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
미래를여는책 2008.05.11 3324

■ 보도자료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
미래를 여는 책/신국판/421쪽/14,000원
2008년 3월 21일 발행
철학/한국철학, 법학/헌법학
문의 02-763-1072/011-9727-5884


“퇴계 이황은 조선시대의 그람시였다”
― 보수의 대명사로 알려진 퇴계 사상의 현실적 목표는 정암 조광조를 계승한 훈구파 청산
― 조광조의 실패를 넘어서 강력한 수구 기득권층에 대한 그람시식 ‘진지전(陣地戰)’ 제시
― 지배층 논리로 왜곡된 퇴계 사상의 진면목 되살려 21세기 우리의 문제 풀어야


1. 200자 요약


퇴계 이황은 흔히 조선을 지배한 보수 이념으로서의 성리학의 대표자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퇴계가 사실은 조선의 대표적 개혁가 정암 조광조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대표적 이론인 이기설과 사단칠정론 등이 조광조의 실패를 극복하여 당시 수구 지배세력인 훈구파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밝혀내고, 이를 통해 오늘날 퇴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2. 주요 내용 및 출간 의의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퇴계, 퇴계 하지만 퇴계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가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자니 한심하고 부끄럽고 억울하기도 하다. 고등교육을 받고도 퇴계라고 하면 조선시대의 성리학자, 조금 더 입시적(入試的) 지식을 익힌 사람이라면 이기론자(理氣論者) 주리파(主理派) 정도를 말할 뿐이다. 그 외에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천원짜리 지폐에 그의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뿐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 162쪽

(1) 퇴계의 두 얼굴 ― 보수 이데올로그인가 진보 사상가인가

조선시대를 지배한 유교 성리학 사상의 대표자 퇴계 이황. 조선의 주자(朱子)로 일컬어지며 오늘날 한․중․일 등 전 세계적으로 주자학의 대가로 추앙받지만, 한편에서 보수(수구)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그로 평가받아온 퇴계의 이론은 사실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개혁가 정암(靜菴) 조광조에 대한 존경 및 그의 실패에 대한 비판적 극복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16세기 당시 4번의 사화(士禍)로 점철되는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사림파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퇴계가 정작 보수적 성리학자라는 오해를 받게 된 과정은 무엇이며, 그의 진면목을 밝혀내는 것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필자는 먼저 퇴계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독특한 구도를 취한다. 일반적으로 퇴계가 주자학자라는 점을 들어 중국의 주희(1130-1200)와의 관계에 집중하지만, 필자는 퇴계의 사상에 접근함에 있어 조광조를 출입구로 한다. 이는 퇴계가 주자학자이기 전에 당대 현실에 고민하였던 ‘16세기 조선의 아들’이었다는 필자의 기본 인식 때문이다. 즉 필자는 퇴계가 자신의 시대(사화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조광조를 통해서,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는 주희의 이론을 재해석하여 세웠다고 본다. 이는 퇴계가 조광조의 개혁 실패를 목격한 것이 19세 때였다면 『주자대전』을 통해 주희를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중년의 나이인 43세때였다는 데 주목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의식 - 조광조
           퇴계의 사상
                            이론의 틀 - 주희

오랜 세월 동안 퇴계의 실천적 고민은 조광조의 실패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조광조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었으며, 결국 그는 그러한 고민의 끝에서 43세 때인 1543년에 본격적으로 주자학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훈구파 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담은 자신의 사상을 완성했다. 그리고 말년의 퇴계는 직접 장문의 ‘조광조 행장(行狀)’을 지어 조광조에 대한 자신의 존경을 정리해냈다. (154-167쪽 참조)

