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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근대정신 장 B 절 주석(20)-고귀한 의식의 전락
이병창 2019.10.07 30
정신현상학 근대정신 장 B 절 주석(20)-고귀한 의식의 전락

1)

앞에서 근대정신은 두 개의 실체로 나누어진다고 했습니다. 국가와 부가 그것이죠. 양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관되어 있어요.

이런 실체에 대해 두 개의 근대적 의식이 관계합니다. 하나는 순수의식이고 하나는 실제적 의식입니다. 순수의식은 나중 신앙을 다룰 때 다루기로 하고, 교양에서 다루는 의식은 실제적 의식입니다. 앞의 구절에서 실제적 의식이 두 개의 실체에 어떤 관계를 맺는가가 설명되었습니다.

앞의 표에서 보듯이 실제적 의식은 국가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는 선으로 이면적으로는 악으로 규정합니다. 또 부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는 악으로, 이면적으로는 선으로 관계하죠.

이어지는 구절에서 헤겔은 이런 판단 표를 기초로 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의 개념을 다룹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런 개념은 헤겔이 바로크 비애극에서 나오는 왕과 신하의 대립을 기초로 제시된 거죠. 이런 비애극의 대표적인 것이 그뤼피우스의 레오 아르메니우스라는 비애극입니다. 이는 동로마 제국 9세기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실제로는 유럽 절대주의 시대, 왕과 신하의 권력 투쟁을 그 사건에 투영시킨 것이라 하겠습니다.

2)

우선 헤겔은 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을 구분합니다. 고귀한 의식은 국가와 부 모두를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선으로 판단하는 의식이죠. 국가는 자기의 일반적 토대이고, 부는 자기의 개인적 행복입니다.

반면 비열한 의식은 국가와 부 모두를 자기와 부등한 존재로 보면서 이 세상 모두를 악으로 보는 의식입니다. 여기서 국가는 개인의 재산을 빼앗는 존재이며, 부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행복이며, 그 자신도 항상 부를 상실할 위험에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은 충성하는 신하와 반란을 꾸미는 귀족을 지시하는 개념이죠. 헤겔은 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동시에 몰락하는 존재로 그려냅니다.

우선 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의 각 개념을 헤겔이 어떻게 설명하는가 보죠.

"고귀한 의식은 공공의 권력 속에서 자기와 동일한 것을 관찰한다. 즉 고귀한 의식은 권력 속에서 자신의 단순한 본질과 그 활동을 가지며, 실제의 복종 속에 있거나 내적인 존경 속에 있다. 마찬가지로 부는 그에게 자기의 또 다른 본질적 측면에 대한 의식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관찰한다. 따라서 ... 그는 그에게 향락을 주는 자[왕]를 자선가로 인식하며 감사의 의무를 느낀다."

"비열한 의식은 두 본성에 대해 부등한 관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지배 속에서는 자기의 대자 존재의 사슬과 억압을 보며, 지배를 증오하고 다만 교활을 통해서만 복종하며, 반란의 도약을 항상 지향한다..... 비열한 의식은 부를 통해서는 개체성의 의식이나 향락의 소멸에 관한 의식에 도달할 뿐이며, 그런 부를 기꺼이 경멸하며... 부에 대한 그의 관계 역시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3)

이런 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이 내리는 판단은 일차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국가와 부가 이미 내면적으로 상호 이행하는 것이므로, 이런 판단 자체도 변화됩니다.

"두 규정이 대해 있는 의식은 아직 그 규정[국가와 부]을 활성화하지 않으며 두 규정은 술어일 뿐 아직 주체가 되지 못한다."

"처음에 소외의 두 측면[의식과 실체]은 무차별적이었으나 양자가 관계하면서 판단으로 고양되면서, 이런 외적 관계는 내적인 통일에 이른다."

위의 구절에서 핵심 주장은 술어일 뿐 주어가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국가와 부는 표면적으로 의식에 대해 대립해 있는 실체인데[즉 외적 관계], 아직 그 스스로 자기를 관철하는 의지 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실체를 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의식이 이를 스스로의 의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게 진정한 통일이죠.

