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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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정신과 진보의 정신
이병창 2013.08.29 356
다까끼 마사오의 유신정신과 국정원의 내란음모



국정원이 사건을 저질렀다. 아니 ‘저질렀다’라는 표현보다는 ‘싸질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일단 싸지르고 나서 차차 수습하면 되겠지 하고 국정원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것인 내란음모 사건이다.

국정원이 앞으로 내놓을 증거가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다. 이럴 때 퍼뜩 든 생각은 천안함 사건 때 국제적 조소거리가 되었던 ‘1번’ 증거이었다. 어뢰 잔해에 ‘1번’이라고 매직으로 갈겨 써놓고 그것을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라고 우겼던 사건 말이다. 천안함 사건은 엉터리 없는 조작이 너무나도 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우기고 또 우기니까 그런 대로 통해 버렸다. 심지어 이걸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냐고 조중동이 난리법석을 피웠을 정도이다. 이제 천암함 사건이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생떼가 지겨워서라도 입을 닫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 첫째 원인은 천암함을 폭침시킨 범인으로 지목된 당사자인 북한에게 아무런 항변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적으로 북한이 자신의 무관함을 누누이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이 그런 북한의 항변을 한 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의 항변도 없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일은 거의 혼자서 샌드백 치는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으리라. 그래 놓고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두 팔을 번쩍 드는 꼴이라니, 정말 가관이었다.

또 다른 원인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유신 정신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라는 유신 정신은 바로 다까끼 마사오의 정신이다. 그는 일제 시대에는 만주에서 항일군의 토벌대로 활약했고, 해방이후에는 남로당의 군사조직에 속했다. 그리고 동료를 밀고하고 복권하더니 마침내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그는 민주국가의 대통령이었다가 절대 다시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삼선개헌을 추진했고 그 다음해에 유신헌법을 선포하였다.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이런 표변을 견디어 나갈 수 없다. 이런 표변을 거리낌 없이 수행하는 자라면 그는 자신이 믿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심지어 그가 혈서를 쓰든 손가락을 자르든 말든 말이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고,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그의 정신 그대로 안 되면 되게 하라 라는 유신정신이라 하겠다.

이런 다까끼 마사오, 유신의 정신으로 가장 철저하게 교육받은 세대가 유감스럽게도 우리 세대이다. 우리 세대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매타작 당했다. 그러니 지금 애국가는 잊어버렸어도 국민교육헌장의 첫 소절은 어김없이 외울 수 있다. 심지어 술에 취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사명을 어떻게 추진하는가 하고 물어보면 그 때야 비로소 국민교육헌장의 본래 뜻이 밝혀지게 된다. 그 방식이란 바로 안 되면 되게 하라 라는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국민교육헌장에서 민족중흥의 사명이란 겉보기에 지나지 않고, 그 본래의 뜻은 세상에 모든 것은 수단이며 목적은 오직 나 자신이라는 다까기 마사오의 정신, 유신정신이다.

이런 안 되면 되게 하라 라는 다까끼 마사오의 정신이 군대에 적용되면 그게 바로 군바리 정신이다. 이런 군바리 정신이 만들어 내놓은 최대의 걸작이 바로 ‘1번’ 증거이다. 도올 김용옥이 일갈했듯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치고 어떻게 1번 증거를 가지고 증거라고 우길 수 있었겠는가? 이 ‘1번’ 증거를 드디어 증거로 만든 그 정신은 유신정신, 다까끼 마사오의 정신, 군바리 정신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근혜 시대 전두환, 노태우의 하나회 이래 척결되었다던 정치군인들이 다시 출현했다. 그들 신흥 정치군인들이 박근혜 정권의 안보 라인을 장악했다. 그 대표자가 바로 국정원장 남재준이다. 그는 군바리 정신의 소유자답게 다까까 마사오의 정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남북의 최고정상의 회의록을 공개해 버린 일이다. 국제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이런 일, 그 때문에 앞으로 외국의 어떤 정상도 한국과의 정상회담이라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할 이런 일을 저지르고서도 그는 눈 하나 깜찍하지 않았다. 남재준은 그저 밀어붙였고, 조중동의 지원 덕분에 오히려 그는 상대방 문재인 의원을 코너로 모는 승리감조차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또 하나의 일을 싸질렀다. 그게 바로 이번 내란음모 사건이다. 이미 언론에 언급되는 증거들은 포복절도할 만한 증거이다. 무슨 총기를 준비해 가지고 무슨 통신 시설과 무슨 유류시설을 점거해? 무슨 녹취록이 있고 무슨 집회가 있었어? 상식적으로 내란을 음모했다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정원에게 그리고 남재준에게는 유신정신이 있다. 아무 증거라면 어떠랴? 조중동의 지원도 있는데, 우기면 된다. 천안함 사건에서도 다까끼 마사오의 정신이 통했고 NLL 사건에서도 통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통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멘 아니 박멘하고 성호를 그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미 짐작한다. 이 짓은 국정원의 해체라는 촛불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위기에 처한 국정원과 남재준의 작품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지 않고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내란 음모를 꾸미는 것은 그들이 고발한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누구를 종북이라 규정하고 댓글로 그에게 사법적 응징을 가했으니 그들이야 말로 사법권을 찬탈한 자라는 것을. 행정권을 찬탈하는 것이 내란이라면 사법권을 찬탈한 것 역시 내란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무엇보다도 다까끼 마사오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어떤 협잡을 통해서라든지 되게 하라 라는 정신, 오직 자기만이 목적이고 모든 것은 수단이라는 이런 유신정신의 시대는 사라졌다는 것을. 지금의 시대정신은 우리가 모두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중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진보의 시대라는 것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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