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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9)- 두 개의 당파
이병창 2020.01.24 29
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9)- 두 개의 당파


1) 계몽의 동경

정신현상학에서 근대정신을 다루는 B 절은 주로 계몽주의의 비판에 바쳐져 있습니다. 이 절은 3개 소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B-1 소절은 교양을 다루고, B-2 소절은 계몽주의를 다루고, B-3은 공포정치를 다룹니다. 지금 B-2 소절은 다시 두 개 항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a 항이 계몽과 신앙의 투쟁을 다룹니다.


b 항의 제목은 계몽주의의 진리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신앙과 투쟁하던 계몽이 신앙에 대해 승리한 다음 두 개의 분파로 즉 관념론과 유물론의 분화로 분화하는 것을 다룹니다. 헤겔은 이 두 철학적 분파가 프랑스 혁명 중에 싸웠던 두 당파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제 우리가 살펴볼 내용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죠. 신앙은 감각적 사물[우상, 성서, 금욕]을 절대적 존재의 현현으로 믿는데 계몽은 이를 비판하죠. 계몽의 비판은 곧 자기비판이 됩니다. 사실 계몽도 자기의 경험적 자아를 보편적 자아로 간주했었죠. 계몽은 자기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보편적 자아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게 계몽의 본래 입장이었는데 그동안 경험적 자아가 이를 가리고 있었던 거죠.


계몽에서 경험적 자아가 감각적 사물의 세계에 머물렀다면 보편적 자아는 감각적 사물을 넘어서는 절대적 본질을 추구합니다. 계몽에게서도 이 절대적 본질은 결코 도달할 수는 없고 영원히 추구하는 하나의 동경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계몽이 이런 만족에 머무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몽에 등장한다. 자기 정신세계의 상실에 대해 슬퍼하는 몽롱한 정신[신앙]의 동경이 계몽의 배후에 머무르니, 계몽 자신도 그 자신에게서 이런 만족하지 못하는 동경의 흔적을 갖게 된다.”


계몽은 절대적인 것에 관한 이런 동경을 실제로 실현하려 하죠. 그 동경은 감각적 존재에 대한 부정의 활동으로 나타납니다. 헤겔은 이것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의식이 명료하게 되는 필연성과 조건에서 제일 첫 번째 계기는 순수 통찰이 다만 즉자적인 개념에 불과했으나 이제 자기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순수 통찰은 타자적 존재 또는 그 자신에 부착된 규정성을 정립함을 통해서 이를 실현한다.”


이렇게 해서 혁명적 계몽주의 즉 헤겔의 표현에 따르자면 ‘부정적인 순수 통찰’ 또는 ‘개념의 부정성’이 등장합니다.


3) 계몽의 두 측면

헤겔은 이 개념의 부정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규정합니다. 하나의 측면은 모든 구별로부터 떠나는 구별[ein Untershceiden von Unterschiedenn]이고 다른 측면은 구별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것[Unterscheiden des Nichtunteschiedenen]입니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규정해 보자. 그러면 순수 통찰은 절대적 개념이 되며, 더는 구별이 아닌 모든 구별을 떠나는 구별이며, 자기 자신을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운동의 전체를 통해서만 잠시 존재하면서 구별을 갖는 추상이나 순수 개념을 떠나는 구별이다. 이 구별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것은 절대적 개념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만들고 앞의 운동에 대립하여 자신을 본질로 정립하는 데서 성립한다.”


전자는 다양한 감각적 규정성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개념의 부정성의 활동이고 이는 실제 혁명을 의미합니다.


후자는 절대적 존재를 내면에서 즉 순수사유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신앙이 “몽롱하고 순수한 정신의 거미줄”에 빠졌다고 했을 때와 같은 정신적 상태이죠. 다만 신앙이 찾는 것은 초월적 존재이지만 계몽이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 아무 규정도 없는 존재, 감각적 경험과 감각적 성질을 넘어선 것 즉 순수 사상 또는 순수 물질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즉 개념의 부정성의 활동이나 순수 사유는 동일한 활동입니다. 하나는 운동으로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그것은 아직 사유가 현실과 대립하는 이원적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헤겔은 이런 사유를 “자기에게서 소외된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에게서 소외된 개념은..... 그러나 이 두 가지 측면 즉 자기의식의 운동과 자기의식을 통한 절대적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의 동일성이 실제로 양 측면의 실체이며 양 측면이 존립하는 토대이다.”


계몽도 이 두 측면이 있으나 계몽에서는 부정적인 운동을 통해서 절대적 본질에 이르는 것이 우선적인 측면입니다. 반대로 신앙도 두 측면이 있으나 끊임없이 감각적 존재를 넘어서는 운동보다는 신적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 계시가 신앙에서 우선적인 측면이죠.


4) 계몽의 분화: 관념론과 유물론

이상에서 헤겔은 계몽의 두 측면을 말하면서 이제 이 두 측면이 두 개의 당파로 분화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우선 그는 이런 분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의 당파가 승리한 당파로 입증되는 것은 두 개의 당파로 분화되는 것을 통해서이다.”


정말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의 원리를 자기 내에 포함해야 하는데 그러면 결국 스스로가 두 분파로 전락할 수밖에 없죠. 과거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싸움을 이제 내부에서 발견하니 과거의 상대는 잊어버리게 되죠.


헤겔은 이런 내부의 대립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대립을 통해서는 새로운 고차적 원리가 등장하지 못합니다만, 내부의 투쟁을 통해서는 그런 원리가 출현할 수 있기 때분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분파가 등장하는가를 보죠. 헤겔은 두 개의 분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계몽이 동경하게 된 절대적 본질은 원래 아무런 규정도 없으니 분파는 다만 이 절대적 본질에 대해 의식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사유는 내면성 속에서 그런 절대적 본질을 발견하게 되죠. 이때 절대적 본질은 순수 사유의 산물인데 자기의식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즉 사상입니다. 이를 통해 관념론이 등장하게 되죠.


다른 한편 순수 사유의 산물을 의식의 측면에서 보게 된다면 그것은 순수한 존재로 나타나고 따라서 물질이 됩니다. 이를 통해 유물론이 등장하죠.


5)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

여기서 관념론이나 유물론은 감각적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입니다. 즉 주관적 관념 너머에 있는 사상 자체 또는 감각적 성질 너머에 있는 물질 자체를 말하죠.


이런 순수 사상이나 순수 물질은 모두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 가능합니다. 양자는 아무 규정도 없는 것 절대적 공허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입니다. 다만 이 절대적 본질을 사유 속에서 찾는가 아니면 대상 속에서 찾는가에 따라 순수 사상이 되거나 순수 물질이 되죠.


이러한 구별은 모두 절대적 본질 자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적 본질은 아무런 규정도 없는 것이니까요. 이런 구별은 모두 절대적 본질을 의식이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뿐입니다.


“양자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단적으로 동일한 개념이다. 차이는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교양의 분파가 취하는 상이한 출발점에 순수하게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로 투쟁하죠. 그래서 한편은 다른 편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비난하고 다른 편은 이 편을 멍청한 바보라고 비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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