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주권 문제에 관해
이병창 2021.04.29 77
주권 문제에 관해

오늘 한상원 교수님의 논문 발표를 듣고 평소 내가 자주 생각했던 문제라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논문의 논점은 주권 문제에 관한한 인민과 국가 사이의 대립에 있는 것 같습니다. 논문은 이 대립에 대해 라클라우, 발리바, 버틀러의 차이를 서술하는데 초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서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의 결론이 모호해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추후 심포에서 발표시 이 부분을 보완해주었으면 해서요.

논문의 결론은 인민과 국가 사이에 흔들리는 모습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라클라우, 발리바, 버틀러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고,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보입니다. 무언가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대안과 관련해서 나의 생각을 피력해 보고자 합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인민이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국가는 전체이면서도 항상 개인의 의지를 통해(대통령이든 군주이든 총리이든)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대변자가 되는 개인의 자의가 개입하면서 일반의지는 왜곡되고 마는데, 이를 위해서는 결국 권력의 균형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그렇게 나왔죠.

그런데 나의 고민은 왜 삼권이냐, 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야 하는 문제입니다. 5권분립이든, 아니면 헤겔처럼 입법부(사법부 포함), 행정부, 독립 관료로 또는 사회주의처럼 국가, 수령, 당으로 구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민주주의 이론에서 이 문제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여기에 어떤 필연성이 있는가 고민했어요.

그런데 최근 인민이라는 개념이 다차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민은 한편으로는 법적 인격(또는 시민)을 의미하고 다른 편으로는 경제적 생산관계에서의 위치에 따라 계급이 되겠죠. 그리고 공민인데, 이 공민의 개념은 좀 부연해야 하겠군요.

공민은 즉 staatbuerger는 단순히 시민과는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공화국이란 곧 공동재산을 의미합니다. 이 공동재산을 분배하는데 참여하는 권리가 곧 공민을 규정하죠. 고대 도시의 인민은 주로 공민이지 오늘날처럼 법적 인격권이 부여된 시민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에서도 시민이라는 말보다 공민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은 이런 국가 소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족국가의 경우는 민족이라는 것도 인민의 한 차원이 되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죠. 만일 중국이나 소련처럼 다민족 국가라면 민족의 문제도 아주 크게 대두되리라 보입니다.

이렇게 인민의 세 차원이 있으면 이 차원은 분화되어 있으면서도 사실 한 인간 속에 통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차원마다 민주적 대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런 대표는 각기 전체를 대표하면서 각 차원을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삼권분립을 생각해 보면, 사실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로 나누는 것은 어떤 필연성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차원의 삼권분립 또는 사권분립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아직 생각하지 못했으나 한 가지 예로 다음과 같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많은 경우 대통령이든, 군주든 총리든 행정부는 대체로 공민적 차원을 대변합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지역구와 비례 대표를 생각해 보죠. 이원적인 대표성입니다. 지역구는 지역 대표이고 비례 대표는 원래 계급, 계층 대표를 의미합니다. 지역 대표는 시민적 차원이고 비례 대표는 계급적 차원이죠.

다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이 계급, 계층 대표는 사문화되었고 실질적으로는 정당이 이를 대변합니다. 사회주의는 아예 정당을 하나의 국가 조직으로 집어넣어서, 이를 대변하도록 하죠.

이런 대표를 구성하는 문제는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하지만, 어떻든 이런 다차원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근본 모순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0 개의 댓글
(댓글을 남기시려면 사이트에 로그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