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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 선생님께 2 / 문화평론가 조우석의 <노자강의/ 기세춘, 2008> 서평 등에 대한 비판
김상철 2009.06.30 1616
김시천 선생님께 2 / 문화평론가 조우석의 <노자강의/ 기세춘, 2008> 서평 등에 대한 비판


* 이 글은 한국 출판마케팅연구소의 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이야기지만 잘못된 것,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쳐야 한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작성합니다.

<기획회의> 2008년 4월 221호의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기세춘의 <노자강의>에 대한 서평을 중앙일보사 문화부 기자였던 문화평론가 조우석이 썼습니다.

문제는 조우석이 전혀 <노자>에 대한 전문가가 아닐 뿐 더러, 그 번역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우석은 남의 말(책) 만 믿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무식한 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조우석의 글은 이 분이 한문이나, 한문 고전에 대한 기초 상식이 있는 분인지 의심하게 합니다.


\" 노자 번역이야말로 백인백색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기세춘 표 번역은 당당한 합격권이다. 뜻밖의 소득도 있다. 도올 김용옥을 포함해 기왕에 나온 꽈배기 식 엉터리 번역문도 일부 곁들였다는 점이다. 원문 5,000자 모두는 아니고, 주요 대목에서 \번역 대조표\가 마련돼 있어 그걸 훔쳐보는 맛이 짭짤하다. 간혹 그걸 보면 가가대소가 터진다. 그중 최악은 응당 도올이다. 그는 오래 전 강호의 아줌마 고수 이경숙이 \노자를 웃긴\ 동양철학 코미디언으로 스카우트했던 사람인데, 이 책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미친 녀석으로 다시 낙인찍히는 바람에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기세춘의 <노자> 이해는 잘 못된 것이고 제가 이에 대해 증명하는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노자>에 대해서 읽고자하는 사람들 중 지금도 이 서평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9.06.22 노바당)


1. 조우석의 <노자강의>서평
2. 노바당의 <기세춘 선생의 노자강의> 비판


1. <기획회의> 2008.4. 221호 / 전문가 리뷰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 하는 노자강의> / 조우석


길 비켜라! 기세춘 표 \노자\ 납신다

나만 그러나? 노장 형님들은 왜 그토록 점점 더 매력덩어리로 다가올까? 분명 모순이다. 애당초 노장은 이렇게 이르지 않았던가! \"현자 따위를 본받지 말라. 그래야 다툼이 없어진다(不尙賢 使民不爭)\"고…. \"잔머리 굴리는 대신 뱃속이 든든한 게 좋은 법(虛其心 實其腹)\"이라고 가르쳤지만, 못난 우리들은 옛 현자 몇 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동 태생으로 서양에 입양된 청년 예수가 그 중 하나다. 과연 멋지다. 하지만 노장만큼 멋스러울까? 붓다에 견줘도 마찬가지다. 붓다가 범접하기 힘든 스승이라면, 노장은 마음 편한 형님과도 같다. 죄송하다. 내게 공맹은 거의 찬밥이다.

꽉 막힌 데다 때로는 위선 떠는 품이 민망해서 일까? (위선하면 투 톱이다. 서양의 기독교, 동양의 유교!) 『노자』 『장자』 곳곳에서도 공자를 왕따시킨다. 『장자』에 보면 공자가 한 노장 패밀리의 빈소에 조문단을 보낸다. 단장은 자공이다. 그가 누구던가? 공자 심복 중의 심복이다. 그 공자맨은 빈소에서 쇼크를 먹는다. 윽! 거의 개판이 아니던가? 조문객들이 고성방가와 함께 바둑까지 두다니! 거문고(그래, 당시의 노래방 기기다!)까지 동원한 놀자 판에 기겁을 한 자공이 스승에게 귀환 직후 \직보\를 올렸다.

