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상 자체
지금까지 상품교환을 모델로 하는 사회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헤겔은 이 관계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한 가지가 필연적으로 교환이 일어나는 균형적인 관계입니다. 다른 하나의 측면이 교환이 우연적인 여러 원인으로 중단되는 불균형의 관계입니다. 이 두 관계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아요. 말하자면 교환의 불균형을 통해서 교환의 균형이 회복되는 끝없는 운동 속에 있지요. 이런 불균형을 통해 균형이 회복되는 관계 전체를 헤겔은 사상 자체라고 규정했습니다.
헤겔은 이런 ‘사상 자체’를 설명하면서, <개체성과 현실>, <행위 일반과 개별적 행위>, <목적과 현실>이라는 개념들을 이용합니다. 우리는 상품교환 사회를 이루는 ‘생산과 소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노동과 교환’ 등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말들이 쉽게 이해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상 자체는...본질적으로 현실과 개체성의 상호침투이며 따라서 양자의 통일이다. 이것은 우선 행위인데, 이 행위는 순수한 행위 일반을 말하기도 하며 동시에 이 개체의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목적으로서, 현실에 대립하여 여전히 개체에게 속하는 개별적인 행위이며 동시에 사상 자체는 이런 목적이라는 규정으로부터 대립된 규정으로 이행하면서, 마침내 현실이 되며 그래서 의식에 대해 대상으로서 현전한다.”(223쪽)
이런 관계에서 기본적인 축은 결국 특수한 노동의 측면(목적, 사용가치, 개별적 행위)과 사회적으로 실현되는 가치(현실, 교환가치, 행위일반)의 측면입니다. 헤겔은 이 두 측면의 관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사상 자체를 “자기 자신의 확신이 대상적인 본질인 사상(사태;Sache)이 되는 것”(223쪽)이라고 하며, 이를 좀 더 풀어서 “자기의 것인 자기의식으로부터 산출된 대상이지만 자유로운 본래의(eigentlich) 대상이기를 중단하는 법이 없는 것”(223쪽)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은 위에서 언급한 표현들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헤겔은 여기서 ‘사상’은 의식의 단계에서 의식에 대해 출현했던 대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합니다. 그 경우 대상은 의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립했습니다. 반면 여기서 사상은 주관과 마침내 일치에 이르게 된 대상인 거죠. 그래서 헤겔은 ‘자유로운 본래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이성이 추구해 왔던 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자아와 타자가 서로 인정하는 것(인격의 단계)을 넘어서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인정하는 것인데, 마침내 이런 ‘사상’에 이르러서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성의 출발점이었던 ‘모든 실재성이라는 자기 확신’이 이제 진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성실한 의식
이 사상 자체는 논리학적인 범주로서는 <스스로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실체’라는 범주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헤겔은 생명체를 ‘본질’이라는 범주로 표현했습니다. 이 생명체는 개별자이지만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하죠. 그런데 이런 생명체에서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대립이 나타납니다. 이제 실체라는 범주에 이르면 이 실체는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이 실체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개인들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사회로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존재이죠.
하지만 여기서 실체는 이제 막 출현한 것이며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실재하는 실체wahrhafft realen Substanz’, 곧 정신의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상품교환의 모델에서 짐작하듯이 이 교환의 관계는 불균형을 매개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며, 이런 불균형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불균형이 다시 지양되어 균형이 회복되더라도, 또 다시 불균형이 출현하죠.
이제 사회적 분업이 계획적인 방식으로 규정될 때, 즉 법적으로 확정된 사회적 분업에 이르게 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실체, 곧 정신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 교환의 사회 속에서는 지속적인 균형이 출현합니다. 정신의 운동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반면 여기서 처음 등장한 실체는 이런 정신의 단계에 도달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헤겔은 ‘단순한 (정신적) 본질die geistige Wesen’이라고 표현하기 합니다.
