한 욕망이 되면서 자유로운 의지(Will)가 된다.
프랭크퍼트에게서 만일 일차적 욕망은 있지만 이것이 강제된 경우, 예를 들어 알코홀 중독의 경우는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행위에 있어서는 자유롭게 행위하더라도(중독자들이 중독물질을 구하려는 가련한 행동을 보라) 그의 의지는 자유의지라 할 수 없다.
프랭크퍼트는 욕망이 자유의지가 되는 이유는 그 욕망이 선택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프랭크퍼트의 주장은 자유주의자의 전통을 따른다고 보겠다. 다만 이전의 자유주의자가 행위의 자유를 논했다면 프랭크퍼트는 한단계 위로 올라가 의지의 자유를 논하는 것일 뿐이다.
행위의 선택과 달리 욕망의 선택에서는 상황이 일정하더라도 우리의 선택 범위는 확대될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여러 대안적 욕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딜레마가 출현하기는 마찬가지다. 선택 가능성 개념을 좁게 사용해서 초월적 자아에 의한 아무 이유없는 자의적 선택, 즉 절대적 선택만을 자유라고 한다면, 이런 자의적 선택이 가능할까는 의심스럽다. 모든 선택에는 다소간에 이유,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또는 이런 선택 가능성은 너무 넓게 사용하면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선택은 자유롭다. 왜냐하면 의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옥 속에 있어도 사유로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으니, 이런 자유의지는 매우 공허한 자유의지에 불과할 것이다.
프랭크퍼트와 마찬가지로 게리 왓슨 역시 욕망의 자유와 의지의 자유를 구분한다. 그러나 그는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자유의지를 찾지 않는다.그는 합리적 이유를 지닌 욕망의 경우에만 자유의지로 인정한다.
여기서 합리성이란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 판단에 부합하며 동시에 주어진 상황에 적절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합리성은 엪에서 도구적 행위가 합리적이라고 판단될 때와 같은 의미이다. 다만 여기서는 행위가 아니라 행위를 이끄는 목적인 욕망이 판단의 대상이 된다.
자유의지에 대한 게리 왓슨의 주장은 자유로운 행위의 개념에 합리성 개념을 적용했던 양립론자의 주장과 같다. 다만 양립론자가 자유로운 행위에 이런 합리성이란 기준을 적용했지만 게리 왓슨은 자유로운 의지의 개념에 이런 합리성의 기준을 적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합리적 이유를 통해 자유의지를 규정하려는 게리 왓슨의 주장은 칸트의 주장과 부합한다. 칸트는 도덕법칙 즉 가치를 따른 의지만이 자유롭다고 본다. 칸트는 이런 의지는 이성적 의지, 또는 지성을 원인으로하는 의지라 한다.

4) 합리성
게리 왓슨이나 칸트와 같이 선택 가능성이 아니라 합리성을 자유의 근거로 삼는 이유를 정리해 보자. 그 이유는 의지의 유효성이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이런 유효성은 의지가 실제 현실에서 목적을 달성하는가의 문제나, 일단 발휘된 의지가 내적인 여러 장애 때문에 실제 일어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구분된다. 여기서 유효한 의지란 만일 외적이거나 내적인 장애가 없다면 발휘될 수 있는 의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런 의지는 다만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동기 상태와는 구분된다고 보겠다.
이런 유효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때, 합리적 이유는 의지나 행위를 유효하게 움직이는 다양한 원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다른 다양한 원인과 결합하여 의지를 움직이는 데 최종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합리적 이유는 다양한 원인 가운데 유일하게 행위자 자신에게서 나오는 원인이므로 행위의 제일 원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합리적 이유는 이런 의지를 움직일 힘 제일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로서 이것이 자유의 조건이 된다. 거꾸로 비합리적 이유는 의지나 행위를 움직일 힘을 제공하지 못하므로 이는 자유의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처럼 자유의지의 조건을 합리성으로 본다면 자칫 자유의지를 너무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그 시대, 사회의 가치판단에 대립하는 선택이라면 비합리적 선택이 될 것이니, 자유의지라 보기 어렵게 된다. 반사회적 혁명아를 생각해 보자. 그런 혁명아들에게 합리성을 이유로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척이나 보수적인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보면, 합리성은 의지를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이므로 주관성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기만은 어떤 이유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이유는 그의 의지를 움직이는 이유가 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자유의지의 조건인 합리성이라는 조건을 충족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심지어 객관적으로 보면 비합리적이지만 자신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행위자 자신이 자신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정신질환자가 그와 같은 상태에서 자신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는 게리 왓슨의 합리성, 칸트의 지성적 원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유의지를 규정하고자 한다.

5) 자유의지의 세 차원
이런 자유의지는 세 가지 차원을 포함한다. 한 가지는 우선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 것 즉 욕망을 선택하는 차원이다.
욕망의 선택은 어떤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한다. 가치판단 자체는 나의 결정과는 무관한 중립적인 것이다. 나의 선택은 이런 중립적 판단에서 규정된 가치를 내가 인정하며 받아들이면서 실행하기로 마음 먹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이 차원은 의욕[voli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두번째 차원이 이런 의욕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 실제 행위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념적인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물질적인 신체를 움직이는 것이니 관념과 물질 사이의 연관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포함한다. 흔히 이를 의지의 차원이라 한다.
마지막 차원은 사유에서 선택된 것이 목적으로서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차원이다. 행위와 현실은 구분된다. 행위는 때로 현실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행위일 수도 있지만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 자신이 목적으로 했던 가치 있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은 현실화의 차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차원에서 자주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의 문제를 구분한다.
이런 세 가지 차원에서 첫번째 의욕의 차원은 사유 또는 관념의 영역이다. 이런 의욕에서는 합리적인 선택과 비합리적 선택이 구분될 수 있다. 비합리적 선택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효한 의지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다. 반면 합리적 선택은 유효한 의지를 일단 가능성에 있어서 마련해준다. 이런 의욕 즉 합리적 선택은 사유의 영역의 문제이니 사실 큰 어려움이 없다.
세번째 차원은 자유의지의 철학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도구적 행위의 문제이다. 이런 행위는 자신이 선택한 의지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 어떤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여기서는 상황에 대한 판단과 실천을 위한 전략전술이 종합적으로 판단될 것이며 이런 판단은 사실 사회학적 논의의 주요한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철학적 차원에서는 다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자유의지의 문제를 놓고 볼 때 도덕론에서 우리가 주로 다루는 문제는 두번째 차원 즉 자유의지의 문제이다. 여기서 일단 사유의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선택된 의지는 유효한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이런 유효한 의지를 방해하는 외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이런 외적인 요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강력한 물질적 욕망이 될 것이다. 합리적 이유는 욕망의 힘을 극복할 수 있을 때 비로서 실제 행위가 출현하게 된다.
과연 자유의지가 행위를 지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철학적인 증명에 속하는 일인데 이는 앞으로 다루기로 하며 일단 이런 실제로 유효한 자유의지가 어떤 것인지를 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0 개의 댓글
(댓글을 남기시려면 사이트에 로그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