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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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장 B 근대 정신 절 주석 3- 교양의 의미
이병창 2019.09.26 29
정신현상학 정신 장 주석(17)-교양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1)

앞에서 근대 세계는 두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실제 의식[계몽]에 나타나는 세계이죠. 이 세계는 개인과 사회가 서로 대립하는 소외된 세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순수 의식 또는 신앙에 나타나는 세계로, 개인과 사회는 이미 통일을 이루고 있죠.

이미 여기서 헤겔이 근대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근대 세계를 신앙을 부정하고 등장하는 계몽의 정신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헤겔은 계몽과 신앙은 근대 세계를 이루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는 거죠.

헤겔은 근대 세계의 핵심을 소외로 파악하면서, 계몽이 이런 소외의 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 역시 동일한 소외의 산물이라 봅니다. 전자의 소외는 개인이 자기가 만든 사회에 대립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개인과 사회의 통일을 다만 신앙 속에서 소망하는 것에 그친다는 의미에서 소외죠.

“이 세계[순수의식의 세계]는 저 세계[실제 의식의 세계]의 소외에 대립하지만 바로 그러므로 그 세계의 소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의 또 다른 형식에 불과하다.”

2)

여기서 헤겔은 신앙의 개념을 종교라는 개념과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종교는 나중에 절대정신에 이르러 등장합니다. 이때 종교는 민족의 공동적인 의지이며, 쉽게 생각해서 메시아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공동 의지가 환상의 형태로 나타날 때 종교라고 합니다.

반면 신앙이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환상 속에서 구하려 할 때 출현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신앙은 현실로부터 도피이죠. 이미 헤겔은 불행한 의식에서 이런 도피를 다루었습니다. 신앙도 불행한 의식과 마찬가지이죠.

신앙과 불행한 의식의 차이는 불행한 의식은 개인의 자유를 천상에서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모든 사람의 자유, 공동체의 자유를 천상에서 구한다는 것이니, 개별적 자유나 일반적 자유냐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순수의식은 절대적 본질의 그 자체 그리고 의식에 나타난 그대로에 대한 자기의식 즉 종교는 아니다. 순수의식은 오히려 현실적 세계로부터 도피라는 점에서 신앙이다.”

이런 순수의식은 신앙으로서 하나의 소망에 그치는 것이지만 개인과 사회의 통일이 현실 속에서 실현된다면 그것이 공동체적 의지이니, 곧 절대정신이 됩니다. 전자의 측면에서 헤겔은 순수의식은 ‘신앙의 지반’이라 했습니다만 후자의 측면에서 ‘개념의 지반’이 됩니다.

근대정신의 운동은 이런 소외를 극복하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통일을 실제 현실 속에서 이루어내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헤겔은 무척이나 상세하게 그려냅니다.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의 반이 이 부분에 할당되어 있으니까요.

3)

이어서 헤겔은 실제 의식의 운동을 그려냅니다. 그것이 B 절 1-a에서 다루어지는 ‘교양의 세계’입니다. 순수의식의 운동은 1-b ‘신앙’에서 다루어집니다.

여기서 개인과 사회는 소외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헤겔은 이런 소외의 관계를 항상 시장을 모델로 해석합니다. 시장은 개인의 관계로 이루어진 그 산물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을 지배하죠.

시장에서 개인은 자신의 주관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개인은 시장에서 사회적 가치에 따라서 평가되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어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면 그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개인은 항상 자신을 시장이 결정하는 사회적 가치에 맞추어야 합니다.

이런 시장을 지배하는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은 사회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 전반이 하나의 시장이니까요. 심지어 인격적 가치조차도 사회적으로 평가에 따를 뿐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사회적으로 무능하면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됩니다.

4)

바로 여기서 자신의 주관적 가치를 버리고 사회적 가치를 따르는 과정, 개인의 의식을 버리고 사회적 의식을 수용하는 과정을 헤겔은 교양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의식은 자신의 인격성을 소외시키며, 이를 통해 그의 세계를 산출하지만 그 세계는 낯선 세계가 되어 그는 그것에 대해 대립적으로 관계한다. 이제 자기의식은 이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

여기서 정복이란 과거 영웅이 낯선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를 자기에 친숙한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정복이란 곧 자신을 이미 주어진 현실 세계에 맞추는 것이며, 비로소 그때야 현실은 그에게 살아갈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죠. 그러니 정복이란 실제로 항ㅂ고의 과정입니다.

“자기의식은 그가 자기 자신을 소외하는 한에서만 어떤 존재이고 실재성을 갖는다. 이를 통해 자기의식은 자신을 일반적인 존재로 설정하며, 이 그의 일반성이 그의 효력이며 그의 현실이다[sein Gelten und Wirklichkeit].”

