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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주석 3- 그리스 시대의 정신
이병창 2019.07.11 35
헤겔 정신장 주석 3

주석3- 그리스의 정신

1)
앞에서 정신이란 이성적 목적을 자신의 의지로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정신은 이성과 의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죠. 자기의식 역시 의식을 실현하는 의지입니다. 다만 자기의식은 아직 개인적인 행복을 목적으로 하고, 정신은 사회적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개인적 행복은 자연 현실 속에서 실현되기 어렵죠. 그 결과 타자를 노예화하는 주인 노예관계가 성립합니다. 노예의 자기의식은 불행한 의식으로 마치게 됩니다. 반면 사회적 행복은 개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얻는 행복입니다. 이 관계는 나의 생산은 타인을 위한 것이고, 타인의 생산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관계입니다. 여기서 나는 주관적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된 목적을 추구하죠. 여기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헤겔은 이것을 이성적 사회, 즉 ‘인륜적 실체’라 합니다.

하지만 이 실현은 우선은 개인의 자각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맹목적 필연성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개인은 소외되고 말죠. 따라서 개인이 이성적 목적을 자각적으로 의지하면서 이런 소외를 극복하는 과정이 곧 정신 장의 목적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이런 틀을 기억하여 두는 것이 복잡 다단한 헤겔의 언어 속에서 갈피를 잃고 헤매지 않는 데 중요한 방향 좌표가 될 것입니다.

2)
이제 정신 장의 전개 과정을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봅시다. 헤겔은 정신 장의 전개 과정을 정신 장 A절의 앞부분에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헤겔은 이런 과정을 즉자(가능성), 대자(실제화)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하고 의식과 대상의 분열 단계, 자기의식의 통일 단계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용어에 주목하면서 아래 글을 읽어 보죠.

“정신의 단순한 진리는 의식이고 그 계기를 타개한다[auseinanderschlagen]. 행위는 정신을 실체와 그 의식으로 분리하며, 이 실체와 의식 각각을 다시 분리한다.”

정신의 두 요소, 이성과 의지, 이론과 실천, 자아의 목적과 자아의 행위, 이 두 가지 측면이 각기 다시 두 측면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죠. 이어서 헤겔은 사회에 두 측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본질이고 목적인 실체는 개체화된 현실에 자기를 대립한다. 그 무한한 중심은 자기의식이다. 자기의식은 자신과 실체의 통일이지만 아직은 즉자적 통일이며, 이제 이는 대자적인 통일로 된다.”

위의 글은 사회의 두 측면입니다. 일반적 본질과 개체화된 현실이 사회의 두 측면입니다. 여기서 전자는 개인의 공동의 목표, 기반을 의미합니다. 후자는 사회가 개인의 내면적인 자연적인 통일체라는 측면을 말합니다. 가족, 민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전자가 흔히 우리가 시민사회(국가)라고 말하는 겁니다. 후자는 흔히 가족(민족)이라 말하는 것이지요. 전자는 필요에 따라 의식적으로 생겨난 것이고 후자는 자연적으로 미리부터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회를 항상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헤겔 사회철학의 고유한 다른 철학과 구별되는 차이점입니다. 계약론자, 마르크스 등은 모두 사회를 전자의 측면에서만 바라봅니다. 반면 낭만주의적 민족주의자는 사회를 후자로만 파악하죠. 동양의 철학도 사회는 어디까지나 가족의 연장입니다. 그러나 헤겔은 이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려 하죠. 헤겔의 법철학을 보면 법의 원리는 두 가지 즉 가족 원리와 시민사회의 원리로 이루어집니다. 양자의 통일체가 민족국가[National Staat]이죠.

3)
사회가 지닌 이 두 측면은 일단 정신이 출발하는 출발점인 그리스에서는 인간적 법칙과 신적 법칙의 대립으로 나타납니다.

“단순한 실체는 부분적으로는 자기의식에 대립을 유지하며, 부분적으로는 이로써 그 자신에서 의식의 본성 곧 자기를 자기 내에서 구분하는 본성을 드러내는데, 그 결과가 곧 집단[Masse}으로 분열된 세계이다. 단순한 실체는 구별된 인륜적 본질로 분열되니, 그것이 곧 인간적 법칙과 신적 법칙이다.

아다시피 그리스 시대는 씨족/부족 사회에서 시민/국가로 전환하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사회는 자연적인 통일체를 벗어나서 합목적적인 방식으로 재조직되었죠. 씨족은 해체되고 시민이 출현하고 부족은 재구성되어 폴리스가 됩니다. 이런 전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엥겔스가 1884년에 작성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나옵니다. 헤겔은 아직 그런 역사에 대한 이해는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헤겔이 여기서 참고한 것은 그리스 비극입니다. 그가 참고한 대표적인 비극이 소포클레스의 비극 3부작 중 하나인 안티고네입니다. 그는 이 안티고네에서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안티고네와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는 국왕 크레온의 대립을 보면서, 이를 신적 법칙과 인간적 법칙으로 규정했던 겁니다.

아마 헤겔이 인류의 선사 시대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했다면 씨족의 원리와 시민의 원리로 표현했을 겁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리스 시대의 역사적 변화를 파악하는 기본적 관점에서는 놀랍게도 마르크스와 헤겔은 일치합니다.

4)
그런데 헤겔에서 그리스 시대 사회의 두 원리를 인간/신을 참조해서 표현한 것에는 개념적인 이해도 깔려 있습니다. 인간적 법칙과 신적 법칙은 그리스 시대 사회에 대립하는 개인의식의 두 측면과 연관됩니다.

그리스 시대 개인의식은 아직 자연적 상태에서 겨우 벗어나 아직 의식(감각, 지각, 오성)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개인의식이 아직 자연 상태에 있어서 어떤 자각이 없을 때, 즉 무의식적인 상태에 있을 때, 개인은 사회를 자연적 방식으로 파악합니다. 그것이 신의 원리이고, 이것이 개체화된 현실이라는 개념입니다.

반면 개인이 좀 더 발전해서 의식(감각, 지각, 오성)의 단계에 이르면, 사회는 공통의 이익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원리이고, 이때가 일반적 본질이라는 개념이 됩니다.

5)
이어서 헤겔의 말을 들어보죠.

“마찬가지로 그 실체에 대립하는 자기의식도 그 본질상 이 두 힘 가운데 각각에 속하게 되니, 지의 측면에서는 자기가 실행하는 것에 대한 무지와 그러므로 기만적인 지에 불과한 지로 구분된다. 마찬가지로 행위의 측면에서는 자기의식은 우선 두 힘의 모순을 경험하니, 이런 가운데 실체는 자기 분열되고 상호적으로 파괴한다. 또한 자기의식은 자기가 행위하는 인륜성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즉자 대자적[주, 객관적으로]으로 인륜적인 것과의 모순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이 몰락하는 길을 걷는다.”

이 이야기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이 서로 자기 원리를 고집하는 가운데, 결국 서로가 몰락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헤겔의 전체적인 설명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각자 무지와 기만 속에서 있으면서 자신의 행동으로 자기가 구하려는 법칙을 스스로 파괴하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거죠. 전체적으로는 이런 상호 몰락을 통해 새로운 세계 즉 로마의 정신으로 이행한다는 말입니다.

양자가 서로 몰락하는 상세한 과정이 A장 a절 인륜적 세계의 기본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글은 안티고네에 대한 헤겔의 분석으로 알려져 있기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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