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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4)-양심적 인식의 문제점
이병창 2020.03.20 28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4)-양심적 인식의 문제점


1) 포괄적 인식이 있는가?

양심은 법칙과 현실, 순수 의지와 욕망의 통일입니다. 구체적 법칙, 인정된 법칙, 단호한 행동, 충만함이 그 특징이죠. 그러나 이제 곧 헤겔은 양심에서 출현한 이런 통일은 다만 직접성의 한계 내에 머무른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직접성의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논의되죠.


우선 인식의 측면입니다. 양심은 어떤 사건의 일반성을 포괄적으로 또는 무제한적인 방식으로 파악한다고 말합니다. 하나의 사건은 앞, 뒤로 또 공존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양심적 인식의 경우 포괄적이므로 이때 인식은 사건과 합치하겠죠. 그래서 헤겔은 이런 경우 인식은 ‘자기에 대한 관계’라 규정합니다.


반면 사건을 경험이나 지각을 통해 파악하는 때, 우리는 현실을 일반적으로 규정하죠. 그러나 이런 지각적 인식은 현실을 추상적으로 즉 하나의 계기로 파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건에 대한 경험적 인식의 경우, 추상적인 인식이며, 따라서 이것은 구체적인 존재에 대립합니다. 이 경우 관계는 ‘의식의 부정태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경험적 인식과 다른 양심적 인식이란 것이 있는 걸까요? 양심은 자신의 인식이 직관적이라고 보며, 또 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경험을 통해 사건을 인식하면서도 마치 이를 양심적으로 인식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양심은 이미 이런 기만을 알면서도 속이는 걸까요? 아니면 양심은 스스로 기만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양심적 의식은..... 그의 행위가 일어나는 경우를 이런 요구된 일반성에 따라서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가 모든 상황을 숙고했다고 사칭해도 이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인식하고 숙고했다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인식과 숙고는 다만 계기로서, 즉 단지 타자에 대해 존재하는 것으로서 현존한다. 그의 불완전한 인식이 그 자신의 인식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충분하고 완전한 인식으로 여겨진다.”


앞의 표현은 알면서도 속인다는 뜻이고 뒤의 표현은 스스로 기만당한다는 뜻입니다. 전체 문맥에서 차이는 없습니다. 어떻든 그런 양심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는 뜻이니까요.


2) 구체적 도덕 법칙이 있는가?

두 번째는 일단 어떤 사건이 인식된다면 그 경우 적용되는 도덕적 법칙이 문제 됩니다. 경험적 지각의 경우는 사건을 다양한 관련 속에서 인식하며 그때마다 고유한 추상적인 도덕 법칙에 따라 판단하게 됩니다. 하나의 사건에 다양한 도덕 법칙이 개입하게 되면서 그중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양심은 어떤 사건을 포괄적으로 인식하면서 그에게는 그런 사건에 적합한 유일한 순수 도덕 법칙, 의무가 발견됩니다. 그것은 직관적인 방식으로 얻어지죠. 양심은 자신의 인식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사실 양심도 마찬가지로 사건을 일정한 연관으로 파악하면서, 추상적인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건을 포괄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기만이듯이 그 사건에 유일하게 적용되는 법칙, 즉 법칙의 구체성이라는 것도 주관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요? 여기서 주관이란 곧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니 법칙의 구체성은 욕망에서 나왔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 자신의 확신으로부터 하나의 내용을 갖는다는 것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감성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양심에게는 그의 자기 확신이 순수한 직접적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는 그의 직접적인 자기 확신이 내용으로 표상한 것이다. 즉 개별자의 자의나 무의식적 자연적 존재의 우연성이 내용으로 표상한 것이다.”


3) 구체적인 것까지 양심이 도덕성을 확신할 수 있는가?

이어서 헤겔은 양심이 가지는 도덕성 즉 도덕적이라는 느낌의 문제를 다룹니다. 양심은 자기 확신으로부터 이런 도덕성을 끌어내죠. 그러나 양심의 확신을 정확하게 물어본다면 여기서도 혼란이 발생합니다.