\"원 세상에, 쟤들 뭐 하는 애들이라죠?\"
\"그들은 세상 밖을 노니는 사람들이고 나는 세상 안을 노니는 사람이다. 안과 밖은 서로를 모르거니와 너에게 조문케 했으니 내 생각이 짧았다. 저들은 삶을 혹으로 생각하고 죽음을 부스럼 떼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선비로 태어나는 하늘의 형벌을 받은 사람이다.\"

으! 공자는 끝내 안 된다. 고대의 그 계몽주의자는 인仁, 의義라는 으뜸 덕목이 얼마나 인간 중심주의의 억지 도그마인 줄을 채 모른다. 반면 노장이 놀던 물은 스케일이 크고 널널해서 내게는 항상 흠모와 경복의 대상이었는데, 기세춘의 『노자강의』는 내게 훌륭한 텍스트로 다가왔다. 우리말 번역의 미덕 때문이다. 뻑 간 것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이후 처음이다. 그의 역량은 『장자』에서 확인됐듯이 명쾌하기 짝이 없다. 본디 언어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이가 노자였기 때문에 \희뿌윰+애매몽롱\의 언어를 희롱했을 리 없다. 번역 역시 똑 떨어져야 한다. 설사 나중에 오역으로 판명되는 한이 있더라도.

노자 번역이야말로 백인백색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기세춘 표 번역은 당당한 합격권이다. 뜻밖의 소득도 있다. 도올 김용옥을 포함해 기왕에 나온 꽈배기 식 엉터리 번역문도 일부 곁들였다는 점이다. 원문 5,000자 모두는 아니고, 주요 대목에서 \번역 대조표\가 마련돼 있어 그걸 훔쳐보는 맛이 짭짤하다. 간혹 그걸 보면 가가대소가 터진다. 그중 최악은 응당 도올이다. 그는 오래 전 강호의 아줌마 고수 이경숙이 \노자를 웃긴\ 동양철학 코미디언으로 스카우트했던 사람인데, 이 책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미친 녀석으로 다시 낙인찍히는 바람에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저자가 말하는 도올의 죄목은 두 개다. 우선 고무찬양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자』는 그동안 권력에 따라 변질됐는데, 반유가적인 절학絶學과 무지無知의 담론이 관료와 지식인을 따르라는 우민주의로 왜곡됐다. 본래의 원시 공산사회 이념이 공맹의 왕도주의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주범은 당연히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하안과 왕필인데, 도올은 덩달이로 그들을 따랐다. 따르더라도 일관성이나 있었다면! 그는 왕 엉터리의 해설과 창작에 가까운 원맨쇼 번역으로 『노자』를 또 한 번 농락했다.

어쨌거나 기세춘 『노자강의』의 특징은 텍스트를 해체해서 재구성한 점이다. 판본에 따라 들쭉날쭉 차이가 많으니 아예 전면 재구성한 것이다. 본디 \내편\ 정도가 핵심이고, 나머지는 덧붙여진 대목으로 보는 게 상식인데, 그렇다면 2000년대 식으로 바꿔 재결합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기세춘은 10개 주제로 분류했다. \반체제\ \민중의 저항\ \유토피아\ \공동체의 도덕\ 등이 그것인데, 한국의 1980년대 민주인사 티가 팍팍 나지만, 막상 읽어보면 큰 무리가 없다. 그런 그는 『노자』를 난세 춘추전국시대 민중의 절망을 대변한 책으로 해석하고 있다.

단, 민중의 소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기세춘은 『논어』를 지배계급을 위한 입신양명의 처신술로 보면서 『노자』와 극적으로 대조시킨다. 아주 독특한 관견은 노자는 과연 생존인물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노자는 생존인물이 아니며, 『노자』는 민중 창작이어서 여러 사람의 가필을 거친 것으로 본다. 이 점 매우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노자와 『노자』만큼 천의 얼굴을 한 인물과 문헌이 없고 이제는 서양 학계까지 끼어들어 독자적 해석을 벌이는 판국임을 감안해야 한다. 즉 어찌 보면 개성만점의 새로운 『노자』 출현을 일단 기뻐해야 한다.

