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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 정신장 주속- 장사지내는 이유
이병창 2019.07.30 24
정신장 주석 6-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이유

1)
앞에서 그리스 시대 정신의 두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이 그것이죠. 전자는 시민과 폴리스 사이의 관계입니다. 후자는 가족과 그 구성원 사이의 관계이죠.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그리스 사회는 역사적으로 씨족 사회에서 고대국가(폴리스 사회)로 이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위의 두 원리는 이런 이행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헤겔은 그리스 사회가 근본적으로 이 두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이 두 원리는 서로 충돌하면서 함께 몰락하고 새로운 사회 즉 법과 인격의 관계로 이루어진 로마의 정신으로 이행하죠.

이제 두 원리가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보죠. 헤겔은 이것을 설명할 때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를 참조합니다. 우선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로 돌아가 봅시다. 장소는 테베였고, 오디푸스 사후에 두 아들은 서로 7년간 교대로 왕이 되기로 하죠. 그런데 동생이 7년 왕을 맡은 이후 형에게 다시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형은 이웃나라로 망명을 해서 이웃나라의 군대를 끌고 테베로 쳐들어오죠.

테베의 사람들은 골육상쟁을 보기 싫어 두 형제가 결투를 벌일 것을 제안합니다. 두 형제는 군대를 뒤로 물리치고 결투에 나섰습니다만 결투 중 다 함께 죽고 말았죠. 외국군대는 하릴 없이 돌아갔으나, 테베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로 국왕이 된 크레온(두 형제의 외삼촌)이 형은 반역자이고 동생은 조국을 지키려 했으니 반역자의 죽음은 땅에 묻지 못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두 형제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밤에 몰래 나가서 까마귀의 밥이 되는 오빠의 시체를 땅에 묻었습니다. 안티고네는 곧 크레온에 잡혀 심문을 받는데, 안티고네는 자기는 신의 법을 수행했다고 주장하죠.

여기서 우선 헤겔은 왜 매장이 신의 법인가 하는 문제를 논합니다. 장사를 지낸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헤겔은 우선 죽음이란 의미를 분석합니다. 죽음은 자연적인 것이고, 자연의 원소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죽음은 물체의 소멸, 생명체의 해체 등과 같은 일이지요. 인간의 죽음도 마찬가지로 이런 물체의 소멸이나 생명체의 해체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헤겔은 인간의 경우 죽음은 공동체[가족, 씨족, 부족 등]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지속과 재생산을 보장하는 죽음입니다. 예를 들어 전사의 죽음과 같은 것이죠. 이 경우 개인은 공동체의 지속성을 통해 영원히 불사하는 삶을 얻게 되죠.

“죽음은 개인 그 자체가 인륜적 공동체를 위해 떠맡는 노동의 완성이며 최고 경지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전사로서의 죽음은 우연한 일이라 봅니다. 그런 죽음을 그가 예견하고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더구나 대부분의 죽음은 공동체를 위한 죽음은 아닌 질병이나 사고, 자연적인 죽음에 속합니다.

“그런데 개인은 본질적으로 개별자이므로, 그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일반자를 위한 노동과 합치하고 그런 노동의 결과이었는가는 우연에 속한다.”

나아가서 어떤 개인이 전사로서 죽음을 맡게 되더라도, 그 죽음 자체는 자연적인 부정 즉 물질의 해체나 생명체의 죽음과 같은 일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 경우 육체는 부패해서 사라지고 인간의 영혼은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된다고 봅니다.

“부분적으로 그의 죽음이 일반자를 위한 노동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죽음은 자연적인 부정이고 의식이 자기 내로 복귀하고 자기의식으로 되지 않는 것 즉 존재자로서의 개별자의 운동이 된다. 또는 존재자의 운동은 개체가 지양되고 대자존재[영혼]가 되는 부정성이므로, 죽음은 도달된 대자존재가 존재자와는 다른 것이 되는 분열의 측면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헤겔은 인간의 죽음에도 필연적으로 물체의 소멸과 생명체의 해체와 같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개별성은 이런 추상적 부정성[죽음]으로 넘어가니, 이는 개별성이 그 자신에 대한 어떤 위안도 용서도 없이 본질적으로 현실적이며 외적인 행위를 통해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3)
그런데 인간의 경우 앞에서 말했듯이 죽음은 공동체를 위한 죽음이고, 이를 통해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불사를 얻는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인륜적 공동체는 수 세대에 걸쳐 지속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개인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륜적 공동체는 하나의 점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의 연속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존쟂이죠.

만일 어떤 개인이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 사라져 버린다면 인륜적 공동체의 지속성이 불가능하게 되죠. 따라서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에 대한 의무는 개인을 자연적인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소멸과 해체에 대항하여 그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가족 공동체가 시간적으로 지속될 수 있겠죠.

가족, 최초의 인륜적 사회에서 죽음이 가지는 이런 측면 때문에 이제 살아있는 자에게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일은 필연적인 의무에 속하게 됩니다. 장사지낸다는 것은 이런 자연적 소멸과 해체에 대항하여 죽은 자를 가족 공동체 속에 보존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헤겔의 말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죠.

“혈연은 이 추상적인 자연적 운동을 보완하니 그 방법은 의식의 운동을 추가하고 자연의 작품을 깨뜨리며 혈연을 파괴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또는 파괴 즉 순수한 존재로의 복귀가 필연적이므로 파괴의 행위를 스스로 떠맡는 것이다. ”

“죽은 자를 능멸하는 [벌레의] 의식 없는 욕망과 [물질적인] 추상적 존재의 행위를 가족은 죽은 자로부터 떼어내며, .... 친척을 대지의 품에 안장하여, ......가족은 죽은 자를 이를 통해 공동체의 동료로 만든다.”

바로 이것이 신의 법칙이 개인에게 부고하는 의무입니다. 그러기에 안티고네는 조국의 배신자를 내버려두라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를 장사지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그는 그리스 정신의 자기 몰락의 동기를 제공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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