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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장 주석 13- 지와 무지
이병창 2019.08.20 23
정신현상학 정신장 주석 13- 지와 무지
1) 무지에 의한 범죄
헤겔은 시민과 가족 성원 즉 클레온과 안티고네가 비록 서로 다른 법칙을 실행하지만 성격은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즉 자신의 법칙을 단호하게 실현하죠. 그들은 아직 자립적 개인이 아니라 그 법칙을 실행하는 형식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일반자로서 행동하죠.

그러나 실체는 이미 두 가지로 분열되어 있어서 그들 각자가 행동을 통해 하나의 법칙을 실현하면 그것은 동시에 실체의 다른 측면을 부정하는 범법이 됩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느끼지만 그 책임은 그 자신 개별자로서 책임이 아니라 그들이 수행하는 일면적 법칙 자체의 책임입니다.

이제 헤겔은 개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추구하는 것을 스스로 파괴하는 이런 죄를 범하게 된 원인에 대해 논합니다. 여기서 무지라는 개념이 나오죠.

이미 그리스 비극에서 특히 오이디푸스 비극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자기 아버지를 알지 못한 채 살해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죠.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기를 길러주었던 아버지, 진짜 아버지로 오인한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려다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헤겔은 이런 오디이푸스의 무지에 의한 죄, 책임이 이미 비극 안티고네의 주인공 클레온이나 안티고네서도 발견된다고 생각합니다.

2)무지와 지
이제 그리스 비극의 주요 동기인 무지라는 개념을 헤겔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행위하는 자에게 결단의 한 측면만이 드러난다. ....따라서 현실은 그가 알고 있는 측면에 낯선 다른 측면을 자기 내에 감추고 있으며 그 현실의 진정한 [즉자 대자적인] 모습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헤겔은 여기서 무지에서 나온 행위라도 행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우선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위하는 자는 범법과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 행위는 가만있는 것을 움직인 것이며, 처음에 가능성으로 묻혀 있는 것을 드러나게 만들며, 따라서 의식하지 못한 것을 의식과, 현존하지 않는 것을 현존과 결합하였기 때문이다.”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가능성은 있더라도 실현되지 않았을 텐데, 행위를 통해 실현됐으니 행위가 책임이라는 논리입니다.

3) 책임의 정도
헤겔이 책임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정신병자나 과실에 의한 행위와 크레온이나 안티고네의 행위는 구분됩니다. 그들은 의도가 없거나, 행위의 결과가 어떤 법을 위반하는지 아닌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크레온이나 안티고네는 명백하게 자기가 범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범법을 행한 것입니다. 그들이 무지했다면 그 무지는 자기가 범하는 법칙에 대한 평가의 오류입니다. 본질적인 것을 비본질적, 우연적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니까요.

자기가 범하는 법칙을 모른 것과 자기가 범하는 법칙의 상대적 가치를 잘못 평가한 것은 동일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확실히 책임의 정도는 다르겠지요. 전자에서 책임은 모면되더라도 후자에서 책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평가의 오류는 행위의 결과를 통해 알려 집니다. 그들이 범했던 법칙도 자기가 주장했던 법칙만큼이나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때 그들은 이런 오류를 의식적 판단을 통해서 아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들의 몸을 통해 아는 것일 뿐이죠.

헤겔은 이것을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고통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여기서 헤겔은 몸으로 겪는 고통과 자신의 오류에 대한 인식을 연결합니다. 고통을 통해 깨닫는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고통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고통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자신이 이 고통이 정당한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며, 이미 막연하게나마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엇이 정당한가를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배후에 머무르는 권리[법]은 본래적 형태로 의식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만 즉자적으로 즉 결단과 행위의 내적 책임으로 현전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헤겔은 즉자적인 인식과 몸의 고통을 연결시킵니다. 이제 몸의 고통은 정당한 것을 해친 결과로 받아들여지게 되죠. 그 결과 아름다운 인륜적 정신을 넘어서 새로운 정신으로의 이행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인정[몸의 고통을 통한 인정]은 인륜적 목적과 현실 사이의 균열이 지양되었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것은 인륜성을 지향하는 태도[신조: Gesinnung]로의 복귀를 표현한다. 이 태도는 올바른 것[das Recht: 법, 권리]이 아닌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4) 클레온과 안티고네의 몰락.
이렇게 해서 국가와 가족, 시민과 가족 성원의 통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통일은 인륜적 실체를 행위하는 행위자 즉 자아에게 다음과 같이 발생합니다. 우선 그것은 성격과 파토스의 일치로 나타납니다.

“실체는 개체성에서 개체가 갖고 있는 열정[Pathos]으로 나타나며 개체성은 실체를 활성화하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개체성은 실체를 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실체는 열정인데, 그것은 그의 성격[Character]과 합치한다.”

여기서 헤겔은 성격과 열정을 대립시킵니다. 여기서 성격이란 클레온이나 안티고네처럼 자신이 특정한 법칙에 속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열정이란 자기가 내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행위를 통해 마침내 승인하는 인륜적 본질의 전체를 의미하죠. 이제 열정이 그의 성격과 합치하면서 인륜적 통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일치를 통해 이제 그는 우연적인 힘, 외부적인 힘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경험하는 것으로 됩니다.

“성격은 부분적으로 즉 그의 열정 또는 실체에 따라 본다면 다만 하나의 극단에 속한다. 부분적으로 즉 지의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의 성격은 다른 성격과 마찬가지로 지와 무지 사이에 분열된다. 각자는 이런 대립을 발생하게 하면서 행위를 통해 무지가 자신의 작품으로 되면서,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며, 이 책임은 그를 해소한다. ...양 측면의 동시적인 파멸을 통해 절대적 권리가 수행되며 인륜적 실체는 양 측면을 침식한 부정적인 힘으로서 또는 전능하고 정당한 운명으로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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