법적인 인격은 형식 즉 결정에서만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그 내용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 때문에 이 내용은 힘으로 지켜지는 것[점유]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근대적 인간에 이르면 이제 형식을 넘어서 그 내용조차도 사회적으로 즉 시장을 통해 인정됩니다. 누구나 그것은 그의 몫, 소유로 인정하죠. 이런 인정은 사실 상호적이지만 각 개인에게 소외된 방식으로 등장해서[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그는 사회의 힘에 강제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5)

헤겔은 교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개인은 교양을 가질수록 그만큼 현실성과 힘을 갖는다. .. 그의 현실성은 자연적 자아를 지양하는 데서만 존재한다. 그의 근원적으로 규정된 자연은 크기의 비본질적 차이로 의지가 지닌 활력의 다소로 환원된다.”

이 말은 사람이 교양에 따라 규정된다면, 사람들의 차이는 사회적 가치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 사회적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며 따라서 그 차이는 양적인 차이에 한정되죠. 이런 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예를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너와 나의 차이란? 대학 수능의 점수 차이이며, 너의 행복과 나의 불행을 결정한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하죠. 헤겔이 위에서 말한 구절의 가장 적절한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헤겔은 이런 차이를 ‘일종의 eine Art’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겠죠. “죽으나 사나 매한가지야”, “기나 짧으나 매 한가 지지”. 여기서 매한가지라는 표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라는 뜻이 될 겁니다.

그런데 만일 개인이 이런 교양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사회를 수요 공급이 불일치하는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사회 자체도 실현되지 않죠. 그러므로 교양을 갖춘 개인이 등장해야만 비로소 사회도 자기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개별적 개인과 관계하여 그의 교양으로 나타나는 것은 실체 자체의 본질적인 계기이다. 즉 이를 통해 사유에서의 일반성이 현실로 이행하니, 그것은 즉자가 인정된 것 현존이 되는 실체의 영혼이다.”

6)

개인의 교양이 자기의 자연적 규정을 버리고 사회적 가치를 따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자기 소외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교양을 통해 성립하는 사회의 실현도 개인을 지배하는 힘, 즉 소외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이 세계는 비록 개인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의식에 대해 직접적으로 소외된 것이므로, 자기의식에 대해 전도된 세계라는 형식을 갖는다.”

그런데 개인이 이런 교양을 갖추는 과정은 어떤 것일까요? 개인은 주관적인 것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에 뛰어들죠. 그는 이 세상 속에서 전전합니다. 온갖 모험과 온갖 체험을 통해 마침내 그는 세상을 깨닫게 되죠. 마침내 그는 세상을 정복합니다. 이 세상 속에서 큰 성공을 거둔 거죠. 하지만 그런 성공이란 결국 그가 사회적 가치를 받아들인 것이고 사회에 종속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의 개성은 사라지고 그는 평범한 존재가 된 것이죠.

“그러나 확실히 이 현실이 그의 실체이므로, 그[자기의식]은 이 세계를 정복하러 간다. 그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교양을 통해 얻으니 이런 측면은 자기의식이 현실에 적합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힘은 현실에 그가 적합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5)

헤겔은 여기서 교양을 다룹니다. 교양하면 우리는 곧바로 독일 고전철학이 이상으로 삼았던 고전적 교양 교육을 상기합니다. 그러나 헤겔이 여기서 다루는 교양은 오히려 근대 이행기 절대주의 시절 또는 바로크 시절의 정신에 해당합니다.

당시 대표적인 소설이 ‘심플 리치 무스의 모험’입니다. 이 소설은 1669년, 그리멜스하우젠Grimmelshause이라는 작가가 쓴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겪는 모험담이죠. 그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심플리치무스는 악한인데, 39년 전쟁 중 신성로마 제국 전역을 방랑합니다. 그는 농부의 자식이며, 먹이를 찾는 용이 납치했다가, 숲속에 사는 은자에 의해 길러집니다. 은자는 그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종교에 입문시키죠. 은자는 그가 너무 단순해 자기 이름도 모르기에 그런 심플리치무스[단순성]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은자가 죽자 그는 스스로 밥벌이에 나서서 용병이 됩니다. 그는 30년 전쟁의 약탈에 참가하고 승리를 맛보기도 하고 부와 매춘 질병 부르주아적 가정생활을 겪으며 러시아와 프랑스를 여행하기도 하며, 인어 세계에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마침내 그는 은자의 삶으로 되돌아오죠.

바로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를 극복한다는 것이 교양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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