\"노장은 소규모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산주의자였으므로 당연히 전쟁을 반대했다. 다만 묵자는 전쟁에 대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연구한 전쟁 이론가요 반전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평화운동가였으나, 노장은 은둔주의였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165쪽)

이 짧은 글에 『노자강의』의 맛을 어찌 다 전할꼬. 이미 느낌은 공유했으니 여기에서 자르자. 단, 내 관견 하나를 잠시 전하자. 노장의 실체란 무엇일까? 은둔의 철학? 제왕의 통치술? 무위자연의 도인술 내지 풍류? 아니면 풍우란처럼 서양철학에 맞서는 대응 카드? 모두 아니다. 내가 보기에 노장은 문명사적으로 해석해야 답이 나온다. 쉽게 말해 초기 청동기, 철기 문명의 남성문명에 \노!\를 했던 삶의 철학이다. 대안은 자명하다. 정치권력, 언어, 잉여생산물과 함께 찾아온 위태로운 청동기 철기 기계문명을 거부한 채 그 이전 장기지속의 \오래된 미래\인 신석기, 구석기 수렵채집경제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작고 인구 없는 나라\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유토피아로 설정했던 것도 그 증거다. 앞에서 말했듯이 잔머리 대신 뱃속이나 채우라는 메시지도 인간의 종種 중심주의를 벗어나 \네 안의 짐승을 꺼내라\는 뜻으로 나는 새긴다. 남성 우위 대신 여성 우의의 세상이다. 다소 비약이 있겠지만 미토스의 세계인 신화나, 신과 인간, 동물과 인간이 공존했던 샤머니즘과의 친연성도 너무나 당연하다. 섣부른 소리다. 그걸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자신도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기세춘 식 『노자』? 내가 아는 노자에 조금 가까이 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기획회의] 조우석


2. 첨부: 노바당의 <기세춘 노자강의> 비판

작성자 : 김상철 작성일 : 2009/06/22  


추가: [중앙일보] 조우석 칼럼과 내용 중 <노자> 관련 평가에 대한 비판  




1. [조우석 칼럼 책에 길을 묻다] 책에 목마른 교포 북클럽 [중앙일보]

[2009 Section] 행복한 책읽기


“요즘에는 무슨 책이 좋다지? 리스트 좀 많이 뽑아주셩~.”


뉴욕에서 막 도착한 수필가 이영주씨다. 날아가는 전화 목소리를 들은 건 크리스마스 직전. 그의 세 딸 마리아(첼로)·루시아(피아노)·안젤라(바이올린)로 이뤄진 안트리오 공연(지난해 12월 17일 예술의전당)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인데, 딸 이야기보다 책 타령이 먼저다. 그곳 한인신문의 유명 칼럼니스트다울까?

“내가 운영하는 AWCA북클럽에서 읽을 거야. 한 달에 두 권씩 읽는데, 내가 책을 지정하면 각자 읽은 뒤 모여서 자유토론을 벌여. 이민 생활에 못 말리는 즐거움이지. 뉴욕·뉴저지의 15명 멤버가 품고 있는 우리말에 대한 목마름은 상상 이상이라니까. 벌써 5년째네.”

며칠 뒤 안트리오의 세종문화회관소극장 공연(지난해 12월 20일) 때 만나 리스트를 건넸다. 척 훑어보더니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은 읽어둔 지 오래라며 빙긋 웃는다. “대체 안 읽은 게 뭐야?” 하고 물어야 할 판인데, 픽션류만 박완서 『그 남자네 집』, 김영하 『검은 꽃』, 김훈 『칼의 노래』, 권지예 『뱀장어 스튜』, 박민규 『카스테라』 등 수두룩하게 꼽는다.

단 내 추천 리스트에는 논픽션이 많다. 보완 효과가 있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다행인데, 번역서는 일단 제외했다.

