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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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국가론에 관한 단상
이병창 2021.04.29 96

기독교적 사랑의 핵심적 문제는 가치의 인식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공동체가 고립분산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고립분산적 공동체는 한 개인의 의지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여기서 인민의 집단적 의지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모색할 필요가 있다.
헤겔이 제시한 절대지라는 개념을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마지막에서 절대지를 다룬다. 이 절대지야 말로 헤겔이 기독교적 사랑의 정신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신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 절대지를 매우 사변적으로 설명했기에 지금까지 그 의미를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헤겔이 절대지를 상정한 것은 기독교적 사랑의 정신이 지닌 한계와 연관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헤겔의 절대지란 어떤 것인가? 우선 헤겔의 절대지를 개념을 지반으로 하여 전개되는 체계로 규정한다.

“이와 같이 하여 정신은 개념을 획득하는 가운데 정신은 자신의 현존과 운동을 (개념이)이라는 생명의 에테르(순수 물질) 속에서 전개하니 그렇게 해서 학문(Wissen: 절대지)이 나온다.”

즉 절대지는 개념이라는 생명의 에테르 속에 전개되는 것이니, 곧 개념의 체계를 말한다. 이 개념의 체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헤겔이 판단과 추론의 기본 요소가 되는 개별성(주어 개념)과 특수성(매개념) 그리고 일반성(술어 개념)의 관계를 말한다. 이 세가지 개념은 판단과 추론의 종류에 따라서 다양한 관계를 갖는데 절대지의 단계에서 이 세 가지 개념은 상호 매개의 관계를 갖는다.
즉 개별성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가지며 특수성은 개별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보편성은 개별성과 특수성을 가진다. 각 요소가 이처럼 다른 요소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각 요소는 총체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그 중의 한 가지 요소가 나머지 요소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다.
이렇게 각 요소가 나머지 요소를 가지므로 나머지 요소들을 매개할 수 있게 되며 거꾸로 다른 요소들에 의해 보완된다. 자기의 고유한 요소가 지배적이므로 그 자체 한계를 가진다. 각자의 한계는 다른 요소의 견제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삼각적인 상호 견제와 상호 보완의 관계가 헤겔이 말하는 개념의 체계 즉 절대지이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절대지에 대해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뿐이어서 사실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들며 우리 독자로서는 헤겔의 주장에 대해 의아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절대지란 실상 기독교에서 삼위일체의 상징적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이 지점에서 즉 계시 종교를 설명한 그 다음 자리에서 헤겔이 절대지로 이행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에서 성부는 일반성 개념으로 성자는 개별성 개념으로 성령은 특수성 개념을 해석된다. 성부와 성령, 성자가 각기 전체이면서 동시에 고유한 존재이고 전체가 하나의 통일을 이루는 관계가 개념들의 상호 관계로 설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절대지 즉 삼위일체적인 개념의 체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신현상학』은 절대지에 대한 이런 논리적 설명으로 끝나므로 더이상 그 의미를 추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개념의 체계를 헤겔이 이상적 국가를 제시하는 국가론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다.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 마지막 부분에서 국가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헤겔의 국가론을 상세한 것은 생략하고 우리의 논의에 필요한 만큼만 간단하게 설명해 보기로 하자.
헤겔은 『법철학』에서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형식적으로 의회와 행정부, 사법부라는 방식으로 구분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헤겔은 이런 삼권분립은 역사적으로 우연하게 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개념의 체계인 보편성, 특수성, 개별성이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보편성에 해당되는 것이 의회이며, 개별성에 해당되는 것이 군주이다. 그리고 특수성에 해당되는 것이 관료이며 이 관료 속에 사법관료와 행정관료가 포함된다.
헤겔이 제시한 국가 형식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근대민주주의에서 결여된 군주라는 요소가 포함된다는 것이며,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부차적 요소로 간주되는 관료 체제를 국가의 기본적 구성 요소로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회를 근대 국가의 지역 대표와 달리 직업 대표로 간주한다.
헤겔의 국가론에서 이런 특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상의 세 가지 요소 사이의 관계이다. 의회와 군주 그리고 관료가 각자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각기 하나의 전체가 된다. 동시에 이들 각 계기들은 상호 보완하고 상호 견제하면서 전체적인 통일을 이루는 관계에 있다.
우선 군주를 보자. 우선 군주는 사회 전체의 이성적 의사를 실행하는 의지를 집약하고 있다. 군주는 현실적 존재인 한 자의적 요인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봉건군주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헤겔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의 체계이다. 다시 말하자면 군주는 의회, 관료와 체계적으로 연관되는 가운데 존재하는 한 요소일 뿐이다. 군주의 자의적인 의사는 의회에 의해서 사회 전체의 일반 의사로 규제되며 그의 독단적 행위는 집단적 행위자인 관료에 의해 조정된다. 그러므로 헤겔의 군주는 봉건적 군주와는 다르다. 그는 이런 체계적 관련 속에서 역사적으로 자의적인 군주가 그리스도와 같은 진정한 집단을 대변하는 개별의지로 변용될 것으로 믿었다.

