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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장 주석2- 정신의 개념
이병창 2019.06.29 34
정신장 주석 2- 정신의 개념

1) 정신의 의미
정신 장을 시작하는 앞의 단락에서 헤겔은 이성에서 정신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헤겔은 이성 장에서 보편적 이성, 누구나 인정하는 범주를 찾으려 했습니다. 칸트 선험철학이 주장하듯 보편적이라면 객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칸트에서 이런 범주는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지만 헤겔은 이런 보편적 범주를 경험적으로 얻으려 했어요..

헤겔은 우선 자연을 관찰하면서 보편적 범주를 찾지만 거기서는 그런 결과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이어서 인간 사회에서 상품 교환 체제나 민주주의적 질서 속에서 헤겔은 마침내 보편적 범주, 누구나 인정하는 범주가 실현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헤겔은 이런 상품 교환 체제나 민주주의 질서를 ‘인륜적 실체’라고 규정하죠. 이 인륜적 실체에서부터 정신 장의 운동이 시작합니다. 그러면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헤겔은 아주 간단하게 ‘인륜적 현실성’이라고 규정합니다. 인륜적 실체나 인륜적 현실성이나 무어가 다를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거의 같은 말인데 말입니다.

인륜적 현실성이란 말을 더 설명하면서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은 실제하는 의식[곧 실제하는 개인]의 자아Selbst다.”

헤겔이 ‘자아’라는 말을 쓸 때에는 그저 단순한 의식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헤겔은 자아라는 말을 항상 실천적 의지와 관계해서 사용하지요. 이때 자아란 곧 실천적 주체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곧 이런 뜻이 됩니다. 인륜적 실체를 자신의 목적으로 삼아 실현하는 의지가 곧 정신이라는 거죠. 이렇게 되면 ‘실체’는 ‘현실성’이 됩니다.

2) 소외
인륜적 실체가 이미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상품 생산이 그렇고 민주주의가 그렇지요. 그런데 왜 여기서 실천적 주체가 등장해야 할까요? 이게 사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주장하려는 핵심적 주장과 연관됩니다.

이 말의 뜻은 헤겔이 정신 장에서 소외(Entfremdung, Entausserung)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해됩니다. 정신 장의 핵심이 B절에 나오는 데 이 B절의 제목이 ‘자기 소외적인 정신’입니다. 내가 알기로 마르크스에 앞서서 헤겔이 소외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끌어들였다고 봅니다.

아다시피 소외의 의미는 마르크스나 헤겔이나 더 소급해서 아담 스미스에서 빌려온 것이죠(물론 말은 헤겔이 처음 사용합니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은 자기를 위해 생산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이 중요하죠. 그것은 개인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외적인 필연성(맹목적 우연)을 통해 강제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맹목적 우연, 외적 필연성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결과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개인은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죠. 대다수 개인은 주관적으로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려 했다가 실패하면서 궁핍과 절망 속에 죽어가기도 하죠. 아니면 아주 소수는 행운을 얻어 일시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도 하죠. 그런 개인의 무수한 죽음, 소수의 성공을 통해서 결국 전체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지죠. 소외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헤겔의 말을 직접 들어볼까요?

“실체, 자기 동일적으로 머무르는 보편적 본질의 측면에서 정신은 ... 만인의 행위가 일어나는 흔들리지 않고 해소되지 않는 토대이고 출발점이다.”

“그러나 대자존재로서 이런 실체는 해소된 것, 자기를 희생하는 선량한 존재이며, 거기서 모든 사람은 자기의 고유한 작업을 수행하고 일반적 존재를 분할하여 그 속에서 자기 몫을 취한다.”

실체의 두 측면입니다. 실체 속에서 실체적 측면은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토대라는 것이고 다른 측면은 실체 속에서 각자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측면입니다. 이런 개인의 행위가 상호작용하면서 보이지 않는 힘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 행위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죠.

“[정신적] 본질의 이런 해소와 개별화가 모든 사람의 행위와 자아가 [실현되는] 계기[즉 실체]이다. 이것이(이런 해소와 개별화가] 실체를 운동하게 하는 영혼이다. 이를 통해 일반적 본질이 이루어진다.”

3)루소와 칸트
이런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품 교환의 체제나 민주주의적 질서가 합리적으로 통제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각자가 전체 속에서 자기의 역할 몫을 깨닫고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지 즉 전체를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의지가 곧 정신이 추구하는 자아입니다. 개별적 자아와 구분해서 이를 보편적 자아라고 말하기도 하죠.

맹목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인륜적 실체’라면 보편적 자아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체제가 실현될 때 그것이 ‘인륜의 현실성’입니다. 쉽게 말해 인륜적 실체가 보편적 자아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칸트 철학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칸트는 루소에 심취했죠. 루소의 일반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의지는 이중성을 지닙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만인의 기반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만인의 투쟁입니다.

만인의 투쟁을 통해 그런 만인의 기반이 생겨나죠. 그 과정은 질서정연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은 수많은 개인 무의미한 죽음을 통한 것입니다. 칸트는 루소의 일반 의지가 근대 사회의 기본이지만 동시에 프랑스 혁명에서 보듯 공포정치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면서, 실천 이성 개념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 실천 이성은 보편적 도덕 법칙을 그 자체로서 수행하는 의지, 즉 순수의지입니다.

4) 정신의 개념
이렇게 해서 헤겔의 정신 장의 운동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헤겔의 정신 개념을 개념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헤겔이 인간을 이론과 실천, 인식과 의지라는 두 차원으로 나누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구분은 칸트의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구분에 기초하죠. 헤겔은 인식에서 의식과 자기의식이라는 두 단계가 있듯이 실천적 의지도 의식과 자기의식이라는 두 단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봅니다.

의지의 자기의식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되기 어려워, 헤겔이 오해되는 이유가 됩니다. 인식은 의식의 단계에서는 관념화되지 않다가, 자기의식에 이르면 관념이 발생합니다. 마찬가지로 의지가 자기의식의 단계에 이르면 관념화되는데, 그게 헤겔은 자유라는 느낌이라고 봅니다. 결국 의지의 자기의식이란 자유의지를 말하는 것이죠. 반면 의식의 단계에서 의지란 욕망을 뜻합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 239쪽 두 번째 단락에서 240쪽 26줄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앞으로 설명할 정신장의 얼개를 개략적으로 서술합니다. 그 내용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데, 앞으로 설명될 것이니, 이 자리에서는 생fir하고 다음에 A절, 진정한 정신으로 바로 들어가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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