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이 괴로운 시간, 철학은 뭘 해야 할까요?
송종서 2009.05.24 1538
어제 아침에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셔서 노무현대통령이 자결했다고
하셨을 때, 뿌연 하늘처럼 머리도 아득해져서 정신 없었지만 어머니 울먹이는 소리가
안타까워 하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집으로 갔습니다..
80을 바라보는 노인들이 허탈하게 TV 앞에 앉았는데..우시던 어머니가 사나운 얼굴로

\"이명박인지 쥐새낀지 독사같은 눈으로 저 이를 그렇게 들볶고 개망신을 주고
가족들 부하들 다 잡아다가 가두고서 저 이까지 죽이지 못해서 기를 쓰더니 결국 바보같은
저 사람이 혼자 다 안고서 떨어져 죽었구나.. 좋다, 소원대로 됐어. 야, 이 더러운 세상..
이 천벌을 어떻게 받으려고... 전두환이 노태우 그 놈들부터 절벽에서 밀어 죽이지 않고,
왜 저 사람이 죽어야 하냐..\"

그러고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고 훙, 코를 푸셨습니다.. 할머니가 그러니까
같이 사는 우리 조카도 풀이 죽어 동그마니 삼촌 얼굴만 바라봅니다..
멍해서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평소 귀가 얇아 신문, 방송에 자주 휘둘리던 아버지도
분한 표정으로 신음만 하십니다. 넷이서 멍하니 앉아 있다 시계를 보고  밥 먹으면서
반복적으로 뉴스 소리만 들려 오는데 어머니는 자주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그 때 한철연 선배 한 분이 문자를 보내셨지요.

\"[애도] 노무현 서거 그리고 개혁의지를 죽음으로 몰아버린 한국사회\"

그래서 낮에 한철연 게시판에 들어와 봤습니다. 다들 충격이 커서 그런지 아무도 글을
쓰지 않았더군요.. 저도 다시 막막해서 몇몇 진보적인 싸이트를 돌아다녔습니다.

02년 9월에 중국으로 졸업논문 쓰러 떠났다가 그해 겨울 중국 동부지방을 돌아다니던
길이었습니다. 그 날 종일 차가운 비를 맞으며 항주대교를 건너 절강중의학원에 들렀는데,
2층인가 외사처 직원에게 못하는 중국어로 몇 마디 물어 보고는 계단을 내려오는데 1층
로비 벽에 걸린 TV에 \"한국 대통령 노무현 당선\"이라는 글자가 올라오더군요.. 놀랐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벌어졌을까.. 그러니까 저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노무현을 당선시킨
국민의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도 노무현과 관련된 떠들썩한 사건들은 저에게
대부분 \뉴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크고 작은 이슈들을 구경만 하며 지냈지요.
그러다보니 2006년 집에 돌아온 뒤로 지금까지 그저 날나리구경꾼으로만 살고 있었네요.
같은 학자로서 먹고 살자고 만났다가 겪은 배신감, 상처, 중도에 때려치고 지방에 내려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스트레스만으로도 참 쉽지가 않았고, 지금도 사회역사적 문제
앞에서는 한껏 게으르고 비겁하게 혼자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저입니다.

그런데 너무 충격이 큽니다. 온종일 그랬고, 자고나도 감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철학까페에 문선생님이 쓰신 글처럼 \"가슴이 먹먹\"하고, 분한 느낌이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자결하기 전에 그가 찾았던 \담배\만 자꾸 피우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까지 끝내겠다고 양해를 구한 교정지도 손에 잡지 못하고,
까닭없이 외로운 감정이 복받쳐서 혼자 덜덜 떨지를 않나...아무래도 이건\쇼크\ 상태라는
느낌이 들어서, 위안을 좀 받고 싶어 가까운 이들에게 몇번이나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뭐라고 써야 좋을지 막막해서 그만두고.. 다시 핸드폰을 열었다가 접기를 여러 번..

한철연 게시판에 오랫만에 와서 감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아서 미안합니다.
밑에 우리 회원들이 쓰신 글과 댓글들도 모두 잘 읽었습니다. 인터넷을 보니 저처럼
쇼크를 받은 사람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괴로운 시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쓰신 것처럼 형식적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해서 살았던,
그리고 애증이 묻어나는 친구이면 친구였지, 적은 아니었던 노무현.. 그의 죽음이 이제
현실이 된 마당에 한철연은 뭘 해야 할까요? 철학은 이 때 무엇을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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