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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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보고
이병창 2013.12.23 351
영화는 영화다



영화감독으로서 제일 듣기 좋은 말은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말일 것이다. 예술적 차원은 감히 넘보기 힘들다. 그러나 만들어지기는 잘 만들어졌다는 평을 듣는다면 일단 장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다. 아마도 어떤 영화감독은 예술적이라는 말보다는 이 말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변호인이라는 영화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충분히 평가를 받을 만하다. 많은 관객을 끌어들였지만, 그래도 엉터리로 만들어진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영화 ‘설국열차’와는 수준이 다르다. 더구나 감독 양우 석은 영화판에서는 초짜에 불과하다고 말하던데 그런 초짜가 이렇게 만들다니, 우리나라 영화 제작 수준 전체가 얼마나 높은가! 정말 경이롭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극 중에서 송우석 변호사의 역할을 담당한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나는 영화에서 조연의 역할을 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특히 극 중에서 당시 고문을 담당했던 경관을 담당했던 배우 곽도원의 연기는 정말 찬탄의 대상이다. 나는 송우석과 같은 영웅의 역할을 담당하기는 오히려 쉽다고 본다. 배우로서 정말 어려운 것은 악역을 담당하는 것이 아닐까?





나쁜 놈이라는 욕 속에 담긴 이중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도가니’라는 영화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도가니’라는 영화의 경우 사건에 대한 흥미가 영화에 대한 관심을 주도했었다. 그런 점에서 약간 포르노적인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반면 영화 ‘변호인’의 경우는 사건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면 예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나는 그저 할리우드적인 영화의 하나로 보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너무 박하게 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할리우드적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해 바란다.



영화는 영화로 보면 된다. 더구나 이렇게 쉬운 영화는 그저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함께 분노하면 된다. 필자 역시 일요일 저녁, 이 영화를 보면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닦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던 사건들은 모두 필자가 청년기에 겪었던 사건이니 그때의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그렇게 보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고문자들에 대한 분노 속에서 저녁을 그야말로 잘근잘근 삼킨 후 다시 일어났을 때 내 마음 속에 떠오른 한 마디가 있었다. 바로 ‘나쁜 놈’이라는 욕이었다. ‘나쁜 놈’이라니? 아마도 고문을 담당했던 경관이나 이 사건을 조작한 검사나 이런 조작을 지시한 당시 실세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놈들에 대한 분노는 이미 저녁을 먹으면서 충분히 삼켰기 때문에 이미 소화되었다. 그런데도 또 어떤 분노가 남았고 그 분노가 이렇게 마음속의 욕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나쁜 놈’이라는 단어에 부착되어 있는 분노는 좀 특이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남자에 대해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여인의 심정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치떨리는 증오이지만 그 배후에는 안타까운 사랑이 담긴 증오이었다.



그러면 이 혼자만의 무의식적인 욕이 날아간 대상은 누구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놀라지 말라. 그 대상은 바로 이 영화에서 영웅의 역할로 그려진 인물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 나쁜 놈!, 자기가 힘이 있었을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했어야지!



송우석 변호사가 분노한 것, 분노하지 못한 것



생각해 보라. 이런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가장 적절한 기회를 한 때 노무현 대통령은 움켜쥐고 있었다. 바로 탄핵사건 이후 시민들의 저항으로 열린 우리당이 다수당이 되었을 때이다. 시민들의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로 했어야 할 일이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 국정원 폐지가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그는 그런 다시없을 기회를 뭉개고 놓쳐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때 소위 진보 언론 등이 퍼뜨렸던 저주가 다시 생각난다. 그 저주는 ‘화해와 용서’라는 저주였다.



다시 중국의 대 작가 노신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미친개가 물에 빠졌을 때는 구하지 말고 몽둥이로 내리치라고 말했다 한다. 그때, 고문조작을 일삼던 세력들이 물에 빠졌을 때, 그들에 대해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어야 했다. 그 치명적인 타격은 바로 국가보안법의 폐지였다. 나쁜 놈! 왜 그걸 못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 영화가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를 사실대로 그렸다면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적 실수의 원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물론 영화를 한 번 보고서 그런 것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언뜻 감이 잡히는 것이 있었다.







영화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분노했던 것은 고문과 조작이었다. 그런데 송우석 변호사의 어떤 발언 속에서도 그 근거가 되는 국가보안법 자체에 대한 비판의 말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이 고문과 조작에 의해 악용되는 것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국가보안법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굳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았던 이유가 짐작된다.



나쁜 놈! 겨우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다니! 다시 분노가 떠오른다. 국가보안법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한다. 헌법은 북한을 국가가 아니라 반란집단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반란집단을 다루는 특별법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한다면 더 이상 국가보안법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지금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국정원의 독재체제 하에 들어간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그립다. 영화에서처럼 검사와 재판관에 대해 분노의 사자후를 터뜨리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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