헤겔의 국가론은 이런 체계적 상호 제약관계가 핵심이다. 이점은 관료를 그가 국가기구로 격상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에게서 관료는 직업 관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직업 관료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관료 행정을 담당하는 자이지만 헤겔에게서 관료는 군주를 통해 매개되는 사회 전체의 일반 의지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기관이다.
헤겔은 이런 관료들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기 위해 그들은 일정한 토지 재산을 소유하면서 그 토지 재산은 증감이 불가능하다. 그는 이런 토지재산을 기초로 살아가기에 의회나 군주로부터도 독립적이다.
그런데 이런 관료 역시 자신의 특수 이익을 실행하지 않을까? 헤겔은 이런 관료 역시 의회와 군주로부터 제약되고 있으므로 그런 가능성이 억제될 것이라 본다.
이런 점은 의회도 마찬가지다. 헤겔은 의회를 근대 민주주의 국가에서처럼 지역 대표로 구성하지 않는다. 의회를 헤겔은 직업 집단의 대표자로 구성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자주 그의 의회론은 봉건체제의 신분대표를 방불하다고 평가되지만 사실 그에게서 의회란 사회의 축도이다. 사회가 생산물을 교환하는 체계이며 이는 생산자들의 합의를 요구하기에 의회가 이 생산자들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회는 개별 직업 집단의 이익이 논의되고 조정되는 곳이다. 이 의회는 그 자체로 본다면 상호 갈등과 대립 때문에 사회의 공통 이익을 찾아내는 일반성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군주와 관료 집단의 상호 제약관계가 존재하므로 의회는 이를 통해 일반 의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헤겔은 의회에 직업집단 대표 외에 앞에서 이른바 실체적 집단의 대표를 포함했으며 심지어 행정부의 내각은 의회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상에서 보듯이 헤겔에게서 의회, 군주, 관료 집단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나머지를 매개하며 그 나머지에 의해 매개된다. 따라서 이 세 계기는 상호 보완적이며 동시에 상호 제약적이다. 이것은 근대 국가에서 삼권이 서로 독립적이며 상호 견제한다는 개념과 유사하지만 근대 국가에서 삼권의 독립성이 강조되는 반면 헤겔에게서는 이런 상호 제약을 통해 통일적인 전체를 이루는 측면이 강조된다.

“이른바 제권분립(삼권분립)의 착상은 분립한 권력이 제각기 독립하며서 더우기 서로 제한해야 한다고 하는 근본적 오류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에 의해서는 무엇보다도 요구되지 않으면 아니되는 국가의 통일이 상실되는 것이다.”

5) 사랑의 조직화
여기서 헤겔의 『법철학』에 나오는 국가론을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우리로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헤겔이 말하는 개념의 체계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속에서 군주와 의회, 관료가 이루는 삼위일체이다. 헤겔은 왜 기독교적 사랑의 개념에서 절대지로 즉 삼위일체로서 국가로 이행한 것일까? 그 이유는 기독교적 사랑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사랑을 내면적으로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을 통해 공동체의 의지를 형성하기에는 교회 공동체와 같은 극히 부분적인 공동체만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지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관적 사랑이 일으키는 효과는 객관적 제도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그대로 내버려 두더라도 이런 조직적 체계가 그런 욕망을 극복하게 해서 공동체의 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이런 객관적인 제도 즉 삼위일체로서 국가는 원래 사랑이 실현하려 했던 공동체적 의지를 객관적으로 실현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는 사랑의 실현태가 된다.
헤겔의 사유를 좀더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넣을 수 없는 아주 긴 숫가락밖에 없다고 하자. 그러면 서로 상대방에게 먹여주는 것을 통해서만 자기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여기서는 욕망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숫가락이 일으키는 효과에 의해 서로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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