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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13)-계몽에서 도덕성으로
이병창 2020.02.07 34
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13)- 계몽에서 도덕성으로


1) 계몽주의를 넘어서

앞에서 헤겔은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과 연관하여 프랑스 혁명의 여러 양상을 해석했습니다. 공포 정치, 당파 투쟁, 혐의법 등이 모두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었습니다.


이제 헤겔은 절대적 자유의 개념을 극복하면서, 마침내 자기 소외의 정신을 벗어나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정신으로 이행합니다. 이 부분이 320:34부터 323: 21 즉 B-3 소절 끝까지 부분입니다.


“절대적 자유는 본래 추상적 자기의식이다. 그것은 자기 내부에 있는 모든 차이와 그런 차이를 존속하게 하는 것을 파괴한다. 절대적 자유는 이런 추상적 자기의식으로서 자기에게 대상이 된다. 죽음의 공포는 이 절대적 자유의 본질을 직관하게 한다.”


절대적 자유 즉 일반 의지가 지닌 부정적 활동의 결과는 모든 차이의 제거, 곧 죽음입니다. 이런 결과는 본래 일반 의지의 개념과 전혀 다른 것이 되죠. 일반 의지의 본래 개념은 모든 개인의 토대, 즉 삶의 기반이었습니다. 일반 의지는 삶의 기반이었는데 오히려 정 반대로 죽음을 낳았다는 겁니다.


2) 죽음을 통한 자기 극복

그런데 계몽의 부정적 활동은 부정을 위해서라도 다시 차이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계몽은 자기가 만들어낸 차이를 스스로 부정하는 활동이니까요. 계몽은 이런 부정성을 위해 그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왜냐하면 부정성이 ... 이 속에서 일반 의지의 계기가 실현되는 존립의 지반이며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들고 부수고 하는 혁명의 소동은 끝없이 계속됩니다.


“그 절대적 주인 즉 죽음을 겪었던 개별적 의식은 부정성과 차이를 다시 파괴하게 한다. 개별적 의식은 자기를 여러 집단 속에 배치하고 또 분할되거나 제한된 작품으로 돌아오지만 이를 통해 그의 실체적 현실[죽음]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런 정신의 소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반복은 아닙니다. 삶의 토대가 죽음의 지반으로 전환하고, 차이가 발생했다가 다시 부정되는 과정을 통해 정신은 마침내 현실과 진정한 통일에 이르게 되죠.


“정신은 이런 필연성의 순환을 새로이 관통해야 하며 항상 반복해야 한다. 그럴 때만 자기의식과 실체의 완전한 침투가 결과가 될 것이다. 이런 침투를 통해 자기의식은 ... 자신을 이런 특수자로서가 아니라 다만 일반자로서 인식하고 발견하고자 원했으며 그러기에 개별적 자기의식을 특수자로서 배제하려 했던 일반 정신의 현실적 힘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자유라는 개념 자체에서는 이런 기대는 무산되고 맙니다. 절대적 자유는 끝없는 ‘정신의 소용돌이’에 불과하니까요. 이런 진정한 통일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장 숭고하고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교양의 단계를 거쳐 가야 합니다. 그 단계란 곧 일반 의지의 무자비한 부정적 활동 즉 공포정치이죠.


“...겪는 교양은 가장 숭고하가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교양이다. 이 교양을 통해 개별적 자기의식은 그의 단순한 현실은 직접적으로 소멸하며, 공허한 무로 이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모든 규정된 것[교양의 앞선 단계에서 등장했던 실제적 의식]은 자아가 절대적 자유 속에서 겪은 상실 속에서 사라진다. 그 부정성은 의미 없는 죽음이며, 부정적인 것의 절대적 공포이며, 그것은 어떤 긍정적인 것도 어떤 충족하는 내용도 자기 속에 갖지 않는다.”


3) 도덕성의 개념

헤겔은 이제 마침내 정신이 공포 정치를 통해 겪는 이런 죽음의 절대적 공포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 죽음의 공포는 우연한 것이 아니며 정신이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죠.


