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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9) 성스러운 도덕적 입법자
이병창 2020.03.10 26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9) 성스러운 도덕적 입법자


1) 도덕의 근거로서 신 존재

앞에서 헤겔은 도덕적 의식의 전치를 다루었습니다. 그런 전치는 도덕과 행복, 순수의지와 욕망, 도덕적 완성 상태와 중간 상태, 은총과 노력을 거쳐 가면서 마치 만화경처럼 전치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런 전치는 칸트의 완전선과 최상선 등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헤겔이 서술한 것이죠.


이제 마지막으로 헤겔은 도덕적 의식에서 신적 존재와 인간 존재 사이의 전치를 다룹니다. 여기서 헤겔의 논의는 아마도 칸트가 신의 존재를 도덕의 근거로 다루었던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논점은 칸트와 구분됩니다. 칸트는 완전선과 최상선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헤겔은 신적 존재의 요청을 도덕 법칙의 형식성, 추상성에 대립하는 구체적 내용적 법칙의 문제를 다룹니다.


2) 구체적인 도덕 법칙

헤겔은 이렇게 논의를 전개합니다.


“도덕성은 도덕적 의식에서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가운데 타자적인 것 즉 현존에 관계한다는 사실 때문에 도덕성 자체에 이런 타자적 존재 즉 구별이 간직한다. 이를 통해 다수의 도덕적 명령이 발생하게 된다.”


즉 도덕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추상적 형식적 법칙이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각각의 현실에 맞게 구체적이며 내용을 지닌 법칙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현실에 따라 다양한 구체적 도덕 법칙이 생겨나게 되죠.


그런데 도덕적 의식에서 본다면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법칙일수록 도덕적이며, 반면 구체적인 특정한 내용을 지닌 도덕 법칙은 도덕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도덕성은 현실과 욕망과 싸우는 가운데서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어떤 구체적 내용을 지닌 도덕적 명령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이 다른 구체적 명령과 달리 도덕적일 수 있는 근거는 그것이 오직 신의 명령이라는 사실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도덕적 명령은 그 진리를 다만 다른 존재에서 가질 수 있으며, 도덕적 의식에서는 그렇지 dskg은 것도 성스러운 입법자에게는 성스럽게 된다.”


여기서 칸트와 헤겔의 신의 요청에서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칸트가 도덕 법칙 자체의 근거로 신을 요청했다면 헤겔은 구체적 도덕 법칙의 근거로 신의 존재를 요청했죠.


3) 도덕적 의식의 오만

그러나 여기서도 다시 전치가 발생합니다. 도덕적 의식은 이런 신적 존재가 보장하는 성스러운 도덕 법칙에 충실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적 자기의식은 자기에게 절대적 존재이며, 의무는 그것이 의무로 알고 있는 것일 뿐이다. 도덕적 자기의식은 다만 순수한 의무만을 의무로 안다. 그에게 성스럽지 못한 것은 그 자체로 성스럽지 못하니, 그런 것이 성스러운 존재를 통해서라도 성스럽게 되지 못한다.”


즉 도덕적 의식에서 볼 때는 이런 구체적 도덕 명령이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추상적 형식적 법칙만이 도덕적이라 판단하기 때문이죠. 결국 도덕적 의식은 여기서 오만이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런 관계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율법학자들이 예수를 의심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사랑의 도덕은 구체적인 도덕입니다. 그러므로 율법학자로서는 그것을 신의 명령이라 주장하는 예수 자신이 의심스러운 거죠.


그러므로 이런 율법학자는 신에게조차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법칙을 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은 신을 자기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거죠.


“도덕적 자기의식은 마찬가지로 이 다른 존재가 성스러운 존재라는 것에 진지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의식에서는 이경우 도덕적 의식이 그 자체에서 어떤 본성을 갖지 않는 것을 본성으로 삼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는 그 속에서 다만 순수한 의무가 타당성을 갖는 한에서만 성스럽게 된다.”


그러나 추상적 형식적 도덕 법칙만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도덕적 의식은 스스로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전치가 일어나죠. 왜냐하면 도덕법칙은 아무리 추상적이라도 약간의 구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칸트의 도덕 법칙 자체가 준칙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준칙을 보편적 형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칸트의 도덕 법칙이죠. 그런데 준칙이란 다수의 개인이 욕망을 통해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도 구체성이 존재하고, 욕망이 개입합니다.


“도덕적 의식에서 도덕성은 감성으로부터 촉발되며 제약되며, 즉자 대자적인 것이 아니고 자유의지가 우연하게 선택한 것이다. 순수 의지로서 자유의지 속에서 지의 우연성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즉자 대자적으로 다른 존재에 있다.”


헤겔은 결국 모든 도덕법칙이 구체적 내용을 갖는 한, 칸트처럼 형식적 보편성이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칸트의 형식적인 보편성의 기준이 도덕 법칙의 도덕성, 성스러움의 근거가 되지 못하죠. 모든 도덕법칙은 궁극적으로 신의 명령이라는 것을 통해서만 성스럽고 도덕적인 법칙의 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4) 도덕적 의식의 내용과 형식

도덕 법칙은 양자적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구체적 내용과 일반적 형식이죠. 여기서 실재하는 도덕적 의식과 이상적인 도덕적 의식 사이에 전치가 일어납니다.


실재하는 도덕, 불완전한 도덕적 의식에서는 내용과 형식은 서로 대립적으로 관계합니다. 즉 형식은 내용을 부정하기 위해 관계 맺습니다.


“도덕적 의식의 불완전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정립된다. 즉 도덕적 의식에서 도덕성은 자연과 감성에 긍정적 관계를 갖는데, 그 이유는 도덕적 의식에게서 도덕성이 이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이 본질적인 계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수한 도덕적 의식에서 본다면 도덕 법칙은 자연과 감성과의 관계는 전적으로 넘어서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부정적 관계는 없으며, 이런 도덕적 의식에서는 자연과 감성은 도덕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게 되죠.


“반면 순수한 도덕적 본질은 자연과 감성과의 투쟁을 넘어서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관계도 하지 않는다. 이런 본질에게 다만 긍정적 관계만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관계는 비도덕적이라 간주되므로, 순수한 도덕적 의식은 현실적인 실현을 포기합니다. 그러면 이제 이런 긍정적 관계조차 사라집니다. 하지만 이런 도덕적 행위의 실현이 포기된다면 그것은 순수한 도덕성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도덕적 세계관은 처음부터 순수 의무의 즉각적 실현을 개념으로 삼는 것이니까요.


“순수한 도덕성은 현실로부터 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심지어 이런 현실에 대한 긍정적 관계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의식이 결여된 비현실적인 추상이 될 것이다. 이 속에서 도덕의 개념 즉 순수한 의무에 대한 사유이면서 하나의 의지, 행위라는 개념이 단적으로 지양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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