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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 정신장 주석8- 형제와 자매
이병창 2019.08.01 28
정신장 주석8-오빠와 누이동생
1)
앞에서 국가와 시민 사이에 내재하는 모순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가족과 공동체 사이에서 내재하는 모순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헤겔은 가족 공동체의 단일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헤겔은 이 단일성을 가족을 구성하는 세 계기를 통해 발전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 세 계기란 곧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와 자매의 관계입니다.

우선 남편과 아내는 서로 낯선 독립적 존재이고, 양자의 통일은 자연적인 욕망(성적 욕망)이라는 외적인 관계로 나타납니다. 이런 관계가 외면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양자의 통일성은 그 스스로에게서 형성되지 않고 제3자 즉 자식에서 출현합니다.

‘외면적 관계=제3자를 통한 통일’이라는 도식은 헤겔의 변증법적 설명에서 자주 사용하는 공식입니다. 헤겔은 이런 통일을 표상[Vorstellung] 또는 상징[Bild]을 통한 통일이라 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의식이 다른 의식 속에서 직접적으로 자기를 인식하는 것[성 관계를 통한 합일]이기에...그것은 다만 정신의 표상이나 상징일 뿐이다....표상 또는 상징은 그 현실성을 타자에게 가지므로..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아이에게서 그 현실성을 갖는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관계는 태어남의 관계인 한 내적 관계이지만 역시 자식이 부모에 의존하는 관계라는 점에서는 외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소위 직선적 이행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즉 부모는 자신의 통일성을 자식에게서 가집니다. 이 관계가 역전되지는 않습니다. 자식은 이제 그의 통일성을 그의 자식에게서 가지게 되죠.

2)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이런 관계를 통해서 낯선 존재 사이의 관계가 발전합니다. 서로 낯선 존재일수록 통일성은 내면적인 것에 머무르죠. 실제로 말하자면 양자 관계는 종속적인 관계가 됩니다. 서로 친밀한 내적인 관계가 발전하면서 서로 자립적이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통일성도 실현되는 관계가 출현합니다. 헤겔은 가족 내에서 이런 관계는 형제와 자매의 관계에서 최종적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형제와 자매의 사이는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존재들끼리의 관계입니다. 그들은 함께 살면서 친밀합니다. 동시에 서로 평등한 존재가 됩니다. 양자의 관계는 상호인정의 관계가 되죠.

“형제와 자매는 동일한 혈연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이 혈연은 고요와 균형에 이른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욕망하지 않으며,.... 상호 자유로운 개체성이다.”

혈연의 ‘고요와 균형’이라는 말의 뜻이 모호하지만, 고요란 성적 욕망의 결여, 균형이란 동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족 공동체 내에서 형제와 자매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통일성은 가족 내부에서는 최고로 발전된 형태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직 내적인 것, 즉자적인 것[가능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형제 자매의 관계조차 자연적인 혈연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고, 진정으로 자각적인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 따라서 자유로운 관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적인 것은 자매로서 인륜적 본질에 대한 최고의 예감을 가지지만 이에 대한 의식과 현실에 이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가족의 법칙은 본래 즉자적인 내재적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일성이 내적인 것에 머무르기 때문에 그 통일성은 국가 공동체와 같은 실제 형태가 아니라 초월적 존재인 가족의 신의 형태로 등장합니다. 헤겔은 이를 부뚜막 신Penaten 이라 하며, 모든 가족 성원은 세대를 거쳐가며 이 가족 신의 구현체에 불과하게 되죠. 각 성원은 이런 가족의 내적 통일성을 감정의 형태로만 얻게 됩니다. 헤겔은 따라서 가족에게서 통일성은 그저 예감Ahndung에 불과하다 합니다.

3)
가족 공동체 내부에서 형제와 자매의 관계를 통해 내적인 통일성이 예감으로 출현하지만 이미 그 자체 내부에서 분열의 씨앗이 존재합니다. 바로 형제와 자매의 차이입니다.

조금 전 말했듯이 형제 자매의 관계는 ‘동일한 혈연’이지만 ‘고요와 균형’의 관계라고 했는데 전자는 자연적인 측면이고 후자는 자립성 측면입니다. 이 가운데 자매는 자연적 혈연의 내적인 통일성으로 돌아가려 하며, 반면 형제는 자기의 자립성을 통해 자연적 혈연을 벗어나려는 경향을 갖는다고 헤겔은 말합니다.

“여성의 인륜성은 남성의 인륜성과 구분된다. 그 차이는 이렇다. 여성은 그 규정성에서는 개체성[자연적 가족]을 지향하는데 머물러 있고, 그 욕망에서는 직접적인 일반성[가족에의 헌신]에 머물러 있다. 그에 반해서 남성에서 이 두 가지 측면은 분리되어 있다. 남성은 시민으로서 일반성의 자기 의식적인 힘[공동 이익의 존재]을 소유하며 이를 통해 욕망의 권리를 획득한다. 동시에 남성은 일반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다.”

가족 공동체는 결국 여성 때문에 유지되지만 남성 때문에 분열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해석은 안티고네 비극에서 두 형제의 싸움이 테베를 분열시켰으나 안티고네는 두 형제에 대해 무차별한 동일성의 관계를 취함으로써 가족적 통일성을 유지하려 했다는 맥락과 일치합니다.

“형제가 처한 측면의 정신은 개별성으로 형성되며, 이 개별성은 상호 대립하는 가운데 일반성의 의식으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가족 내부에는 이미 가족을 파괴하는 원리가 들어 있으니 그것이 곧 형제간의 개별성입니다. 형제의 개별성은 가족을 넘어 시민과 국가의 관계로 사회를 재구성하지요.


4)
앞에서 우리는 시민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단일한 통일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족 공동체에 존재하는 통일성의 원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가족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개별성의 원리가 발전하면서 가족 공동체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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