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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4)-신의 존재에 관해, 편집증과 나르시시즘
이병창 2019.12.13 30
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4)-신의 존재에 관해, 편집증과 나르시시즘


1)

앞에서 계몽이 신앙을 비판하는 운동이 지닌 두 측면을 보았습니다. 헤겔은 한편으로 신앙과 계몽은 동일한 순수한 의식에 지반을 두므로 계몽의 비판은 신앙[대중의 순진무구한 의식]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계몽은 어느 아름다운 아침, 우상이 눈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계몽은 보편적이고 순수한 의식이며, 반면 신앙은 주관적 환상 속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계몽과 신앙의 투쟁은 시끄럽기 짝이 없는 소음을 낳죠.


하지만 헤겔은 사실 이런 계몽이 자신의 타자인 신앙에 대한 비판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 된다고 합니다.


헤겔은 이상에서처럼 계몽과 신앙의 상호 투쟁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다음 이어서 더 상세하게 계몽이 신앙을 어떻게 비판하는지, 그런 비판이 스스로를 어떻게 폭로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제 헤겔의 인도를 따라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2)

계몽과 신앙의 투쟁에 관해 첫 번째 헤겔이 문제 삼는 것은 신의 존재입니다. 계몽은 이런 신의 존재란 의식이 만든 허구라고 보죠. 헤겔은 계몽은 모든 대상적 존재를 이런 식으로 파악한다고 합니다. 그게 계몽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즉 계몽은 항상 대상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며, 만일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 대상은 오류라고” 선언하죠. 이게 사실은 계몽의 자기 기만이죠. 사실은 자기가 집어넣고서는 그것을 자기가 발견하는 것으로 즉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그러므로 헤겔은 계몽은 “대상이 의식의 본질이라"라고 생각하며, ”자기는 대상의 운동이므로 대상을 산출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계몽도 대상을 본질로 삼는다는 점에서 신앙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상을 객관적인 것으로 믿고 있다는 점에서 신앙보다 더 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에 대해 나무토막 속에 절대적 존재가 들어 있다고 믿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자기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 역시 경험에 나타나는 현상 뒤에 객관적 대상 또는 물 자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거니까요.

`

3)`

신앙은 계몽의 이런 비판이 새로울 것이 없다고 봅니다. 소위 헛다리를 짚었다는 거죠. 왜냐하면 신앙은 이런 신적 존재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그 속에서 나의 대자 존재를 인식하며, 대상이 나의 대자 존재를 인정해주고 나의 대자 존재가 그의 목적과 본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까요.


물론 이런 신뢰 관계에서 대상은 절대적이며, 나의 대상에 대한 관계는 직접적입니다. 신뢰 속에서 “나는 이 대상과 하나가 되면서[mit ihm] 그 대상 속에 [in ihm] 존재”합니다. 이런 점에서 대상 속에서 나는 나의 개별성, 즉 나의 자연성과 우연성을 상실하게 되죠. 그래서 이런 대상은 추상적 존재가 됩니다.


헤겔은 신뢰 관계에서 대상과 나 사이의 이런 관계를 “부분적으로는 그 대상 속에서 자기의식으로 남으며 부분적으로는 바로 그 대상 속에서 본질적 의식으로 남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 의식 즉 순수하고 일반적인 의식이 곧 계몽이죠. 따라서 신앙은 대상적 존재에 대해 계몽과 동일한 방식으로 관계합니다.


3)

이렇게 보면 계몽과 신앙이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발견됩니다. 계몽은 자기를 확신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객관적인 것으로 믿죠. 반면 신앙은 절대적 존재를 긍정합니다만 거기에 자기의 대자 존재가 있다고 믿죠. 방향은 거꾸로이지만 둘 다 믿음을 통해 자기를 기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계몽은 객관화하는 기만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편집증이라 했어요. 편집은 자기의 소망을 대상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면 신앙은 주관화하는 기만입니다. 이것은 나르시시즘이죠. 어머니의 보물이 자기라고 믿는 게 나르시시즘입니다.


헤겔은 각각에 나타나는 두 측면을 ‘행위’ 개념을 이용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통찰의 개념 속에는 의식은 통찰된 대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며 .... 자기를 그 속에서 직접적으로 소유할 뿐만 아니라, 의식은 자기 자신을 매개하는 운동 즉 행위나 산출로서 의식한다. .. 신앙도 이런 의식이다. 복종과 행위는 절대적 본질 속에서 [개별] 존재의 확신이 성립하는 필연적인 계기이다.”


물론 여기서 행위의 의미가 다릅니다. 계몽의 행위는 인식의 행위이죠. 반면 신앙의 행위는 믿음이라는 행위입니다.


4)

헤겔은 여기서 신앙이 대상으로 삼는 절대적 존재가 근본적으로 공동체의 정신[der Geist der Gemeinde]라고 합니다. 이는 나중에 헤겔이 절대정신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주장인데 이미 여기서 선취되고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의 정신은 한편으로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복종해야 하는 것이죠. 공동체 정신 속에 개인의 행복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기의식적인 겁니다. 그래서 헤겔은 이를 평민의 정신[der Geist de Gemeine]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측면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합니다. 다른 계기에서 본다면 이런 개인은 공동체 정신에 복종해야 하죠. 이런 복종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절대적 존재 즉 즉자 대자적 존재라는 형태로 출현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추상적 본질은 평민의 정신이라는 점에서 평민의 행위가 본질적 계기이다. 평민의 정신이 추상적 본질로 되는 것은 다만 의식의 산출 때문이다. 또는 의식에 의해 산출되는 측면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 산출은 하나의 계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본질은 동시에 즉자 대자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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