“사상 자체가 이런 사상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의식에 머무르는 경우 단순한 본질의 형식을 가진다. 단순한 본질인 사상 자체는 일반적인 것이니 모든 자신의 상이한 계기들을 자기 내에 포함하면서도 오히려 그 계기들에 속하는 것이며, 그런 규정된 계기들에 대해 무관계하면서, 독자적으로 분리되어frei 떠도는 것이다. 사상 자체는 이렇게 자유롭고 단순하면서 추상적인 것이므로 본질로서 간주된다.”(224쪽)
헤겔은 이런 사상 자체 즉 ‘실체’와 진정한 실체로서 ‘정신’의 차이를 ‘주어’인가 ‘술어’인가 하는 구분을 통해 구별하려 합니다. 정신의 단계에 이르면 개별자가 아니라 정신 즉 사회 자체가 운동의 중심이 됩니다. 마치 생명체에서 생명성이 개체의 여러 요소들의 주체인 것과 같지요. 그러나 아직 직접적인 실체 즉 사상 자체의 단계에서 사회는 비록 일반적인 존재이지만, 아직은 개체에 대립해서 나타나고, 개체는 이런 사회를 지반으로 해서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실체는 개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 속성으로 간주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실체인 사회는 개체의 술어가 되죠.
“사상 자체는 유Gattung이다. 그것은 자기의 종Art이 되는 모든 계기들 속에서 발견되며 그러면서도 그런 계기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것이다.”(224쪽)
이처럼 사회를 이용해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가진 개인을 헤겔은 ‘성실한ehrlich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실한 의식’이란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죠.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그저 공부만 잘하면 이 세상 모든 문제가 풀리리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런 모범생이 바로 성실한 의식의 표본입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을 믿고 있기에 시장 속에서 또 다시 실험하면서 앞으로 나갑니다. 그는 언젠가는 자신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시장은 그의 근면성실함에 대해 보답할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믿음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성실한 의식은 현실의 우연성이 끝내 필연성에 의해 지양되고 만다는 사상 자체의 개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현실의 불균형은 일시적일 뿐이고 언젠가는 균형이 회복되니, 주관적 노력은 보답을 얻게 마련이죠.
“개체가 사상 자체를 하나의 계기 속에서 또는 하나의 의미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바로 그런 것을 통해 다른 계기나 의미 속에서는 사상 자체를 장악하므로 행위 속에서 항상 만족을 얻는다. 이런 만족은 자신의 개념상 그런 의식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224쪽)
3)성실한 의식의 합리화
그러나 성실한 의식이 함정에 빠지는 것은 불균형에서 균형으로, 우연성에서 필연성으로 현실이 이행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한 개인의 짧은 인생은 이런 불균형, 우연성의 시간에 속할 수도 있죠. 헤겔에 따르면 이런 경우 성실한 의식은 모범생답게 이런 불균형과 우연성을 해결하는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는 우선 목적을 그 자체로서 무엇인가가 실현된 것이라 간주합니다. 그는 자기의 주관적 목적에 따라서 특수한 노동을 통해 어떤 작품을 산출하죠. 비록 그런 작품이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더라도, 그는 만족합니다. 그는 비록 판매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작품을 생산한 것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미 기여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만든 작품은 판매되지 않았는데, 이는 비판매라는 부정적 가치가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헤겔은 이런 방안을 설명하면서 <악동이 따귀를 맞은> 경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엄마로부터 얻어맞기는 했지만 적어도 엄마의 관심이 생겨났다는 것에 만족하며, 자신의 악행은 엄마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자는 그 자체 아래에 부정적인 것이나 소멸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작품이 스스로 부정되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 그의 행위이다. 개체는 다른 사람을 그 작품에 향하도록 자극했으며, 그의 현실이 소멸하는 가운데서 여전히 만족을 발견한다.”(224쪽)
?때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생산하고 나서 이를 시장에서 판매하러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런 판매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 자신의 작품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으며 언젠가 미래에 그 작품의 가치를 알아 줄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아요. 이런 경우를 비유하자면 시를 써놓고 감추어두는 시인지망생을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너무 위대하므로 동시대인은 알아주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후대에는 반드시 널리 알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는 개체는 사상 자체를 수행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어떤 것도 행위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사상 자체는 그의 결단과 실재성의 통일이다. 현실은 그의 소망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된다.”(224쪽)
?마지막으로 개인의 어떤 행위가 가해지지도 않았지만 세상 속에 그에게 흥미로운 것이 발견되었다고 합시다. 이 경우 그는 이런 현실이 그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또는 그가 행운에 부딪히는 경우 그는 이런 행운이 자기의 보이지 않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현실의 작품은 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사회적 가치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니 모든 작품에는 자기 외 다른 사람의 노력이 들어가 있는 셈이죠. 그러니 거꾸로 남들이 만든 작품 속에서도 그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헤겔은 이런 사람에 대해서 구체적 예는 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런 경우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소위 무슨 ‘빠’라는 사람들을 보죠. 그는 위대한 정치인에게 맹목적으로 추종하죠. 왜냐하면 그는 이 정치인과 자기를 동일시해서 그의 업적을 자기 자신의 업적으로 간주하죠. 그 자신은 지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한 적이 없지만 무언가 자기가 스스로 이런 업적에 기여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기에 정치인이 비난받으면 그 자신이 비난받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그 자신과는 전적으로 무관한 사실도 자신이 찬성하거나 반대해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하죠.