이제 헤겔은 이런 실제적인 의식[고귀한 의식과 비열한 의식]이 자기를 지양하며 국가와 부를 내면적 의지로 삼는 과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런 설명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해서 정신현상학의 여러 아름다운 구절 가운데 한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4)

우선 헤겔은 고귀한 의식의 전도를 서술합니다. 이 부분은 274쪽의 12줄에서 276쪽의 4줄까지 이어집니다. 한 페이지 반에 걸친 이 구절을 간략하게 전리하자면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①우선 고귀한 의식을 지닌 신하가 국가를 일반적인 실체로 파악하고, 이를 "자기의 본질 목적 절대적 내용"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이런 국가를 위해 봉사하죠. 헤겔은 이런 의식을 봉사의 영웅주의(Heroismus des Dienstes}라는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이런 봉사를 통해 고귀한 의식은 자신을 개인이 아니라 순수한 본질적 존재로 고양시킵니다. 그는 이를 통해 "그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존경"(Achtung vo sich selbst und bei andern)을 획득합니다.

고귀한 의식의 봉사를 통해 국가는 단순한 사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이제 현존을 획득하게 되죠. 이런 현존은 아직은 독자적 의지를 가진 정부[왕]가 아니라 말하자면 효력을 지닌 일반적인 법[실정법]을 의미합니다.

5)

그러나 헤겔은 이런 고귀한 의식의 이면을 곧바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고귀한 의식이 봉사를 통해 버린 것은 개별적인 물질적 욕망이지만 자신의 명예에 대한 욕망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전자는 그에게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지만 후자는 그의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전자는 포기했지만 후자는 포기하지 못하지요. 헤겔은 따라서 이런 신하를 거만한 신하(der stolze Vasall}라고 규정합니다. 그의 국가를 위한 봉사는 어디까지나 일반적 선을 위한 충고이죠.

"거만한 신하는 국가가 자신의 개별적 의지가 아니라 본질적인 의지이므로 국가권력을 위해 활동하지만 그는 영예 속에서만 자신을 정당화하며 개인이 주는 감사의 말[Vorstellen]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본질적인 감사의 말[Vorstellen] 속에서 자신을 정당화한다. ...... 그의 충고는 일반적 선을 위한 충고이다."

앞에서 국가권력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왕은 힘없이 대신들의 당파적 주장 가운데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신하의 정신을 통한 국가의 현실화는 아직 진정한 현실화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거만한 신하들의 충고는 점차 말뿐인 봉사에 그친다. 헤겔은 신하의 충고가 자신의 죽음도 무릅쓴 충고라면 그것은 국가를 진정으로 국가로 만드는 것이겠지만 이런 말뿐인 충고에서 국가는 형해화하며, 국가는 신하들이 자신의 부를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의 일반적 선에 대한 충고는 자기의 이익을 은닉하며, 의심스럽게 된다. 이렇게 해서 고귀한 의식은 국가에 대해 부등한 관계를 지닌 비열한 의식과 동일하게 된다.

"[국가의] 죽어 있는 내적인 정신, 자아 그 자체가 출현하여 자신을 소외함을 통해서[자립적인 힘으로 만들면서] 국가권력은 고유한 자아를 지닌 존재로 고양된다. 만일 이런 소외가 없다면 고귀한 의식이 수행하는 명예의 행위, 또 그의 통찰이 제시하는 충고는 모호한 것으로 남게 되듯 고귀한 의식은 여전히 특수한 의도와 자의라는 이미 저 죽은 잔여물을 가질 것이다."

6)

이상에서 제시한 신하의 모습, 일반적 선을 위해 충고한다는 그가 결국 말뿐인 봉사로 전락하는 모습은 절대주의 이행기 신하의 모습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그런 인물로 대표적인 존재를 우리는 영국의 전제군주 헨리 8세와 토마스 모어 경 사이의 관계에서 또는 루이 14세와 리슐리외 추기경 사이의 관계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1529년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자신의 신념을 감추고 헨리 8세가 앤과 결혼하기 위해 왕비와 이혼을 추구하는 것을 도왔으나 개신교를 탄압하고 1534년 헨리 8세가 왕이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려 하자 이에 반발해 사임하고 1535년 처형당했습니다.

또 리슐리외 추기경은 루이 13세가 섭정인 어머니 마리 드 메디치로부터 벗어나는 데 협조하면서 1622년 추기경이 되고, 1624년 재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라 로셀의 개신교도 반란을 진압하고 프랑스의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30년 전쟁에 참여해 프랑스 국력을 신장했습니다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영지를 넓힌 비열한이기도 했습니다.

토마스 모어나 리슐리외, 두 사람은 모두 자기 이익과 국가에 대한 봉사가 잘 구분되지 않았던 존재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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