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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주석4- 그리스 시대 시민의식
이병창 2019.07.17 32
정신현상학 정신장 주석4-그리스 시대 시민과 국가

1)
앞에서 헤겔은 그리스 시대정신을 이원적 원리로 즉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으로 규정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이원적 원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부족 사회가 고대국가로 이행하는 시기에 서로 대립하는 두 원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이라는 개념은 헤겔이 고대 비극 안티고네를 해석하면서 나온 개념입니다.

이제 헤겔은 ‘A절 a 인륜적 세계’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안티고네가 대변하는 신의 법칙과 크레온이 대변하는 인간의 법칙을 개념적으로 서술합니다. 그리고 나서 안티고네에서 두 주인공 안티고네와 크레온이 왜 갈등했고 어떻게 함께 몰락했는가를 서술합니다. 먼저 각 법칙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죠.

2)
헤겔은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을 서술할 때, 정신현상학 처음 감각적 확신에서 지각으로 이행하면서 등장한 지각적 ‘물체Das Ding’ 개념을 다시 환기합니다. 이런 지각 개념이 그리스 시대정신에서 다시 등장하기 때문일 겁니다. 전자는 자연 사물에 대한 지각의 단계라면 이제는 이성 즉 인륜적 실체[이성]에 대한 [정신의] 지각의 단계가 됩니다. 전자가 인식적 차원에서의 지각이라면 후자는 의지의 차원에서 지각입니다.

의지의 차원에서 지각이란 표현이 무척 생소할 겁니다. 헤겔은 인식이 감각, 지각, 오성, 자기의식의 단계로 진행하듯이 의지의 차원도 마찬가지의 단계로 진행한다고 봅니다. 의지 차원에서 지각이니 자기의식이니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데, 의지가 기계적인 상태에서 자유로운 상태로의 이행하는 과정을 헤겔은 그렇게 표현한 거죠. 이런 이야기는 언젠가 했던 적이 있으므로 이정도로 하고, 이제 그리스 정신의 단계인 의지의 지각 단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살펴보기로 하죠.

지각은 감각적으로 파악한 사물의 여러 성질(예를 들어 소금의 흰색과 짠맛 등)을 하나의 물체에 귀속합니다. 여기서 물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우선 감각 성질을 자립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면[개별성], 물체는 여러 감각 성질을 담고 있는 텅 빈 그릇[일반성], 매체이죠.

반면 감각 성질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일반성입니다. 흰색은 여러 사물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이죠. 그렇게 보면 사물이란 이런 일반적 성질이 현존하는 개별성에 불과합니다. 이때 개별성은 여러 일반적 성질이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나는 통일체입니다.
이 관계는 문장의 구조를 보면 잘 이해됩니다. 주어와 술어 사이의 관계가 바로 이중적이죠. 한편으로 여러 술어는 주어가 포함하는 성질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주어는 일반적 술어가 현존하는 개별자입니다.

이 두 가지 차원의 개별성과 일반성은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관계합니다. 그래서 표면과 이면의 관계가 성립하죠. 이 표면과 이면의 관계에 따라서 지각의 단계에서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합니다. 유물론과 관념론이죠.

유물론은 항상 표면의 관계를 봅니다. 그래서 개별 사물도 현존한다고 보고[지각적 유물론], 개별 성질도 현존한다고[감각적 유물론] 봅니다. 소금도 있고 흰 색이나 짠 맛도 존재한다는 거죠. 반면 관념론은 이면의 관계를 보죠. 사물은 여러 성질을 담고 있는 매체이죠. 성질이란 일반적인 존재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비현실적이죠. 전자는 사물의 내면에 존재하고[내면적 관념론] 후자는 초월적인 존재가[초월적 관념론] 됩니다.

헤겔은 인륜적 실체에 대한 의지를 이런 지각에서의 사물 개념에 유추하여 설명합니다.

“감각적 지각에서 단순한 존재는 여러 성질을 지닌 사물로 되었다. 마찬가지로 인륜적 실체에서도 행위라는 사건[Fall]은 여러 인륜적 관계를 지닌 현실이 된다. 전자에서도 다수의 성질이라는 개념은 불필요하게 되고, 개별성과 일반성의 본질적인 대립 속에 총괄된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다수의 인륜적 계기는 개별성의 법칙과 일반성의 법칙으로 이중화된다.”