한국문화를 다룬 것, 이왕이면 가독성을 위주로 추렸다. 북클럽 멤버가 아니라도 마음에 차는 딱 한 권만 챙겨도 그게 어딘가. 그런 연유로 앞머리에 신화학자 정재서의 『이야기 동양신화』 『사라진 신과의 교신을 위하여』, 미술사학자 강우방의 『한국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넣었다.

동양고전으로는 오강남 본 『장자』, 기세춘의 『동양고전 산책 1,2』을 포함했다. 여기에 살아 생전 ‘원주의 예수’로 불렸던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국제학계가 인정하는 한국전쟁 연구서인 박명림의 『한국 1950 전쟁과 평화』까지 포함시켰는데, 이 두 권은 좀 많이 무겁다. 해서 나머지는 편안한 읽을거리인데,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조영남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윤광준 『생활명품』이 그것이다.

깜짝 케이스는 두 권. 권정생의 대하소설 『한티재 하늘』과 김경의 산문집 『뷰티풀 몬스터』가 그것이다. 『한티재 하늘』은 미완성작인데 못 먹고 못 살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눈물 콧물 다 뺀다. 요즘 세상 우리를 품어주는 따듯한 위로다. 『뷰티풀 몬스터』는 믿거나 말거나 우리말로 된 최상의 산문인데, 심하게 튀기 때문에 조심할 것을 귀띔하고 싶다.

자 여기까지다. 막 확인해보니 한국인의 독서량은 한 해 평균 12.1권. 미국·유럽의 통계를 가볍게 따돌리는 숫자인데, 뉴욕의 북클럽은 그 갑절인 셈이다. “책읽기만큼 좋은 재교육은 없다니까.” 연주회장을 막 빠져 나오며 이씨가 던졌던 말인데, 그거야말로 이 지면에서 2009년 내내 반복할 메시지다.

조우석<문화평론가>



2. 아래 글은 조우석씨에게 메일로 보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조우석씨가 중앙일보에 계속 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조우석 기자님께 (2009.01.07 노바당)


저는 인천에서 약국을 개업하고 있는 약사입니다. 신문은 경향신문을 보지만, 나름 균형을 맞춘다는 생각과 집안 어른을 위해 중앙일보도 같이 보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정치 사회적인 기사는 제 성향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요일의 책 소개는 잘 보고 있습니다. 특히 조기자님의 글을 빼지 않고 읽습니다.

저는 지식은 변변치 않으나 평균적인 독서인들 보다는 상당히 많은 양의 책을 구입합니다. 관심은 중국 고전, 철학, 과학 일반, 심리학, 사회학 등이고 물론 다 보지는 못합니다.

중국 고전, 특히 도가사상 책은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책을 보았고, 중국어도 좀 읽을 수 있어서 수십 권의 중국책을 구입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도가(道家)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 1월 3일자 조기자님의 글 ‘책에 목마른 교포 북클럽’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 딸이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스턴)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기사에 뉴욕의 북클럽에 대해 쓰여 있어서 관심이 더 있었을지 모릅니다.

조기자님이 소개한  동양고전 책들 중 2가지가 모두 노장사상에 대한 것이고, 다른 책에도 노장 사상이 소개돼 있을 것이므로 저는 ‘조기자님이 도가사상에 관심이 많으시구나’ 하고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선정된 책들에 대해 약간의 이의를 제기하고자합니다.


여기서 잠깐 조기자님도 관련되었던 지나간, 아니 현재도 진행 중인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조기자님께서도 2001년 <노자를 웃긴 남자>와 이 책을 쓴 이경숙에 대해 중앙일보에서 어느 정도의 기사를 실었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저는 당시 책 소개와 이경숙 인터뷰, 칼럼 등과 <월간 중앙> 기사를 쓴 배영대 기자에 대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물론 배기자 혼자서 그런 정도의 작업을 할 수는 없고, 도올 김용옥이나 다른 언론사에 대한 비판을 목표로 한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배기자는 당시의 행위로 기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저는 조기자님께서 이런 일에 반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첨부자료 2: ‘이경숙 노자 비판’-노바당, 2007)