(2) 퇴계와 그람시

특히 필자는 서구 진보이론의 대명사인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그람시에 의해 헤게모니 이론으로 새롭게 계승 발전되었듯이, 중국 송나라 주희(朱子)가 세운 성리학이 퇴계에 의해 핵심 개념인 ‘리’의 능동성 개념(理動-理發-理到)을 중심으로 생명력 있게 계승 발전되었다며 퇴계를 그람시와 비교하고 있다.
퇴계와 그람시는 이 밖에도 시대와 공간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양자 모두 혁신적 사상가였으며, 주요 이론에서도 유사한 프레임이 많다.
전통적인 마르크시즘은 상부구조의 독자적 성격을 부정하는 위에서 정치적으로는 혁명 또는 게릴라전 등 기동전을 중시해왔으나, 그람시는 상부구조의 독자성을 근거로 헤게모니 대립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 진지전의 개념을 제시했다. 필자는 전통적 주자학이 理를 이데아적인 의미로서 실체가 없는 무기력한 관념에 불과하다고 파악해 온 데 대해 퇴계가 理의 적극적 능동성을 강조한 것이 즉 상부구조의 독자성을 주장한 그람시의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 이론과 내용적으로 상응하는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조광조가 위훈(僞勳)삭탈 등을 통해 단기간에 훈구파를 청산하려 한 방식을 마르크시즘의 전통적 기동전에 대비시키고, ‘사상투쟁’이라는 장기전을 통해 훈구파를 청산하려 한 퇴계의 방식을 그람시의 진지전 방식과 비교한다. 말하자면 퇴계는 조선 시대의 그람시였다는 것이다. (192-196쪽 참조)

(3) 퇴계의 주요 이론 고찰

1) 이기론(理氣論)에 대하여
주자학의 핵심개념은 ‘리(理)’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연상시키는 理를 인간 사회에 구현하는 것이 성리학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주자는 理가 氣를 통해 운동한다고 했지만 퇴계는 理에도 운동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여 독창적 사상체계를 세웠다. 퇴계가 理를 주목한 이유는 그가 당시 훈구파 청산을 고민했다는 현실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으며, 이로써 성리학을 현실 비판과 변혁을 위한 사상적 무기로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理는 도덕과 정의의 우주적 표상이었다. 그 理의 기준에서 볼 때 훈구파들은 엘리트로서 자격 없는 사람들이었고, 청산되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퇴계의 理철학은 ‘인적 청산’을 주장하는 사회변혁의 사상이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197-211쪽 참조)

  2) 敬의 사상에 대하여
  퇴계는 理에 대한 인식과 탐구만큼이나 理를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것이 바로 ‘敬의 철학’이다. 그 자체로는 관념이요, 가능성에 불과한 理는 敬에 의해서 비로소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敬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의 덕목은 아니나, 敬이 없으면 지존의 理도 단순히 관념에 불과하게 된다. 성리학의 이상은 허구가 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이데올로기의 허위의식으로 변질되듯이). 그리하여 퇴계는 理와 敬을 ‘수레의 두 바퀴요,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하여 양자에게 동등한 가치를 부여한다. 말년의 대표적 저작인 『성학십도』는 온통 敬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즉 그는 理의 구현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자신의 학문을 ‘성학(聖學)’이라 이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성학은 敬에서 시작하여 敬에서 끝난다.\"
  퇴계가 理의 능동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敬의 중요성을 강조한 실처적 배경은 무엇일까. 필자는 퇴계가 理의 능동성을 주장한 것이 사림세력의 적극적인 역할을 환기하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와 더불어 敬의 정신을 강조한 것은 조광조의 실패 때문이라고 본다. 즉 敬은 조광조의 실패를 거울 삼아 적극적인 액션에 앞서 ‘내공’을 기르고 ‘덕기’를 함양해야 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理의 능동성과 敬은 실천적 맥락에서는 ‘적극성’과 ‘소극성’이라는 상호 모순된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理의 능동성’과 ‘敬’의 동시적 강조, 이걸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필자는 퇴계의 메시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이라고 주장한다. \"혼돈의 시대엔 이론은 좌경적, 실천은 우경적일 필요가 있다.\" 방향과 목표는 원칙론을 고수하되 실천은 현실을 고려하여 신중하고 사려 깊게 접근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이러한 敬의 정신 결여에도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 212-231쪽 참조)

3)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대하여
퇴계와 고봉 기대승 간의 8년간에 걸친 ‘사단칠정논쟁’은 우리 전통철학사에서도 대표적인 논쟁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이 논쟁의 성격 또한 사변적이 아닌, 훈구파 청산의 방법론을 둘러싼 실천적 논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기대승은 기묘사화(1519) 당시 조광조와 함께 숙청당한 기묘8현 중 기준(奇遵)의 조카였다. 논쟁을 시작할 당시 퇴계보다 26살이나 어렸던 30대 초반의 젊은 사림파 기대승과 퇴계의 기본적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기대승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서를 의미하는 4단을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즉 7정에 포함되는 것으로, 따라서 양자가 모두 氣가 주도하는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한 데 대해, 퇴계는 4단이 7정과는 달리 理의 지배권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4단을 강조하는 퇴계의 주장은 이념적 인간관에 근거한 것으로 인적청산론(혁명)과 연결되고, 7정 중심의 고봉의 학설은 현실적 인간관에 입각한 것으로 인적 청산보다는 제도적 접근론(개혁)에 연결된다고 본다. (254-262쪽 참조)

...................<그림> 퇴계와 고봉의 차이....................................