이런 이중화가 바로 인간적 법칙과 신적 법칙의 대립입니다.

3)
그러면 인륜적 사회에서 의지의 차원에서 등장하는 지각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살펴보죠. 우선 인간적 법칙을 살펴보죠. 이것은 폴리스 사회에서 시민의 정신에 대한 설명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우선 헤겔이 여기서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를 이해하면 헤겔의 난해한 언어가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그리스 폴리스의 시민과 폴리스 국가 사이에는 이중적 관계가 존재했습니다. 나중에 마르크스는 이를 폴리스 사회에서 공동재산과 사적재산 사이의 균형적 관계로 표현했습니다. 헤겔은 이를 개념적으로 설명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자립성을 자각합니다. 동시에 국가의 명령을 엄숙하게 받아들이죠. 국가도 독자적으로 자립적입니다.

이제 헤겔이 이런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보죠. 우선 개인[의지]은 ‘자기의식’으로 규정됩니다. 여기서 자기의식이란 개인적 목적을 자각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지]는 ‘현실적 실체’ 로 규정됩니다. 국가는 개인을 힘으로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

“개별성은 자기의식 일반이라는 의미를 인륜적 본질에서 갖는다. 인륜적 실체는 이런 규정에서 현실적 실체이며, 다수의 현존하는 의식에서 실재하는 절대정신이다. "

현실적 국가와 자립적 개인의 관계, 마르크스가 말한 개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와 동일합니다. 헤겔은 이 관계를 이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런 절대 정신이 공동체 즉 .. 그 진리가 독자적으로 의식된 인륜적 본질로 ....출현한 공동체이다. 정신은 개인이란 반사물[Gegenschein] 속에서 자신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대자적이지만 개인을 자기 내에서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즉자적이거나 실체이다.”

여기서 ‘반사물’이라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그것은 네가 그렇기에 나도 그렇다는 관계를 말합니다. 상대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존재라는 말이죠. 이런 반사물의 관계는 두 가지 측면에 있습니다. 즉 하나는 개인이 국가의지를 자발적으로 준수한다는 점에서는 개인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죠. 동시에 이런 국가는 개인에게 그 의지를 강제로 관철합니다. 국가는 ‘개인을 자기 내에서 유지’하죠. 자발적 준수와 강제적 의무감, 이 두가지는 대립적인 것이지만 그리스 시대 시민의 의지에서는 기묘하게도 공존합니다.

4)
이런 관계를 헤겔은 달리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합니다.

“정신은 현실적 실체로서는 민족[Volk]이며, 현실의 의식으로서는 민족을 구성하는 시민이다.”

여기서 민족[Volk]은 자연적인 혈연으로서 씨족, 부족이 아니라 고대 폴리스 국가를 통해 형성된 민족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개인은 그런 민족을 이루는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민족을 구성하는 시민[Buerger des Volks]라는 말이 이상한 것 같지만 민족이 고대 민족국가를 말하는 것으로 보면 쉽게 이해될 겁니다.

헤겔은 시민과 국가 사이의 이런 관계를 인간적 법칙이라 규정합니다.

“이런 정신이 인간적 법칙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정신은 본질적으로 시민의 자기의식적 현실이라는 형식 속에서 있기 때문이다. 정신은 일반성의 형식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법칙이며 이미 존재해온 습속이다. 개인으로서 정신은 개인 일반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현실적인 확신이다. 정부로서 정신은 단순한 개체로 확신한다. 정신의 진리는 공개적으로 공표된 타상성이며, 그 현존은 직접적인 확신에 대해 자유롭게 방임된 현존의 형식 속에서 등장한다.”

좀 길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습속, 공개적으로 공표된 타당성, 알려진 법칙 등에 놓여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인은 습속을 자발적으로 준수하죠. 그런데 이 자발성은 옛날부터 그래왔기에 의무적으로 준수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위의 구절은 개인 의지와 국가의지[정부] 사이의 이중적 관계, 즉 강제와 동의라는 이중적 관계를 잘 표현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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