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동북 만주 기행 5
이병창 2013.07.18 247
소왕청 유격 근거지를 답사한 감회를 되새기다보니 잠이 오지 않는다. 혼자서 소주를 먹는다. 갑자기 유격대가 되고자 한 철학자 박치우 선생이 생각났다.



박치우는 일제 강점기(아래 한글이 일제 ‘시대’를 치니 저절로 ‘강점기’로 바꾸어 준다. 아래 한글 정말 최고다.) 경성 제대 철학과 출신이다. 박종홍, 신남철보다는 한해 정도 후배로 알고 있다. 신남철이 헤겔, 마르크스의 정통 연구자라면 박치우는 오히려 듀이와 같은 자유주의 철학을 주로 연구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투쟁에 특별하게 관여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소설가 이효석과 함께 근무하다가 숭실전문학교가 일제 말 일제의 강압정책으로 폐교되자, 갑자기 실업자가 된다. 그는 당시 친일신문이라고 알려진 현대중외일보 기자가 된다. 그러면서 일제 말 43년경 북경으로 간다.



북경으로 간 이유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그저 기자니까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기 위한 사례를 발굴하기 위해 파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이극로가 북경을 통해 연안파가 있는 연안으로 탈출한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던 것 때문에 자극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는 해방을 만주에서 맞는다. 그리고 귀국하자 그는 조선공산당의 박헌영의 비서가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선공산당의 대중지라고 할 수 있는 현대일보의 논설주간이 되면서 조선공산당과 박헌영을 옹호하는 많은 글들을 발표하게 된다.



그의 입장은 그가 박헌영의 비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박헌영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자유주의자로부터 이렇게 갑자기 전환하게 된 이유는 아직까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박치우의 내적인 고민이 그의 껍질을 뚫고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박헌영이 북한으로 탈출하자 함께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해주 금강학원에서 유격대를 양성한다. 그는 금강학원에서 정치를 강의했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금강학원에서 첫 번째 대규모 유격대를 파견할 즈음 그는 이 부대의 정치위원이 되어 파견된다. 숭실전문학교 철학교수가 마침내 유격대 정치위원으로 전환한 것이다.



누가 배신했는지? 그가 속한 유격대는 남파 직후 태백산에서 토벌에 걸려 괴멸되었다고 한다. 그 역시 태백산 어디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그후 박헌영 파는 북한에서 숙청되었으니 남과 북, 어디에서도 그를 기리는 사람은 없다. 그의 철학에 관해서 다행히 지금 몇몇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다. 전남대 위성복 선생이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그는 박치우에 대한 책을 한권 썼다.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그는 급진 자유주의자로서 친노 정도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철학자가 게릴라까지 되기에 그가 내면적으로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 철학하는 후배로서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라 생각된다.

0 개의 댓글
(댓글을 남기시려면 사이트에 로그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