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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3)-계몽의 자기모순
이병창 2019.12.04 31
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3)-계몽의 자기모순


1) 계몽과 신앙

헤겔은 근대 세계의 의식을 두 형태로 나눕니다. 실제적 의식과 순수의식이죠.


헤겔은 교양을 다루면서 실제적 의식이 한편으로 현실을 순진하게 믿는 성실한 의식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세상의 전도에 쓰라린 상처를 입는 분열된 의식이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순수의식을 다루면서 계몽과 신앙을 각기 설명했지요. 전자는 소외된 세계를 개인의 음모로 간주하며, 후자는 이런 소외를 표상 즉 종교적 환상을 통해 봅니다.


계몽과 신앙은 순수의식 즉 소외된 세계의 본질을 인식한다는 동일한 기반에서 출현합니다만 서로 대립적인 형태이죠. 계몽은 주관성을 폭로하면서 진실에 이르려고 하죠. 그러나 그 자신의 주관성은 극복하지 못합니다. 신앙은 진실을 초월적 관점에서 봅니다. 그러나 그 보편적 진리는 종교적 표상으로 나타나죠,


헤겔은 이 점을 간략하게 ‘계몽은 신앙의 즉 제 존재[가능성]’이고, ‘신앙은 계몽의 즉 제 존재[가능성]’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자는 계몽의 보편성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고, 후자는 신앙이 표상의 형태라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계몽과 신앙에 대한 헤겔의 독특한 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몽의 관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몰리에르 희극 주인공입니다. 신앙의 관점을 가장 드러내는 것은 라신느 비극이죠.


2) 우상의 몰락

계몽과 신앙은 소외된 세계의 본질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순수의식의 표현이고, 동일한 지반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헤겔은 계몽의 신앙에 대한 비판은 방해받지 않고 퍼져나가는 흐름[un gestoertes Ineinanderfliessen]이라고 합니다. 또는 ‘저항 없는 대기 속으로 향가 퍼지듯 고요하게 확산하며, 전파된다‘고도 말합니다.


계몽이 이렇게 “침투하는 전염과 같기에”, 계몽의 전염은 “남의 눈에 뜨이지도 않으며”, 이에 대해서 어떤 방어도 불가능합니다. 그것과 “싸우는 것조차 오히려 그것을 전염시키는 것”이니, 이런 “싸움도 너무 늦었으며”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미 계몽은 “순진무구한 의식[신앙]의 골수를 장악했으며” 따라서 “의식[신앙]에는 계몽을 극복할 아무 힘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계몽의 비판은 소리 소문도 없이 퍼져나가서 “의식을 결여한 우상의 모든 내장과 모든 조직을 철저히 장악해” 어느 아름다운 아침 갑자기 우상이 땅에 쓰러지게 되죠.


“보라, 여기 보라, 우상이 쓰러졌구나. 어느 아름다운 아침에, 그날의 오후엔 정신적 삶의 모든 조직에 전염이 침투했으니 피가 흐르지도 않는다.”....“새로이 높이 숭배되는 지혜의 뱀은 이런 방식으로 이미 쇠한 껍질을 벗어던질 뿐이다.”


3) 계몽의 자기비판

이상의 설명은 계몽과 신앙이 동일한 지반 즉 순수 의식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양자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계몽과 신앙은 서로 대립된 측면도 가집니다. 헤겔은 이런 대립된 측면에서 양자의 관계를 이어서 설명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계몽의 신앙에 대한 비판은 “대립된 것 자체와 폭력적으로 투쟁하면서 내는 시끄러운 소음”입니다.


그런데 헤겔은 계몽의 비판 운동[부정적 본질을 지닌 활동]은 결국 “자기를 자기 내에서 구분하는 운동”이며 따라서 “[내부의] 계기가 가시적으로 현존하게 하는 운동”이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계몽의 내부에 자기 부정이 들어 있는데, 계몽은 신앙을 비판하면서 결국 이 계기를 드러내서, “자기의 비진리 비이성”, 자신의 “거짓말과 목적의 불분명함”을 폭로하고 만다는 겁니다. 헤겔은 이를 여러 가지 말로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①“계몽은 자신을 투쟁에 끌어들이면서 어떤 다른 것과 투쟁한다고 생각한다. ...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만 절대적 부정성이라는 계몽의 본질은 그 자신에게서 타자태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이 운동의 한 부분은 구별이다. 이런 구별 속에서 개념적으로 파악된 통찰은 자기에게 자신을 대상으로 대립시킨다. 그런 계기에 머무르는 한, 그런 통찰은 자기를 소외한다.”