저는 당시에 인터넷에 이에 대한 글을 몇 편 썼고, 이 글을 본 출판사 ‘씨앗을 뿌리는 사람/ 장익순’에서 두 권의 책 <노자 제대로 읽기>, <저급한 도올 비판을 비판한다>를 내 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배기자를 포함한 서평 담당 신문기자들을 대부분 비판했기 때문에 신문에 평이 실릴 수 없었고(기자들이 책의 급을 낮게 보아 그랬겠지만), 유일하게 국민일보의 김현덕 기자가 제 사진까지 새로 찍어 책 소개 기사로 크게 실어서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당시 저 같은 아마추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정도의 책을 노장사상으로 논문을 쓴 배영대 기자나, 고전전공학자들이 엉터리 기사와 양비론적 칼럼으로 독자들을 호도했고, 아직도 그 후유증이 사회문제화되고 있고, 노장사상에 대한 엄청난 오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일이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언론과 인문학계의 엄청난 추문이고, 배영대 기자는 매장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기자님이 소개한 동양고전에 대한 책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오강남 <장자>

2. 기세춘 <동양고전 산책 1, 2>

3. 장일순 <노자 이야기>


저는 이 중 오강남과 장일순의 책을 읽었고, 기세춘의 <동양고전산책>은 읽지 않았습니다. 오강남이나 장일순 같은 분들은 다 훌륭한 분들이지만 기독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일반적인 보수 기독교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어릴 때부터 <노자> 강의를 포함한 함석헌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어서 기독교인들의 <노자> 이해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칭 도가로서의 저의 관점이지만 도가사상은 무신론으로, 기독교인들이 읽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을 수는 있어도, 기독교인이면서 노장사상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여기에 대해 제가 전에 진보 신학자인 김명수 교수의 강의를 듣고 쓴 글을 첨부합니다.
(첨부자료 3: ‘기독교와 노자/ 김명수 강의를 듣고’- 노바당 2008)  


여기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제가 읽지 않은 기세춘의 책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세춘은 민중 운동가였고 어렸을 적부터 한학을 했다고 합니다. 기세춘이 민중 운동가였다는 사실은 그의 책 소개가 주로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에 실렸다는 점으로도 간접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세춘이 어렸을 때 한문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세춘은 한문 전문가도 아니고, 노장사상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 합니다.


저는 기세춘의 800페이지나 되는 책 <묵점 기세춘 선생과 같이 하는 노자강의>를 보았습니다. 기세춘은 <노자>를 <장자>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 책만 읽었어도 기세춘이 <장자>를 어떻게 보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1: 기세춘 노자 비판- 노바당 2008)

저는 기세춘이 <노자를 웃긴 남자>를 쓴 이경숙보다는 한문 실력이 조금 낫지만 <노자>, <장자>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오래 드려 봐야 소용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증명할 수 있는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바쁘시겠지만 한 번 읽어 보시고 우리나라 인문학의 큰 축을 맡으신 분으로서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좋은 계획과 실천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2008. 01. 07  인천에서 김상철 드림  



추가: 1.<노자를 웃긴 남자>와 <완역 이경숙 도덕경>을 쓴 이경숙의 사회적 해악(저자 바꿔치기, 다단계, 기공 사기)에 대한 반대 사이트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 운영진은 아니지만 제가 쓴 몇 편의  글을 모아 놓은 방이 있습니다. 여기의 노바당이 접니다.

paxkonet.com->노자를 웃긴 짜깁기->노자 제대로 읽기


2. 제 블로그는 잘 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 사이트의 글의 원본이 있습니다.

노바당의 취미 생활 blog.naver.com/jaseng54



첨부: 참고 자료 1: ‘기세춘 <노자 강의>’ 비판

      참고 자료 2: ‘이경숙 <노자>’ 비판

      참고 자료 3: 기독교와 노자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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