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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근대정신 장 B절 주석(18)-권력과 부
이병창 2019.09.30 32
정신현상학 정신 장 주석(18)-권력과 부

1) 줄리앙 소렐

앞에서 헤겔은 교양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교양은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냥 경험하는 것이 아니죠. 그 속에서 성공하거나 출세하거나 아니면 여성의 사랑을 얻으려 하죠. 하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자신의 의지 위에 군림하는 보편적 의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이렇게 말하고 보니, 줄리앙 소렐이 생각나는군요.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아래 간단히 그 이야기를 요약해 보죠.

<그는 비천한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총명함이 있어 시장의 가정교사가 되어 시장 부인 순진한 레나의 사랑을 얻었다. 그는 들통날 것을 염려해 신학교에 들어가고 파리의 라모르 후작의 비서로 들어갔다.

그는 콧대 높은 후작의 딸 마틸드의 유혹해 결혼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레날 부인은 충격을 받고 그의 행실을 폭로하는 편지를 쓰자, 줄리앙 소렐은 레날 부인을 저격하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마지막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그는 그를 용서하는 레날 부인의 사랑을 보고 마침내 회개하여 신의 품에 안긴다.>

이 이야기는 나폴레옹 몰락 이후 반동 복귀 시기인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합니다만, 사실 17-18세기 절대주의 시대, 교양의 운동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으며 그 과정에서 마침내 야심을 버리고 회개한다는 이 이야기야말로 그 시대 교양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줄리앙 소렐이 잘 보여주듯 개인에게 회개는 그의 몰락으로 등장합니다. 이 몰락은 그에게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으로 보이죠. 하지만 개인이 야심을 가지고 들어가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그런 개인의 몰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이 지닌 이기심의 상호 충돌 자체가 그런 필연성의 원인이죠.

이런 개인의 몰락을 통해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이 표면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과정을 자기의 몰락을 통해 형성됐다는 의미에서 헤겔은 소외라 했지요.

2) 대립으로의 이행

개인과 세계, 정복과 몰락,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진 이런 근대 세계, 헤겔은 여기서 분명 시장을 모델로 사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시장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한편으로는 자기를 고정하여 다른 요소들에 대립합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각 요소들은 이미 자기 부정적이어서 반대편의 요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자아를 영혼으로 하여 실체는 그 요소들로 이루진다.... 이런 고정된 존재는 직접적으로 대입된 요소로 이행하는 것을 자신의 영혼으로 삼는다. 현존하는 것은 각 규정을 이런 대립된 규정으로 전도하는 것이며 이런 소외가 다만 전체의 본질이며 유지하는 것이 된다.”

3) 4원소

헤겔은 이런 관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자연을 이루는 근본 원소에 비유합니다. 그리스 원자론자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했던 공기, 물, 불, 흙이라는 4원소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공기는 투명한 것으로 보편성을 상징합니다. 물은 흘러가는 것이지 자기 부정적 존재를 상징하죠. 불은 상승과 하강, 통일과 해체가 서로 교차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흙은 마찬가지의 통일인데 불이 이런 이행하는 모습을 상징한다면 흙은 순간적인 균형을 통해 나타나는 형상 즉 표면적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런 4원 소설에 따르자면 근대정신, 시장을 모델로 한 이 세계를 우선 자아[자기의식]의 측면과 세계의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측면은 다시 각기 두 측면으로 나누어지죠.

우선 세계는 두 축으로 이루어집니다. 시장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는 곳입니다. 다른 한편 시장은 모든 사람이 타인의 수단이 되는 곳입니다. 이런 두 측면은 국가권력과 부라는 사회적 형태로 출현합니다. 헤겔은 국가권력을 공기 즉 즉자적인 보편성으로 규정합니다. 반면 부는 자기 부정적인 존재인 물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자아도 두 축으로 이루어집니다. 한편으로 이기심과 이기심이 충돌하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이런 충돌을 통해 각자가 몰락하여 회개하는 측면입니다. 전자는 불로, 후자는 흙으로 상징되죠.

이제 이런 4 가지 원소 즉 국가권력과 부, 이기심과 몰락의 관계는 앞에서 말한 대로 고정된 존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기의 반대로 이행하게 됩니다. 이런 4원소의 이행 과정을 헤겔은 이하에서 설명합니다.

5) 독일 비애국

여기서 이런 4원소의 이행을 설명할 때 핵심이 되는 개념은 선과 악이라는 개념입니다. 자기 동일적인 관계를 가질 때 선이라 하고 자기 부정적인 관계가 등장할 때 악이 됩니다. 이런 선과 악은 헤겔이 설명을 위해 도입하는 개념적 장치인데 그 구체적 의미는 4원소의 이행을 설명할 때 설명하기로 하죠.

설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덧붙어야 할 게 있습니다. 헤겔은 정신 장에서 자주 문학과 작품을 의존해 설명합니다. 이미 그리스 정신이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토대로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교양을 설명할 때 토대가 되는 것은 독일 바로크 시대 비애국 중의 하나입니다.

이 시기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라는 독일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레오 아르 메니 우스라는 극작 품을 1646년 발표했어요. 이게 독일 비해 극의 대표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후일 발터 베냐민이 독일 비해 극의 기원이라는 박사 논문의 자료가 되기도 했는데 헤겔이 이미 정신현상학에서 이에 기초하여 교양 개념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이 극작의 줄거리 정도는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 극은 AD 820년 살해된 동로마 황제 레오의 사건을 극으로 만든 것입니다. 총 5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1막에서 군 사령관인 마하엘 발부서는 황제 레오를 암살할 음모를 꾸밉니다. 레오는 절대적 폭군이었으며, 신하의 재산을 약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미하엘은 자신의 계획을 왕의 친위대 장인 엑사 볼 리스에게 말합니다. 엑사 볼 리스의 고변으로 미하엘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2막에서 재판이 벌어지고 미하엘은 무죄를 청원하지만 사형의 언도를 받습니다. 왕비인 테오도 기아의 청원으로 황제는 미하엘의 처형을 성탄절 이후로 미루었으나, 불안에 떨게 됩니다.

3막에서는 꿈에 총 주교였던 타라시우스가 나타나 그에게 경고하자 그는 더욱 불안에 빠져, 미하엘이 갇혀 있는 감옥을 방문합니다. 감옥에는 미하엘이 태평하게 잠들어 있었죠. 황제는 그의 행복과 자신의 불안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4막에서 잠에서 깬 미하엘은 황제가 그 사이 다녀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처형이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마침내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편지를 써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보냅니다. 자신의 처형을 예고하면서 그 후에는 추종자들의 목숨도 위태롭다고 경고합니다.

5막에서는 왕비의 꿈에 왕비의 어머니가 등장해, 황제의 죽음을 예언합니다. 왕비는 이 꿈을 그의 시종 장인 프로네시스에게 고백하면서 불안에 떨게 됩니다. 그 사이 전령이 와서 황제가 암살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무대에서 추종자들이 미하엘을 찬양하는 동안 왕비는 정신이 나가서 레오가 살아 있다고 외치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여기서 헤겔은 황제와 신하 사이의 대립을 권력과 부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헤겔은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이제 살펴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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