4) 계몽의 자기 불순화

계몽의 비판을 이와 같이 자기 부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여기서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헤겔은 아래에서 그런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부분 역시 헤겔이 반복적으로 설명합니다.


①“계몽은 순수 통찰로서 아무런 내용이 없다. 계몽이 자기를 실현하는 운동은 자기가 자신에게 내용으로 되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어떤 다른 내용이 그것에게 생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계몽은 범주의 자기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몽이 우선 대립된 것 속에 있는 내용을 내용으로서 알고 아직 자기 자신으로서 알지 못하므로, 계몽은 그 속에서 자기를 오해한다.”


여기서 ‘범주의 자기의식’이라는 말이 생소합니다. 그 의미는 “자기가 자기에게 내용이 된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칸트적 선험 범주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범주가 곧 대상인 경우, 의식은 자기의식이 되죠. 그런데 계몽은 이런 자기의 내용을 자기의 것이 아닌 타자의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②“투쟁의 첫 번째 측면은 계몽이 부정적 태도를 그 자기 동일적인 순수성 속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을 불순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계몽은 신앙에 대한 대상이 되니, 신앙은 이를 거짓이며 비이성이고 한갓된 의도로 경험한다.”


‘자기의 불순화’라는 표현도 이해하기 힘든 표현입니다. 계몽은 자신을 순수한 형식적 자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타자를 부정하는 태도는 자기를 타자의 부정태로 정립하면서 자기에게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니, 이것은 순수한 형식적 자아를 불순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③“내용을 고려해 볼 때, 계몽은 우선 공허한 통찰이다. 그래서 이 계몽에게 그 내용은 어떤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계몽은 그런 내용을 신앙 속에서 아직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방식으로 발견한다. 즉 그것은 그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순수한 형식적 자아로서 계몽은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일정한 주관적 자아로서, 스스로 내용을 산출하는 것임에도 자기의 내용을 인정하지 못하죠. 그래서 그것을 타자의 것으로 전가한다는 뜻입니다.


5) 계몽의 자기모순

이처럼 계몽은 내용은 가지고 있으나 자기의 내용을 타자의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 타자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면서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죠. 전형적인 변증법적 모순이 계몽에서 출현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보죠.


계몽은 순수한 형식적 자아입니다. 스스로 모든 욕망, 주관성, 내용의 개입을 거부하죠. 그러나 이것은 자아의 측면만 그렇습니다. 실제 그는 살아가면서 어떤 욕망, 어떤 주관성, 어떤 내용을 가지게 되죠. 마치 데카르트의 자아가 보편적이지만 경험적 주관인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순수한 형식적 자아를 진정한 본질로 믿고 이런 주관적 내용은 우연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앙을 보죠. 신앙도 마찬가지 태도입니다. 신앙은 나뭇조각상을 신적 존재로 믿습니다.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나뭇조각이 본질이 아니라 그것은 신적 존재가 나타나는 상징적 대상으로 간주할 뿐이죠.


그러나 계몽이 볼 때 신앙은 나뭇조각 자체를 신적 존재라고 믿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눈에는 계몽도 마찬가지죠. 신앙이 볼 때 계몽은 주관적 내용을 마치 객관적인 것, 보편적인 것처럼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겁니다.


계몽에서 순수한 형식적 자아와 주관적 내용 사이의 관계는 신앙에서 신적 본질과 나뭇조각 사이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신앙에게 나뭇조각이 없다면 신적 존재가 나타날 수 없듯이, 계몽의 순수한 형식적 자아에서 주관적 내용은 필연적인 것이죠.


그런 필연적 관계는 이제 계몽이 신앙을 비판하면서 드러납니다. 계몽은 신앙이 신적 존재와 나뭇조각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못 이해한다고 비판하는 데 이를 통해 사실 자기에서도 순수한 형식적 자아와 주관적 내용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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