“마지막으로 그에게 흥미로운 것이 그의 기여 없이 이루어졌다면 그에게 이 현실은 그에 의해 산출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가 그것에 대해 발견하는 관심 속에서 그것은 사상 자체가 된다. 그가 개인적으로 겪은 행운이 있다면 그는 이것을 자신의 행위이며 업적으로 간주하면서 관계한다.”(225쪽)
이런 예들은 중국의 문학자 노신에 의해서 <아큐정전>에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큐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그래서 자신이 여자에게 발로 차이더라도, 자신이 그 여자에게 발로 차라고 요구했다고 생각하거나, 언젠가 그 여자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행위를 후회할 것을 생각하며 흐뭇함을 느낍니다. 심지어 아큐는 그 여자가 발로 찬 행위를 스스로의 행위로 착각하면서 자신이 그 여자를 발로 찼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첫 번째 경우는 ‘작품의 부정적 가치(작품이 아니면서도 동시에 사상인 것; ebensowohl seine Sache wie gar kein Werk)’이며, 두 번째 경우는 ‘공허한 목적이나 순수한 행위’이며 세 번째는 ‘행위한 적이 없는 현실’입니다. 이것은 사상 자체를 이루는 세 가지 계기 즉 목적, 수단, 현실이라는 계기가 통일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그 하나의 계기가 전체의 사상 자체로 간주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렇게 하나의 계기만으로 사상 자체로 간주하는 일은 모든 우연성이 지양되고 필연성이 실현된다는 사상 자체의 개념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이 필연성에 의해 지양되고 마는 우연성의 패를 잡고 있었다는 것은 망각되었습니다.
“이런 의식의 성실성이나 이런 의식이 도처에서 체험하는 만족은 이미 밝혀진 대로 사실상 의식이 사상 자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상을 종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의식은 그 계기들을 차례로 사상 자체라는 술어의 주어로 삼고 나서는 이 계기들을 차례로 망각해 버린다.” (225쪽)
4)성실한 의식의 전도
그러나 목적과 행위, 현실이라는 계기는 사상 자체에서 서로 연관된 계기들이므로, 성실한 의식도 결국 이런 계기들의 연관을 파악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사상 자체의 우연성의 계기를 파악하게 되면서 성실성의 의식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실성의 진리는 보기처럼 그렇게 성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실성은 이 상이한 계기들을 사실상 분리해 놓을 만큼 멍청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런 계기들 사이의 대립을 직접적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계기들은 단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225쪽)
이렇게 성실한 의식이 무너지게 되면, 그는 이제 전전하게 됩니다. 그는 주관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데 우선권을 두었다가는 이내 그보다는 객관적인 사상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꾸로 객관적인 사상 자체에 우선권을 두었다가는 다시 주관적인 목적을 수행하려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예술가의 고민을 상기합니다. 예술가는 한번은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려 하다가 다른 한번은 예술 자체에 충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죠. 예술가는 결국 그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전전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실한 의식도 결국은 끊임없이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 사이에서 전전하게 되죠.
성실한 의식이 이렇게 전전하는 까닭은 궁극적으로 사상 자체가 우연성을 통해 필연성이 관철된다는 것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상자체는 개체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개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는 개체성과 일반성이 스스로 운동하면서 이루는 상호 침투이다. 그러나 이 성실성의 의식에게서 이 전체는 단지 단순한 본질이며 따라서 추상적인 사상 자체로 현현하므로, 그 계기들은 그런 사상 자체 밖에 분리되어 있고 서로 분리된다. 그러므로 이런 전체는 자기를 보존하는 것Fuersichbehalten과 타자에 대해 자기를 드러내는 것Ausstellen 이 분리되면서 교체되는 것을 통해서만 전체로서 완성되고 서술된다.”(226쪽)
바로 이런 분리하면서 교체하는 것 속에서, ‘개체성의 서로 간의 유희’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개체성은 자신을 그리고 상대편을 기만하면서 동시에 기만당하고” 있죠.