“그러나 동시에 부정성의 현실적 힘은 낯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안에 놓인 일반적인 필연성도 아니고...., 사적인 소유자[왕]의 개별적인 몰락. 소유하는 자의 변덕도 아니다. ...이 부정성의 힘은 ... 이제는 희생하기 위해 돌려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반 의지의 힘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일반 의지는 자기의식과 직접적으로 하나가 된다.”


개별적 개인은 이런 죽음의 공포 앞에서 더는 자기의 자아를 일반 의지로 전치하지 못하고 일반 의지를 위해 자기 자아를 희생하게 됩니다.


“일반 의지는 순수하게 부정적인 것이므로 순수하게 긍정적인 것이다. 의미 없는 죽음은, 자아의 충족되지 않는 부정성은 내면적 개념 속에서 절대적 긍정성으로 전환된다. 의식에서 일반 의지와의 직접적인 통일은 또는 특정한 점으로서 자기를 일반의지 속에 발견하려는 요구는 ... 단적으로 대립된 경험으로 전환한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등장한 정신의 개념이 바로 도덕성의 개념입니다. 이는 최초로 칸트의 자율적 의무라는 개념으로 등장하죠. 이 도덕성은 곧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자신을 일반적 의지, 도덕적 법칙과 합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의식은 일반 의지를 자기 자신으로서 인식하며 자신을 본질로서 인식한다. 이때 본질은 직접적인 본질[절대적 자유]이 아니며, ..... 오히려 일반 의지는 개별적 의식이 순수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동시에 의욕 하는 것이다.”


이런 순수하게 인식하고 동시에 순수하게 의욕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덕성입니다. 이 개념은 칸트의 의무, 셸링의 영심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죠.



4) 계몽과 도덕성의 차이

여기서 계몽과 도덕성의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계몽은 개별 자아가 스스로를 일반적 자아로 간주하는 겁니다. 즉 편집적인 자아이죠. 반면 도덕성은 개별 자아가 내면 속에 일반적 자아를 받아들여 자기를 버리고 이를 대행하는 겁니다. 즉 도덕 법칙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도덕 법칙을 수행하는 것 속에 즐거움을 얻는 겁니다.


계몽의 자아는 고유한 의미를 고집합니다. 반면 도덕성에서 자아는 이제 다만 형식에 불과하죠. 그것은 일반 의지를 개별 의지로 전환하는 스위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개별적 아아로서 자기의식은 다만 주관이나 실제적 행위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 형식은 자기의식에 의해 형식으로 의식된다. 마찬가지로 대상적 현실은 즉 존재는 자기의식에게 자체성을 결여한[Selbstlos] 형식이다. 왜냐하면 이 현실은 의식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인식은 인식을 본질로서 인식한다.”


여기서 헤겔이 말한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이때의 인식은 인식을 본질로서 인식한다” 이 말은 도덕적 인간이 도덕적 법칙을 인식하는데 이 도덕적 법칙을 자기와 낯선 것, 강제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내적 본질로서, 그러므로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기보다 스스로 자명하게[직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서 인식된다는 뜻이죠.


이런 도덕성은 보편적 법칙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동시에 이를 자발적으로 즉 어떤 강제적 노력 없이 실행합니다. 즉 몸에 배어서 저절로 흘러나오듯이 실행하게 되죠. 따라서 이런 경우 비록 보편적 도덕 법칙의 실현된 결과가 아니라 그런 법칙 자체의 수행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이 됩니다.


“절대적 자유는.... 새로운 영역으로 이행한다. 이 영역에서 절대적 자유는 현실로 실현된 것이 아니더라도[in dieser Unwirklichkeit] 진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정신은 자기가 사상인 한에서 사상으로 머무르는 한에서 그런 진정한 것의 사상을 즐긴다. 이런 자기의식 속에 포함된 존재[도덕 법칙]를 완전하고 자립적인 본질로서 인식한다. 이제 도덕적 정신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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