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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2)-계몽과 신앙의 투쟁
이병창 2019.11.27 27
정신쟁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2)-계몽과 신앙의 투쟁

1)

앞의 서문에서 순수 의식의 두 형태에 대해 말했습니다. 계몽은 순수한 자아입니다. 데카르트적인 보편적 자아이죠. 이 보편적 자아는 모든 현실을 투명하게 파악합니다. 그는 모든 타인의 기만을 폭로하죠. 그러나 이런 보편적 자아는 개인적 경험적 자아에 부착되어 있죠. 그런 관점에서 그는 현실에 주관적으로 개입합니다. 계몽은 사실 주관적 관점에 서 있으나 스스로는 보편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신앙은 진정으로 현실을 보편적으로 평가하는 신적인 관점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계몽의 주관적 편견을 넘어선 진정한 보편성이죠. 그러나 그런 신의 관점은 비현실적인 관점이며, 실제로는 사제가 택하는 관점이 됩니다. 따라서 사제의 주관적 관점에 의해 왜곡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계몽과 신앙 사이에 투쟁이 벌어집니다. 계몽은 신앙이 전제하는 신이 비현실적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현실에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신은 거짓에 불과하다고 폭로하죠. 하지만 신앙으로 볼 때 계몽은 자신의 주관성의 개입을 알지 못합니다. 계몽의 보편성은 일면성에 불과하고 진정한 보편적 평가는 신앙을 통해 주어집니다.


헤겔은 신앙과 계몽의 투쟁을 이어서 a 절 설명합니다. 들어가면서 293: 29-294:3에서 헤겔은 앞에서 한 이야기를 요약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즉 신앙은 사상 Gedanke으로 절대적 본질이지만 반면 계몽은 자아 Selbst이고, 전자는 내용을 갖지만 후자는 순수한 부정적인 운동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신앙의 절대적 본질 즉 신이 ‘사상’이라 말한 것은 곧 신적 존재가 사유[여기서는 환각이라는 의미에서]의 대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계몽을 ‘부정적 운동’이라 한 것은 순수한 자아로서 모든 타인의 기만을 폭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이어서 294:4-294:21까지에서 우선 신앙은 오류의 왕국이라고 설명됩니다.


“이 오류의 왕국 속에서 잘못된 통찰은 일단 의식의 일반적 내용[Masse]으로서 직접적으로 순진무구하게 반성 없이 존재하지만 또한 자기 내 반성이나 자기의식의 계기를 그 자체에서 갖는다. 그 계기는 순진무구성과 분리되어서 나타나며, 그것이 배후에 대자적으로 남아 있는 통찰이나 사악한 의도이다.“


헤겔은 신앙의 두 측면을 말합니다. 한편은 현실에 대한 진정한 보편적 인식입니다. 그게 순진무구한 측면이죠.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신의 관점은 비현실적인 관점이며, 현실에 상징적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 때문에 실제로는 사제가 신의 관점을 찬탈하면서 신의 진정한 보편성은 사제의 사악한 의도로 대체되고 말죠.


헤겔은 이어서 사제의 기만을 폭로합니다. 헤겔은 이런 사제에 대해 이렇게 비판합니다.


“의식의 일반적 내용은 사제의 기만의 희생물이 된다. 사제는 자기만이 통찰을 소유한다는 공허한 시기심을 수행하며 그 밖에도 다양한 이기주의를 전개하며, 동시에 전제주의와 결탁한다.”


헤겔은 이런 전제주의자는 “대중의 어리석음과 혼란을 이용하고 기만적인 사제라는 수단을 통하여 양자를 경멸하면서 안전한 지배의 장점과 그의 간지와 자의를 만끽한다"라고 합니다.


3)

이어서 294:22-294:37까지 헤겔은 이런 신앙에 대해 계몽이 어떻게 비판하는 가를 설명합니다.


“기만적 사제의 의지와 억압하는 전제주의자의 의지는 계몽이 활동하는 직접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의지 없이, 대자 존재로 자기를 개체화하지 못하는 통찰, 이성적 자기의식의 개념이 직접적인 대상이다.”


여기서 헤겔이 하는 말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헤겔은 계몽이 사제나 전제자를 직접 공격하지 못한다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기 의지를 관철할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몽은 사회적 현실을 이해하지만[“이성적 자기의식”, 이는 아직은 신이라는 표상으로 드러날 뿐이다] 사제나 전제주의의 기만을 파괴하기 위해 행동하지는 못하는[“자기를 개체화하지 못하는”] 대중을 계몽하는 활동에 집중한다는 거죠.


그러므로 계몽의 활동은 대중이 지닌 이성적 자기의식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즉 “대중에게 현존하는” 이성적 자기의식이라는 개념이 “개념으로 현현하게[vorhanden]”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현현하는 개념이란 곧 내면적인 이성적 자기의식이 현실에 자기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면 대중은 “사악한 의도의 손아귀로부터 기만하는 실질적인 힘[Realiaet und Macht]을 빼앗게” 됩니다.


4)

294:38-295: 8까지는 계몽이 대중을 계몽하는 두 가지 측면을 설명합니다. 한편으로 계몽과 신앙, 이 두 가지는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이성적인 자기의식 즉 본질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몽에서 이런 인식은 실제로 출현하지만, 아직 자기의 주관성이 개입하므로 제한적입니다. 반면 대중은 신앙에서 진정한 보편성을 인식하죠. 그렇지만 그 인식은 표상의 단계, 즉 환상이나 계시라는 형태로 나타날 뿐입니다.


헤겔은 이런 계몽과 신앙의 차이를 즉자라는 개념을 두 번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한편으로 계몽이 즉자적이고 신앙이 대자적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계몽의 보편성은 완전한 보편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몽에는 자기의 주관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편 신앙이 즉자적이고 계몽이 대자적이라고 말합니다. 계몽은 실제의 의식으로 존재하지만 신앙은 다만 환상을 통해 인식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계몽은 순진무구한 의식[대중의 신앙]의 즉자 존재일 뿐이며 ... 그런 순진무구한 의식의 대자 존재는 이런 즉자 존재[즉 계몽]에 의해서 부정된다. -우선 신앙은 ... 즉자적으로 순수한 자기의식이며, 신앙은 다만 대자적으로 되어야 하므로, 순수 통찰은 ... 순수한 자기의식의 개념에서 자기를 실현할 지반을 갖는다.”


여기서 헤겔은 계몽과 신앙의 투쟁을 두 측면에서 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앙은 계몽의 주관성을 비판하죠. 반면 계몽은 신앙의 환상적 측면을 비판합니다. 신앙과 계몽 사이의 이런 관계는 헤겔에게서 아주 독특하게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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