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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논리와 이정희의 논리
이병창 2012.05.16 1131
유시민의 논리와 이정희의 논리



나의 삶의 원칙 중의 하나가 있다. 그것은 끝까지 이론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적인 실천이라면 몰라도, 정당정치적인 참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원칙을 나는 지켜왔다. 다만 현재는 통합진보당의 당원이다. 그러나 한 번도 어떤 모임에도 나가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속한 분회에 물어보면 알 것이다. 다만 진보의 정치를 후원하기 위한 참여에 불과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오해를 자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명백히 말하는 데 결코 당권파가 아니다. 당권이 아니라 당직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글은 당권파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그 이유는 아래 글에서 밝혀질 것이겠지만 지금 우리 시민사회가 특히 진보주의자들이 너무나도 위험한 사고방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볼테르만한 능력이 없고 에밀졸라와 같은 열성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 그런 역할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이 글을 쓴다.



무엇이 위험한 사고방식인가? 지금 많은 진보주의자 지식인들 그리고 언론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논리가 있다. 그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억울하더라도 당권파는 당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논리이고, 통합진보당이 제3당이 되었으니 이제 정치의 논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유시민의 논리가 칭하겠다. 실제 그는 이런 주장을 해 온 것으로 안다.



역사를 공부하여 본 사람이라면 이런 논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어온 나치의 논리였음을 잘 알 것이다. 나치가 주장했던 것이 국민이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유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왜 유태인이었던가? 유태인이 유럽의 사회의 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치는 집시들을 박멸했다.



정치의 세계에서 이런 희생양의 논리는 너무나도 자주 사용되어 왔다. 아주 가까운 예로 이라크 전쟁을 들어보자. 부시는 알카에다의 테러에 대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왜 이라크였던가? 후세인이 이슬람이고, 또 독재자이니 죄를 뒤집어 쓰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진보 언론과 진보지식인이 그들 스스로 그토록 무서워하던 나치의 논리에 그대로 빠져들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약간 짐작 가는 것은 있다. 그것이 바로 ‘종북파’라는 딱지이다.



당권파는 오래전부터 종북파라는 딱지를 부여받았다.최근 그런 딱지를 붙인 것이 잘못이라는 점이 공인되었다. 그러나 한번 붙여놓은 딱지는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시시때때로 종북파라고 불린다..



그런데 종북파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유대인과 같은 처지에 있다. 마치 유대인이 음모의 소굴이라 여겨졌듯이 우리사회는 종북파가 모든 음모의 소굴인 것처럼 두려워 한다. 그런데 그들이 소수였을 때는 그래도 참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제3당의 자리를 차지하자, 위기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의 주장을 단적으로 실증하는 사실이 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를 보라.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주사파가 대한민국의 법을 만든다”라고. 이 위험한 나치적인 선동이 바로 그간 사태의 진짜 원인을 밝혀주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전후 나치와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 바로 인권이론이다. 그것은 소수파, 주변인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권이론에 기초하여 무죄 추정의 원칙 등과 같은 여러 법의 원칙들이 확정되었다. 나는 이런 인권이론들을 법치의 원리라 하겠다. 이것이 바로 바로 이정희 대표의 논리이다.



진보 지식인들과 진보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이정희 대표를 사악한 종파주의자로 그려놓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정희 대표는 소수 당권파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억울한 희생자를 막는다는 것은 곧 인권의 논리를 옹호하는 가장 결정적인 투쟁이다. 그러므로 이정희 대표는 그 엄청난 참을 수 없는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유시민의 논리에 굴복한다면, 앞으로도 우리 정치는 끊임없이 희생양을 만들 것이다. 오늘 당권파가 희생당하면 다음에는 유시민 자신이 그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이정희가 싸우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위험한 나치의 논리이다.



지금 이정희 대표가 외롭게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이 정치의 논리, 나치의 논리, 유시민의 논리에 맞서고 있다. 나는 힘이 없다. 나는 그저 학자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철학을 공부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정희 대표와 같이 지금 박해받는 편에 서고 싶다. 나에게 돌을 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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