우선 양심은 구체적인 도덕 법칙을 직관적으로 확신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양심이 확신하는 것이 구체적인 것인지 아니면 추상적인 것인지 모호해집니다.


양심은 자기 확신을 갖는 경우 도덕적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확신은 도덕 법칙이 공허하면 더욱 강해집니다. 즉 도덕성에 대한 확신이 그것의 공허성을 말해주죠.


“개별적 확신이라는 형식은 순수 의무가 공허하다는 것에 대한 의식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이 순수 의무는 다만 계기이고, 그 실체성은 술어에 해당하고 그 주어는 개체에 있다는 것 그리고 개체의 자의가 그 순수 의무에게 내용을 부여한다는 것에 대한 의식일 뿐이다.”


만일 양심이 확신하는 것 속에 구체적인 것까지 포함된다면,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헤겔은 이런 문제를 예를 들어 재산을 증가하는 의무, 또 적과 싸울 때 자신을 보존하는 문제를 들어 설명합니다.


우선 재산을 증가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입니다. 재산은 자기 보존을 위해도 궁핍한 자에게 자선을 행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이죠. 그러면 어떤 사람은 궁핍한 자에게 자선을 행하기 위해 재산을 증가해야 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를 의무로 느낍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는 사실 자기 보존을 위해 재산을 증가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폭력이라 부른 것이 자기에게는 자기의 자립성을 옹호하기 위한 의무를 충족한 것이며, 타인이 비겁이라 부른 것은 자기에게는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 가능성을 보존하기 위한 의무를 충족하는 것이 됩니다. 또 용감함이라 부른 것은 어느 의무도 지키지 못한 것 자립성도 지키는 의무도, 자선을 베풀기 위해 생명을 보존하는 의무도 지킨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양심이 확신하는 내용 속에 구체적인 것까지 포함된다면, 모든 것이 양심이 되면서 서로 대립하게 됩니다. 결국 양심은 모두가 동의하는 추상적인 도덕 법칙에 대해서만 도덕성을 느끼게 되죠.


“의무를 확신하는 것이 의무에 합당하므로, 그것은 타인에 의해 인정된다. 이를 통해 행위는 타당하며 실제적으로 현존한다.”

4)

앞에서 일단 양심이 확신하는 것은 구체적 도덕 법칙이 아니라 추상적 도덕 법칙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도덕 법칙에 대해서는 도덕성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여기서 일반적 도덕 법칙이란 “내용이 일반적인 것이고 따라서 직접적으로 그 자체에서 순수 의무의 본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형식과 내용이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헤겔은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우선 이런 일반적인 것이 자기 확신과 무관하게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법 또는 법률)이라면 여기에는 자기 확신이 빠져 있으므로, 양심은 그와 같은 형식을 도덕적이라 보지 않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도덕 법칙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것은 역시 개별적인 도덕 법칙에 대립하는 한, 하나의 규정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것 역시 하나의 구체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거죠.


더구나 일반적 도덕 법칙과 개별적 도덕 법칙의 구별조차 모호합니다. 왜냐하면 상품 교환의 사회에서 보듯이 개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오히려 전체에게도 이익이 되고, 개별자에게 손해되는 것이 전체에게 손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개별자가 자기를 위해 행한 것이 일반자에게 좋은 것으로 된다. 그가 자기만을 고려하면 할수록 타인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더 커지며 또한 그가 처한 현실은 다만 이런 것이어서 타인과 연관해서 존재하고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반적 법칙이 더 도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장점 또는 이익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것이 어떤 행위에서 야기하는 장점은 사실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더구나 이런 장점이나 이익의 계산은 양심의 개념 자체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도덕성은 부분적으로 이런 통찰의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연성에 종속하며, 부분적으로는 양심의 본질은 이런 결과에 대한 계산이나 숙고를 거부하고 그런 이유와 무관하게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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