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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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진은, 학회지 등재화 규정을 철폐하라.
이병창 2009.10.01 1099
학진은 지금까지 학문의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 왔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학진의 지원이 결과적으로 순기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지 않은 역기능을 야기했다.
나는 그 가운데 학계를 질식시켜온 가장 고통스러운 법이라면
바로 학회지의 등재시켰던 규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학회란 그야말로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단체이다.
수많은 학회가 명멸하면서
그 가운데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지고,
전체 학계가 발전해왔다.
그것은 생명의 진화와 닮았다.

그런데 그 언제가부터 학진이 학회지를 등재하기 시작했다.
학진은 등재지의 발간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원했다.
그런 지원금보다 더 주요한 것은
학진에 등재된 학회지에 발표된 논문만이 학진이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정받아야 학진에 연구기금을 위해 지원할 자격이 얻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학진이 인정해야 대학이 인정해주고
그래서 이런 등재지에 논문을 싣지 못하면 대학에서 자리를 잡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학진의 지원을 포기한 교수들도 이런 등재지에 실린 논문이 아니라면,
대학이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등재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목을 매달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등재지, 등재후보, 비등재지 등으로 학회지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지방학회, 분과학회, 협동과정학회 등은 밀려났고
서울의 메이저 대학 교수들은 완벽하게 학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중앙의 몇개 학회는 거대화되고 화석화되었다.

학진은 이제 단순히 학문의 연구를 지원하는 기관임을 넘어서서
학계 전체를 지배하는 억압적인 권력이 되었다.

학계는 이제 무슨 시장판이 된 듯하다.
먹이를 먹기 위해 움직이는 가운데
무슨 학문이 있고, 어떤 진흥이 있겠는가?

이제 학진은 다시 단순한 지원기관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학진은 학계를 지배하는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학계는 다시 자발적인 학자들이 소통하는 자리로 복귀해야 한다.

왜 자발적인 학회지가 등재되어야 하는가?
학진의 논리는
그래야 우수 학자를 가릴 수 있고, 지원결과를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학진이 지원하는 자를 스스로 심사하지 않고
학회지를 등재화시킴으로써 자동적으로 심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우수학자를 지원한다는 것도 좋고, 지원결과를 평가하는 것도 좋다.
그것은 학진이 스스로 해야 한다.
나는 학진의 그런 변명은 기만이고 사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학회지를 등재시키면서
학계를 권력의 시녀로 만든 것을 은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러므로 요구한다.
학진이 지원하는 것은 말리지 않는다.
나는 그 지원금을 중앙의 메이져 대학교수들이 독차지하더라도 말리지 않는다.
다만 심사는 스스로 하라.
왜 학회지를 자기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결국은 자발적인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는가?

학진의 학술지 등재화 규정을 철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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