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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 서문
이병창 2020.02.26 28
정신 현상학 주석 C 절 도덕성(1) 서문


1) 루소와 칸트

앞에서 계몽주의의 정신이 공포 정치로 끝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헤겔은 B 절 자기 소외 정신을 마치고, C 절로 들어갑니다. 이 C 절의 제목은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입니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칸트의 의무 개념과 셸링의 양심 개념 그리고 종교의 믿음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스스로 일반적 규범을 실천한다는 데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이 절의 제목에 들어 있는 ‘자기 확신’이란 이렇게 스스로 실천한다는 것, 즉 몸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행위라는 의미죠. 이 절의 부제가 곧 ‘도덕론’이죠. 왜냐하면 이때 자기 확신하는 것은 개인적인 준칙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공포 정치에서 도덕론으로 이행하는 것은 루소와 칸트의 관계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의 기본 개념은 일반 의지이고, 이는 루소에서 나옵니다.


칸트는 일반 의지 개념이 갖는 문제점을 이해했습니다. 일반 의지는 개인이 도덕적 존재일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각 개인은 자기의 주관적 이해를 일반 의지로 공포하게 됩니다. 그러면 편집증적 세계가 출현하고 모든 타인을 제거하려는 공포 정치가 출현합니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론을 구상했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실천이성 비판이죠.


헤겔은 누구보다도 칸트의 의도를 잘 이해했고, 정신현상학에서 공포 정치를 이어서 칸트 의무론이 전개되는 것도 그런 까닭으로 보입니다.


2) 정신의 이행 과정

우선 자기 확신하는 정신의 첫 번째 단계, 칸트의 의무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서론 격으로 헤겔은 지금까지 정신의 발전과정을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A 절 진정한 정신은 두 단계로 설명됩니다. 우선 ‘아름다운 인륜적 세계’(그리스 세계)에서 혈연적 부족에서 개인이 출현하고, 개인의 형식적 인격이 상호 인정됩니다. 이렇게 해서 ‘법의 세계’가 출현하죠. 여기서 개인은 내용적으로는 각자 주관적이어서 서로 대립합니다. 그런 대립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황제의 자의에 불과하죠. 광기에 사로잡힌 로마 황제는 사실 로마 시민의 필연적 산물이었다는 말이죠.


B 절 근대 세계에서 시장을 통해 내용상 일반 의지 즉 객관적 의지가 확정됩니다. 그러나 이 일반 의지는 각 개인의 의지 너머에 존재하는 소외된 존재이죠. 헤겔은 이런 소외된 객관적 의지는 개인의 순수의식(무의식, 신앙)에 내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근대 세계에서 개인이 겪는 운동은 이런 순수의식에 이르러 일반 의지를 몸에 체화하는 과정입니다. 개인은 세상을 전전하면서 세속적 권력과 부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으며(교양), 신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스스로 주관적 의지를 넘어서게 됩니다(계몽주의). 마침내 공포 정치에서 공포를 통해 자기의 주관적 의지를 버리게 되죠(절대적 자유의 공포). 이렇게 해서 개인은 순수의식에 내재하던 일반 의지를 몸으로 체화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소외를 통해, 최고의 추상을 통해 정신의 자아에 실체가 형성되면서 우선 일반 의지로 되고 마침내 그 자신의 소유가 된다.”


3) 지와 진리의 통일

이렇게 해서 도달된 결과를 헤겔은 지 Wissen와 진리 Wahrheit의 통일로 규정합니다. 이런 통일은 그저 가능성(an sich oder Fuer uns)으로 존재했던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이 습득, 체화하게(fuer das Selbstbewusstein) 되는 거죠. 여기서 지와 진리의 통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헤겔은 이를 다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제 대상은 의식에게 자기 확신이 되며, 지가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 확신 자체는 더는 ... 순수한 지 자체이다.”


이 말은 나중에 나오는 양심이라는 개념에 비추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심은 두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우선 양심은 즉각적으로 행동하죠. 여기서 지와 행은 불가분리입니다. 바로 이런 지행 일체를 헤겔은 자기 확신과 대상[행동], 또는 진리의 일치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양심에서 확신하는 것은 결코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도덕적 일반 규범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확신은 지 자체가 되죠.


“실체는 자기의식에게 직접적으로 동시에 절대적으로 매개된 것으로서 불가분리적인 통일 속에 있다.”


여기서 개인이 일반 의지[실체, 일반적 도덕규범]과 합일되는 방식은 직접적이며 동시에 매개된 것이라 합니다. 우선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중에 양심에서 보듯이 즉각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양심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즉각 깨닫게 되죠.


그러면 이런 양심적 인식이 동시에 매개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런 양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세계를 전전하면서 교양을 얻고, 신앙과 투쟁하면서 신앙으로부터 배우고, 죽음의 공포를 거쳐 가야 합니다. 비로소 인간에게 양심이 출현하게 되죠.


“[매개적인 이유는] 왜냐하면 자기의식은 본질적으로 자아의 운동 즉 직접적 현존의 추상성을 지양하고, 자기를 일반적인 존재가 되도록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4) 인식하는 의지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주로 양심의 예를 가지고 설명했습니다만, 사실 이런 두 가지 특징은 의무 개념이나 양심 개념 믿음 개념 모두에 공통적인 특징이죠.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은 우선 일반적인 원리를 인식하고, 또한 이를 즉각 실행합니다. 헤겔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죠.


“그 자신에게 고유한 현실이 된 이런 직접성이 모든 현실이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것은 존재 자체이고 .... 순수한 존재이며, 존재 일반 또는 모든 존재이다.”

“절대적 본질은 .... 오히려 모든 현실성이다. 이 현실은 다만 지로서만 존재한다.


헤겔은 이런 글에서 내적인 것[지, 확신]과 현실적인 것[행동]의 일치를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런 자기 확신하는 정신을 “인식하는 의지”라는 개념으로 규정합니다.



5) 자유의지

이런 인식하는 의지는 즉각적으로 행동하므로 곧 자유로운 의지가 됩니다. 여기서 자유 의지란 좁은 의미에서 자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는 자유가 아닙니다. 여기서 자유는 곧 일반적 도덕규범을 실행하면서도 그 행위가 저절로 몸에서 나오고 아무런 억압감을 느끼지 않고 심지어 즐거움을 느끼는 자유의지입니다.


“지 Wissen는 그의 자유를 인식하는 가운데서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자기의 자유에 대한 이런 지가 그의 실체이며, 목적이고 고유한 내용이다.”


칸트는 자유의지를 논하면서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의식의 사실’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손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손을 들어 올리면 자기의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죠.


여기서 헤겔은 자기 확신하는 정신의 행위는 그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쾌락 때문이 아니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쾌락을 원인으로 하는 것일 뿐이죠. 오히려 정신의 행위는 바로 자유롭게 일어나는 것이니, “자유에 대한 지”[또는 느낌]이 곧 행위가 일어나게 하는 것 즉 “실체이며, 목적이며 내용”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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