나아가 필자는 공리공담으로 소문난 이 사단칠정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어 서술하고 있다. 즉 4단과 7정을 공(公)과 사(私)의 코드로 접근하여 공법관계와 사법관계의 비유로 해명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관련하여 사단칠정론을 재해석하기도 한다. 아마 이 사단칠정론을 현대적 문맥에 맞추어 새롭게 해석한 부분은 이 책 최대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341-366쪽 참조)

4) 양명학 비판
퇴계와 중국의 왕양명은 비슷한 시대에 주자학을 ‘마음의 철학’으로서 발전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실천성을 강화한 공통점이 있지만, 정작 퇴계는 양명학을 극렬히 공격한 바 있다. 후대의 많은 학자들이 이 때문에 퇴계가 조선 성리학이 편협한 배타성에 빠지게 한 과오를 저질렀다고 비판하지만, 필자는 퇴계와 왕양명이 각각 처했던 조선과 중국의 주체적 상황의 차이점을 근거로 당시 조선에서 양명학이 오히려 반동적 측면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즉 중국에서 주자학은 이미 300년이 지나 형식화․교조화되어 있었기에 양명학이 그에 대한 비판, 진보의 의미를 지녔지만, 16세기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청년의 사상으로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양명학의 참신성보다는 위험성이 더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같이 理를 중시하면서도 왕양명은 理를 주관적인 것으로 본 반면, 퇴계는 이를 객관적 실체로 보았다. 즉 퇴계는 理가 주관적이 되면 냉정한 현실 인식에 장애를 초래함으로써, 훈구파 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사상은 그 시대의 소산’이라는 관점에서 주자학이나 양명학 모두 탄생 당시 중국에서는 진보적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마찬가지로 각각 그 이론들이 국내에 본격 도입될 당시 조선의 시대상황에서는 성리학이 보다 진보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272-280쪽 참조)

5) 퇴계의 현대적 의미
훈구파가 지배하던 16세기 중반까지 조선에서 성리학은 훈구파와 투쟁하던 사림파의 진보적 사상이었다. 필자는 성리학자로서 퇴계가 보수의 대변자로 이해되는 오늘날의 인식이 잘못되었으며, 성리학의 보수화는 오히려 퇴계와 대비되는 율곡 이이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즉 율곡이 인적 청산보다 제도적 접근을 선호함으로써 실천적으로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타협을 이끌어내고, 이것이 훈구파가 변신한 집단인 서인세력에 힘을 실어준 격이 되었으며, 결국 이들이 주도한 인조반정(1623) 이후 성리학이 지배층의 보수 이데올로기로 본격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사문난적’이라는 사상 검열의 표찰을 휘두르며 조선후기 3백년을 주도했던 서인-노론세력이 율곡의 이름을 앞세운 집단이었음(19세기 세도정치 안동김씨도 율곡계열)을 필자는 지적한다. (125-130쪽 참조)

지난 노무현 정권을 전후한 진보 학계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현대사에 국한되었다면, 퇴계의 재해석은 조선시대 역사와 사상사를 전반적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의미를 가진다. 나아가 필자는 퇴계에 대한 재해석이 단순한 인식에 그치지 말고 21세기 현대에 있어서 퇴계 사상의 재구성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퇴계 사상은 애초에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상인 만큼, 당대에서의 진보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시대를 바꾸어서 현대에도 혁신적 의미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의 주장인즉,
첫째, 퇴계의 사상을 오늘날의 언어와 문맥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왕조 시대에 임금과 관료, 지식인들을 향했던 그의 철학을 오늘날 민주 시대에 일반 대중을 위한 사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셋째, 인문학 울타리 내에서 논의되어온 퇴계학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퇴계는 근본적으로 전인적 교양인이자 시대의 현실을 고민했던 실천철학자였다. 따라서 분과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의 울타리에서 퇴계를 해방시켜 사회과학, 자연과학 및 공학 등 실용의 영역으로 넓혀야 한다.

