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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11)- 절대적 자유
이병창 2020.02.04 30
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11)- 절대적 자유


1) 루소와 칸트

마침내 우리는 정신 장 B-3 절 절대적 자유의 개념에 이르렀습니다. 절대적 자유 소절은 여러모로 헤겔의 해석자들에게서 주목받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요하임 리히터라는 독일 철학 교수입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과 헤겔>이라는 책에서 바로 이 장에 대해 설명했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장은 프랑스 혁명 중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출현한 이유를 밝히는 장이라 합니다. 처음 칸트가 프랑스 혁명에서 이 문제를 느끼고,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율적 의무에 기초한 도덕철학을 제시했습니다. 헤겔도 바로 이다음 장에서 칸트의 도덕철학을 논하는 것을 보면 헤겔은 칸트의 문제의식에 공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로베스피에르가 사숙했던 루소, 그의 일반의지 개념과 계몽주의는 어떤 연관을 가지고 또 왜 여기서 공포정치가 필연적으로 출현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2) 계몽의 개념 일반

우선 거슬러 올라가 계몽주의에 대한 헤겔의 설명을 정리해 보기로 하죠. ①헤겔은 계몽주의를 데카르트적 자아라는 개념으로부터 끌어냅니다. 데카르트의 자아는 보편적 자아이지만 이는 경험적 자아에 실려 있습니다. 앞에서 데카르트 자아를 카메라에 비교했는데, 카메라 자체는 일정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통해 세계는 우리에게 보편적인 세계로 보이죠.


우리는 이를 편집증에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증 환자는 사실 주관적인 입장을 마치 객관적인 입장으로 간주하는데, 데카르트적 자아, 즉 계몽주의는 편집증과 유사하죠.


헤겔은 이런 데카르트적 자아는 ②끊임 없이 교체된다고 합니다. 한 번은 경험적 자아로 다른 한 번은 보편적 자아로 등장합니다. 전자의 측면에서는 세계는 그의 수단이며, 후자의 측면에서 세계는 그 자체 목적을 지닌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거꾸로도 가능하죠. 자신도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죠.


헤겔은 모두가 목적이자 동시 수단인 세계를 유용성의 세계로 규정합니다. 이런 유용성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곧 사드의 법칙입니다. 누구나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일반 법칙입니다.


마지막으로 헤겔은 이런 유용성 개념으로부터 계몽주의가 개념의 ③부정성이라는 말로 규정합니다. 즉 보편적 자아는 감각적 대상을 산출하지만 이런 감각적 대상을 다시 부정합니다. 계몽은 이런 부정적 활동 즉 끊임없이 초월하는 운동에서 자기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감각적 대상을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부정을 위해 다시 감각적 대상을 산출하죠.

이런 개념의 부정성이라는 말은 나중에 낭만주의 철학자 슐레겔이 아이러니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적도 있습니다. 아이러니는 자기가 산출한 것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는 파괴를 위해 대상을 산출하는 활동입니다. 계몽의 이런 부정적 활동에서 절대적 자유의 개념이 출현합니다.


3) 절대적 자유의 개념

이제 우리가 해석할 절대적 자유와 공포라는 B-3 소절(316: 10-323:21)은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 부분은 318:16까지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318:17-321:24가 두 번째 부분, 마지막은 그 이후입니다. 첫 부분은 우선 절대적 자유의 개념에 대한 설명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프랑스 혁명 중 공포정치를 이런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겁니다. 세 번째 부분은 칸트의 도덕론으로의 이행을 설명합니다.


우선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을 보죠.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용한 존재는 아직 대상의 술어이지, 주체 자체는 아니다. .... 유용한 존재가 지닌 대상성의 형식이 환수되는 것은 이미 즉자적으로 일어났다. “


유용한 존재에서 목적과 대상[수단], 즉자와 대타는 끝없이 교체됩니다. 이런 교체가 개념의 끝없는 부정성의 활동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교체에는 양자 사이의 통일성이라는 개념이 출현한 것이지만 아직 그런 개념이 진정으로 실현된 것은 아닙니다.