5)개체성의 상호 기만
이어서 헤겔은 이런 상호 기만을 상세하게 서술합니다. 이를 단계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기만은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개인적인 노동만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이 아니라 교환을 통해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것 즉 사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기만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자기의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고, 서로 상대방의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개인은 어떤 작품을 수행합니다. 이런 작품은 어떤 객관적인 가치(사상)를 실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서 타인들은 이런 수행을 객관적인 것(사상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사실 개인은 자기의 주관적 목적을 수행한 것(그의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타인들은 이 개인에 의해 기만당한 것이죠.
?그런데 이 타인들은 이 객관적인 가치가 자기에 의해 수행된 것이거나, 적어도 자기가 도움을 준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므로 타인들은 사실 자기가 기여한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타인들 역시 개인을 기만한 것이죠.
“타인들은 그에 의해 기만당했다고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를 기만하고자 한다.”(226쪽)
?개인은 이 사상에서는 타인의 기여가 아니라 자기의 기여가 중요한 것이며 타인은 그 자신의 작품에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가운데 그는 이런 사상에서 자기의 기여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거꾸로 그는 타인들의 행위 속에서 자기를 개입시키면서, 타인들로부터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면 머리속의 판단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기여를 각인시키려 합니다.
“그는 타인들의 작품에서 작품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의 용기와 극기를 사랑한다. 즉 그의 용기와 극기란 그 작품을 작품으로서 더럽히지 않으며 더구나 자신의 비난을 통해서 더럽히지 않았다는 데 있다.”(227쪽)
?이런 개입에 의해 기만당했다고 생각하는 타인들도 그의 행위를 단지 그들을 위한 것으로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모순되게도 이미 그들의 행위는 ‘자신의 것을 일반적인 지반 위에서 전시Ausstellen하는 것’이 됩니다.
6)입법적 이성으로의 이행
이런 자기 자신과 타인을 기만하고 또 기만당하는 관계는 작품의 가치가 교환의 시장에서 결정되는 한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작품 자신은 자기가 생산한 것이지만 그 가치는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니, 작품에는 그 자신의 것이 문제될 때, 타인의 것이 출현하며 거꾸로 타인의 것이 문제가 될 때 그 자신의 것이 출현합니다. 그 결과 “모든 개체로 접촉하면서 서로를 초청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행위는 곧 일반적인 행위가 되죠.
그런데 시장의 상품교환 관계에서 객관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과 대립합니다. 그래서 각 개인은 자기의 주관적인 가치만을 알고,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죠. 그 결과 사회적 가치, 타인의 기여는 자기가 알지 못하면서도 반드시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됩니다.
헤겔은 이런 관계를 비유하면서 “신선한 우유가 있으면 반드시 파리가 빠져드는 상황”을 거론합니다. 파리가 빠져드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우유가 신선한 것이기 때문이니, 이는 불가피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성실한 의식에게서 “사상은 모든 개체의 행위이며 동시에 각자의 행위(Thun Aller und Jeder)”(227쪽)가 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기만하는 관계가 출현합니다. 이와 같은 기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제 알 수 없는 힘에 의한 시장 교환이라는 모델이 물러나고 서로 합의에 의해서 교환이 이루어지는 모델이 출현하게 됩니다. 이제 성실한 의식은 ‘입법적gestetzgebende인 이성’의 단계로 고양됩니다.
“사상 자체는 이를 통하여 술어로서의 관계 그리고 생동성을 결여한 추상적 일반성이라는 규정을 잃어버리며, 개체성에 의해 침투된 실체로 된다. 그것이 곧 주체이다. 이런 주체 속에서 개체성은 ...모든 개체성으로 존재하며 일반성은 ....모든 자의 행위이며 각자의 행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228쪽)
“순수한 사상 자체[시장]는 위에서 범주Kategorie로 규정된 것이다. 여기서 존재는 자아이며, 또는 자아는 존재가 된다. 사상 자체는 사유이지만, 현실적인 자기의식으로부터 여전히 구분되는 사유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현실적 자기의식의 계기들은..... 대자적인 존재와 타자적인 존재이며, 단순한 범주와 합일하는 것으로서 정립되면서 이를 통해 단순한 범주가 모든 내용이 된다. ”(228쪽)
여기서 ‘범주’란 사실은 자기의식이지만 대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지칭할 때 헤겔이 사용하는 고유한 용어입니다. 단순한 사상 자체는 이런 의미에서 범주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반면 이제 이런 범주과 사유가 통일되는 단계로 고양이 일어납니다. 즉 합의에 의한 교환 관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