6) 헌법과 퇴계
끝으로, 이 책의 제목을 왜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고 한 것일까? 필자는 특이하게도 제도교육 내에서 퇴계를 전공하지 않은, 말하자면 재야 학자로서 이 책의 결론에 대신하여 자신의 전공인 법학과 관련하여 퇴계의 재해석과 적용을 직접 시도해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퇴계의 성리학을 ‘정의의 철학’이자 ‘사법의 철학’으로 구성하고 있다. 퇴계 사상의 핵심 개념인 ‘理’가 사법의 이념인 ‘정의’를 뜻한다는 것과 理의 체용 구조가 사법의 형태를 상징한다는 게 첫번째 이유이다. 그의 理發은 사법적극주의를, 그리고 그의 敬의 사상은 헌법 제103조의 법관의 ‘양심’ 조항으로, 그의 말년의 대표적 저작인 󰡔성학십도󰡕는 이상적인 ‘법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이처럼 필자는 퇴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법철학을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3. 차례


제1부 법치주의의 시대, 조선을 읽어야 하는 이유

1. 조선시대와의 대화를 위하여
2. 서구중심주의와 한국 정치인들의 식민성
3. 한국 법학도들의 식민성 문제
21세기의 삼봉을 기다리며 / 법학도와 인문정신 / 한국 헌법학의 정체성 문제 / 삼봉 정도전의 헌법정신
4. 한국적 법학을 위해 – 조선시대를 읽자
원효의 교훈을 통해서 / 한국적 헌법학을 위해 – 조선시대의 전통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장애인가 / 한국적 법철학을 위해

제2부  퇴계의 시대 - 16세기 사화의 역사

1. 왜 16세기인가
조선시대를 보는 관점의 문제 / 조선왕조 5백년에서 16세기 역사의 중요성 / 조선 성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 실증사학의 문제 / 퇴계를 이해하기 위해
2. 16세기 사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 - 15세기의 양면성
3. 사화의 역사, 그 전개 과정
무오사화 / 갑자사화 / 기묘사화 / 을사사화
4. 16세기 사화의 역사에서 성리학의 역할
5. 훈척시대의 종말과 사림시대의 개막
6. 동서분당, 그리고 그 후 성리학의 운명
<참고> 조선전기 훈구파세력의 형성과정(도표와 그림을 통해서)

제3부 퇴계의 사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

1. 21세기 퇴계의 부활을 위하여
2. 사상과 현실의 관계 – 원효와 지눌과 수운, 그리고 퇴계
3. 퇴계와 정암 조광조(1)
4. 퇴계와 정암 조광조(2) – 현량과
5. 퇴계와 주자의 차이
퇴계의 정체성을 문제삼는 이유 / 퇴계와 주자의 차이 – 3가지 측면에서/ 퇴계의 독자성 - 정암 조광조를 통해서
6. 퇴계의 정체성 문제 – 공자, 플라톤, 그람시를 통해서
7. 퇴계 사상 제일의 특징 - ‘理發說’에 대하여
퇴계는 ‘주자학 최대의 이단’이라는 견해 / 퇴계 理發說의 딜레마 / 다른 견해 – 퇴계는 주자학(성리학)의 적통이다 / 퇴계 理發說의 실천적 의미 – 16세기 역사 속에서 / 理發 – 법관의 ‘판결’의 비유를 통해서
8. 퇴계, 敬의 사상가
퇴계 사상의 기본 구도 – 이론과 실천의 조화 / 성리학에서 敬의 위치 / 敬이란 무엇인가 / 퇴계 敬사상의 실천적 의미 / 여론(餘論) - 노무현 정부의 과거청산 작업과 퇴계의 교훈9. 퇴계와 고봉 간의 사단칠정논변에 대한 새로운 이해
사단칠정논변의 배경① - <주자대전>의 보급 / 사단칠정논변의 배경② - 16세기 사화(士禍)의 시대 / 무엇에 대한 논쟁이었는가 / 사단칠정논변의 쟁점  / 논쟁의 현대적 의미
10. 퇴계는 왜 양명학을 비판했는가
11. 주자학, 양명학 그리고 퇴계학 – 헌법의 비유를 통해서
12. 오늘과 같은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퇴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제4부. 퇴계의 현대적 의미