그 통일성의 개념이 실현되는 운동에서 처음 등장한 방식이 곧 절대적 자유라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대상이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여 개념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이게 앞으로 정신이 나갈 길이죠.


여기서는 주관의 힘에 의해 감각적 대상이 외적으로 부정되면서 순수한 주관만이 남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주관은 개별적 자아가 아니라 보편적 자아이죠. 이게 바로 절대적 자유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규정은 [모든 존재하는 것이 환원되는 주관성] 대자 존재외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단순한 규정은 오히려 순수한 형이상학이며, 자기의식의 순수한 개념 또는 순수한 지이다.”


헤겔이 이런 단순한 주관을 즉 보편적 자아를 ‘순수한 형이상학’이라 표현한 것은 그것이 순수한 물질이나 순수한 사상처럼 모든 감각적 규정을 넘어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의식은 순수한 개념이며, 자아가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이며, 절대적으로 자기를 이중화하여 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은 일반적 자아이고 그것이 인식하는 개념은 모든 현실의 본질이다.”


정신이 이런 주관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면서, 이런 내적인 전복이 외적인 전복의 형태로 나타나면 그것이 프랑스 혁명입니다.


4) 일반 의지

유용한 존재 개념이 “그 계기[즉 즉자와 대타, 목적과 수단]가 교체하는 것”이라면 반면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의 핵심은 주관이 “일반적 자아” 속으로 모든 개별적 존재를 환원해 버리는 부정성의 활동에 있습니다.


이런 주관은 이제 일반적 자아가 모든 세계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이런 본질을 실현하는 데 주저 없습니다. 모든 세계를 이를 위해 제거해 버리죠.


“세계는 그에게 단적으로 그의 의지이며, 이 의지는 일반적 의지이다. 이 의지는 ... 합의에 의해 정립되는 의지에 대한 공허한 사상이 아니며, 실재적인 일반 의지 즉 모든 개별 의지 자체 속에 있는 의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 의지, 그것은 곧 루소가 말한 일반 의지입니다. 그래서 이 일반 의지는 민주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목적, 아직 그것을 실행할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 즉 ‘공허한 사상’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어떤 일반적 목적을 실천하는 힘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일반 의지는, 그것을 실행하는 존재 즉 모든 개체를 넘어선 개체적 의지[군주, 영웅]는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각기 개별적으로 내적으로 추구하는 일반 의지입니다. 여기서 일반 의지의 실행은 개별 의지 즉 ‘모든 개별 의지 자체 속에 있는 의지’에 맡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개별 의지가 진정으로 일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 의지 대신 자기의 주관적 의지를 실행하는 것인지, 모호하게 되죠. 여기서 계몽의 출발점인 데카르트적 자아를 우리는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주관적 자아를 보편적 자아라고 믿는 편집증적 자아이죠.


5) 죽음의 공포

대상이란 그런 보편적 자아 앞에서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보편적 자아, 즉 개념의 부정적 활동 앞에서 모든 개별적 대상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죠.


“절대적 자유 속에서 모든 신분이... 사라진다. 개별적 마디에 속했으며, 그 속에서 의지를 지니고 수행했던 개별 의식도 그의 한계를 벗어난다. 그의 목적은 일반적 목적이며, 그의 언어는 일반적 법칙이고, 그의 작품은 일반적 작품이 된다.”


이렇게 절대적 자유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대상이 목적이자 동시에 수단이었던 유용성의 세계는 극복됩니다. 개념의 부정적 활동을 통해 모든 대상은 부정된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죠.


“그 현실의 피안[즉 부정하는 보편적 자아]은 실제적 존재이든 신앙 된 존재이든 모든 자립성이 사라지고 남은 시체 위에서 떠도는 것이며, 결국 공허한 최고 존재라는 매가리 없는 기름기가 얇게 퍼진 것과 같은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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