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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6)- 보편적 수단의 왕국
이병창 2020.01.04 31
정신현상학 정신 장 2절 계몽주의 주석(6)- 보편적 수단의 왕국


1) 계몽의 긍정적 진리

앞에서 계몽이 신앙을 어떻게 비판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헤겔은 이런 비판을 먼저 일반적으로 보고, 이어서 세 가지 계기로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세 가지 계기란 곧 조각상, 성서, 그리고 행위입니다. 헤겔은 이런 고찰을 통해 계몽의 비판은 결국 자기비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제 302: 29부터 304:22까지에 걸쳐서 계몽이 도달한 결과를 서술합니다. 여기서 헤겔은 계몽주의에 관하여 그 어떤 철학자도 밝히지 못했던 진실을 폭로하게 되죠. 그것이 바로 ‘유용성’이라는 개념입니다.


유용성이라는 개념은 나중에 헤겔이 프랑스 혁명에서 공포정치를 설명할 때 가장 근간이 되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으로 발전하면서 후일 마르크스가 경제철학 수고에서 인간을 교환가치로 전락하게 하는 소외 개념을 발전하는데도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적 실제를 파악하려 했던 계몽주의가 이런 끔찍한 유용성의 원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을까요?


2) 공허의 발견

우선 헤겔은 신앙에 대한 계몽의 비판을 서술하기 전, 296쪽 두 번째 구절에서 앞질러 말했던 결론을 다시 반복합니다. 그때 헤겔은 계몽의 비판은 결국 자기비판이라고 했는데, 이제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계몽은 이렇듯 추악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계몽은 타자[신앙]에 대해 부정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통해 오히려 자기에게 부정적 실재를 부여하며 다시 말하자면 자기가 자신의 반대로 되는 것을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앞의 비판을 요약한 다음 헤겔은 그러면 계몽이 얻은 긍정적 결과는 좀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며 반문하면서, 이제 긍정적 결과를 서술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긍정적 결과를 앞에서 말했던 세 가지 계기에 따라 나누어 서술합니다.


계몽은 우선 신앙의 대상인 조각상에서 나무나 돌과 같은 실제 사물을 발견했습니다. 신앙은 그런 실제 사물을 넘어서 어떤 절대적 존재도 발견할 수 없었죠. 계몽이 실제 사물을 넘어 발견한 것은 공허[Vacuum] 뿐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발견한 긍정적 진리의 첫 번째 계기입니다.


“계몽은 모든 규정을, 즉 신앙이 지닌 내용과 신앙을 충족하는 것 모두를 이런 방식으로 유한성이며, 인간적인 본질이며, 표상으로 파악하므로, 계몽에게서 절대적 존재는 하나의 공허가 되었다. 이 공허에는 어떤 규정도, 어떤 술어도 부가될 수 없다.”

3) 절대적인 감각적 확신

계몽이 발견하는 긍정적 진리의 두 번째 계기는 “절대적 존재로부터 벗어난 개별성” 일반입니다. 즉 돌이나 나무와 같은 실제 사물이고, 이것은 그 배후에 어떤 정신적인 요소, 신적인 것도 감추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신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것[an und fuer sich]”입니다.


여기서 의식은 정신의 최초 단계인 감각적 확신 즉 감각과 같은 수준입니다. 감각적 확신의 대상은 의식 밖의 대상[객관]이며 의식에 직접적인 방식으로 [감각] 주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새로 등장한 감각적 확신은 과거의 감각적 확신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이 있습니다.


정신의 최초 단계에서 감각적 확신은 곧바로 부정되는 것이었습니다. 감각적 확신은 객관이 아니라 주관적임이 곧바로 폭로되죠. 그러나 이제 새로 생성한[geworden] 감각적 확신은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감각적 확신은 처음의 감각적 확신을 넘어가서 온갖 착종을 경험하고 마침내 되돌아온 것이며 그 결과 자기를 넘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즉 공허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감각적 확신입니다.


“의식의 다른 모든 형태가 무실하다는 것을 통찰한 위에 이 감각적 확신은 이제 더는 주관적 견해[Meinug: 思念]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절대적 진리이다. 감각적 확신을 넘어 나아간 모든 것이 무실하다는 것[발견]이 이 감각적 확신이 진리임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등장한 감각적 확신은 “개념이 대상으로 자기 앞에 매개 없이 등장하는 것 das unvermitelte Fuersichsein des Begriffs selbst als Gegenstand"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은 자기와 자기 밖의 사물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의식은 의식이 존재하고 의식 밖에 있는 다른 실제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확신하며, 이런 사물과 마찬가지로 의식의 자연적인 존재도 즉자 대자적이며 또는 절대적이다.는 것을 확신한다”


간단히 말해 나도 존재하고 사물도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존재 증명이 상기됩니다. 데카르트는 고기토의 확신에서 자연적 존재의 확신으로 나갔습니다.


4)

마지막으로 계몽이 얻은 진리 즉 세 번째 계기를 헤겔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앞에서 두 번째 계기는 절대자가 공허이므로, 결국 감각적 현실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감각적 현실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세 번째 계기는 바로 이 사실의 정 반대 사실입니다.


세 번째 계기는 이런 감각적 현실이 절대자 밖에 있으니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러니 감각적 현실은 무실한 것이죠.


이 세상 어디에도 정령이 숨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 세상 모든 것의 배후에는 시꺼먼 공허만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끔찍한 허무주의가 등장할 겁니다. 세상 만물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5) 유용성의 세계

헤겔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감각적인 것은 이제 절대자를 즉자적인 것으로 [공허] 여기면서 긍정적으로 관계한다. 그러면 감각적 현실 자체가 즉자적이 된다. 절대자가 감각적 현실을 만들고 품고 길러낸다. 감각적 현실은 절대자를 그 반대로 즉 감각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절대자로] 간주하며 관계한다. 이 관계에 따르면 감각적 현실은 즉자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단지 대타적인 것이 된다.”


여기서 감각적 현실 즉 실제 대상은 한편으로 즉자적인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대타적인 것이라는 이중적 규정을 지니게 됩니다. 전자는 자기가 목적이라는 뜻이며 후자는 자기가 수단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이중적 규정은 자기가 본래 목적이며 다른 모든 것을 자기의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되며, 달리 말하자면 자기도 타자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수단에 불과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모두가 목적이며 동시에 모두가 수단이 된다는 것이 계몽의 결론입니다. 바로 이런 세계가 유용성의 세계입니다.


앞에서 계몽을 데카르트적 에고로 설명했습니다. 데카르트적 자아는 한편으로 보편적 자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적 자아입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을 객관적 눈으로 관찰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주관성 위에 서 있습니다. 이런 자아는 사실은 주관적인데 이를 객관적이라고 우기는 편집증에 비유했습니다.


이런 데카르트적 자아는 이제 한편으로 자기를 목적으로 세우고 다른 한편으로 모든 다른 것을 자기를 위한 수단으로 세우는 유용성의 세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 세계에서 결국 목적은 추방됩니다. 모두가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죠.


칸트는 보편적 입법의 원리를 가지고 목적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사드는 동일한 보편적 입법의 원리를 가지고 수단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헤겔은 결국 칸트가 세운 왕국은 사드의 왕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앞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비판을 통해 보여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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