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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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와 친노
이병창 2013.01.02 320
친노를 단순히 노무현 옹립세력이라고 말한다면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친노란 실질적으로 본다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87년 체제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제도들을 총괄하는 말이다. 그런데 87년 체제의 근간 중의 하나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비판적 지지’라는 개념일 것이다.



진보 내부에서 비판적 지지는 처음에는 김대중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의 입장을 지칭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양적으로 제한되었다. 어떻게 본다면 대부분의 비판적 지지자들도 김대중에 대해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김대중을 지지하더라도, 내심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대해 저항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김대중의 정치적 입장이 한참 보수적이었다는 한계 때문이었다. 김대중이 지니는 현실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모습도 그런 저항감을 야기했다.



그런데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등장하자, 비판적 지지라는 입장은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 이유는 먼저 노무현 후보의 투쟁 경력이나 김대중 후보에 비해 한 걸음 더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 때문이었다. 또한 노무현 후보가 지닌 서민적 매력, 솔직하고 격정적인 언변, 부패하지 않은 참신한 모습 등이 비판적 지지의 확산에 기여했다고 보겠다.



이제 굳이 비판적 지지라는 말조차 필요 없었다. 비판적 지지자들 대부분은 노무현과 자기를 동일화했으니, 노무현 정권의 보수화라든가, 몇 가지 현실적인 타락은 정치적인 현실상 불가피하게 일어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해서 비판적 지지자들이 아닌 친노라는 이름의 지식인들이 출현했던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친노의 본질은 비판적 지지에 있다.



비판적 지지란 한마디로 보수 야당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연합을 의미한다. 이때 연합은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전자는 당적 지반을 지니고 후자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참가한다. 이론적으로는 보수 야당을 견인하는 것 또는 소위 레닌적 참여란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보수 야당이 자신에게 부족한 인물을 동원하는 것, 다시 말해서 보수 야당의 세력 확장에 불과했다.



비판적 지지는 또 한 번 대선 투쟁에서 성공했다. 김대중 정부에 비해 볼 때 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정권의 주요 포스트들이 비판적 지지자들 즉 친노들에 의해 장악되다시피 했다. 인물로만 본다면 정권은 이미 진보에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실행한 정책들을 본다면 이것은 김대중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보수적 정책들이었다. 심지어 통일에 관해서는 김대중 정부보다도 더 뒤떨어진 입장을 보여주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종합부동산 세금으로 아무리 위장했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반-진보적인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이 진보적이었는데, 정책은 보수적이라는 이상한 체제가 성립했던 것이다.



어쩌면 비판적 지지는 보수 야당의 정치인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동상이몽이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FTA의 반대투쟁은 비판적 지지의 한계를 결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노무현 정권을 통해서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적 실험은 파산된 것이라고 하겠다. 바로 그것은 친노의 파산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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