1. 21세기 퇴계의 부활을 위한 서론
2. 건국 60주년(2008년) – 퇴계와 선진화
3. 퇴계와 한류 – ‘대장금’에 대한 새로운 해석
4. 퇴계와 과학
열린 시각으로 퇴계를 보자 / 16세기 누적된 시대의 병을 치료한 탁월한 의사 / 실학과 퇴계 –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을 통해서 / 20세기 과학계 최고의 ‘도산사숙가’(陶山私淑家) – 무은재 김호길 / 시대가 퇴계를 부른다
5. 자본주의 시대의 퇴계
퇴계학의 현대적 해석의 분수령 – 사단칠정론의 문제 / 자본주의와 퇴계 / 퇴계와 삼성
6. 퇴계와 법치주의
왜 ‘사법(司法)의 철학’인가 / 퇴계의 理發과 사법적극주의 / 敬의 철학과 헌법 제103조의 ‘양심’ / 『성학십도』의 법철학적 의미 – ‘성인’은 법관의 이념형


4. 지은이 소개

지은이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법무부에서 근무했다. 10여년 전 우연히 조선시대 역사와 사상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그동안 법학을 공부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과 접목하여 법학도의 관점에서 성리학 사상을 실용적, 실천적으로 해석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퇴계탄신 5백주년 때에는 ‘조사연’(조선시대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필명으로 퇴계에 대한 글을 인터넷에 올려 일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 책은 제도권 인문학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강단의 퇴계를 세상 밖으로, 21세기의 현실 속으로’라는 나름의 표어 아래 진행해온 작업의 결과물이다.


5. 본문 중 주요 내용


“퇴계의 철학을 공리공담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의 철학 행위는 훈구-척신의 지배를 극복하고 사림의 시대를 열기 위한 실천적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헤겔은 “모든 사상가는 시대의 아들이요, 사상은 개념으로 포착된 그의 시대이다”라고 했다. 퇴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퇴계는 16세기 조선의 아들이었으며 그가 사용한 개념에는 자신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그가 왜 주자학에 매료되었고, 왜 氣보다 理를 중시하였으며, ‘사단’과 ‘칠정’이라는 마음의 두 양상이 뭐가 그리 궁금했길래 8년 동안이나 씨름했는지(사실 사단칠정논변은 고도의 ‘정치담론’이었다), 또 주자학의 문맥을 넘어 理의 능동성(理動-理發-理到)까지 주장한 내막은 무엇인지, 양명학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왜 그리 양명학을 혹독하게 비판했는지 등등을 우리는 16세기 역사와 퇴계의 시대의식을 빼고는 온전히 논할 수 없다. 퇴계는 이러한 철학적 작업을 통해 시대정신을 바로 세우고 바람직한 공동체의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사림세력이 주도하는 개혁의 명분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81-82쪽)


“퇴계는 주자학자이기 전에 ‘조광조의 비판적 계승자’였다. 위 인용문은 조광조가 이루지 못한 개혁철학을 자신이 완성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개혁철학을 퇴계는 주자학에 대한 주체적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 내었다. 퇴계가 조광조를 만난 것이 19세 때였다면, 주희를 만난 것은 43세 때였다. 그러니까 퇴계는 시대 현실을 보는 문제의식은 조광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통해서,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는 주희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세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중략).... 당시 중국에서는 양명학의 등장과 함께 주자학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주자학이 조선의 퇴계로 인해 새로 태어났다. 아니 주자학은 ‘퇴계학’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퇴계가 존경하고 추종했던 주희는 자기 안에서 재구성된 주희였다. 그것은 바로 퇴계 자신이었다.” (185-187쪽)


“그런데 그람시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텍스트에 언급된 내용과 달리 명백히 \상부구조의 독자성\을 인정한 사람이었다. 사회 변혁에 있어서 지식인의 역할, 철학과 사상 등 문화 영역의 역할을 강조한 그의 \헤게모니 이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람시의 입장은 마르크스가 상대적으로 간과했던 상부구조의 역할을 명백히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람시를 \상부구조의 이론가\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라고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그람시의 위치\와 \주자학계 내에서 퇴계의 위치\를 유사한 차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람시가 하부구조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상부구조에 독자성을 부여함으로써 20세기 서구사회에서 꺼져가던 마르크스주의의 불길을 되살린 것처럼, 퇴계 역시 주희의 무기력한 理 개념에 운동성(理動-理發-理到)을 부여함으로써 주자학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중략)
흥미롭게도 사상의 내용적 면에서도 그람시와 퇴계의 유사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람시의 \지적-도덕적 헤게모니\ 개념은 그대로 퇴계의 \理發\(지성과 도덕성을 징표하는 理의 지도력 인정)을 연상케 한다. 또 변혁에 있어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 그람시처럼 퇴계 역시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 그 당시의 지식인 그룹이라 할 \사림(士林)\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라든가.
변혁의 전략 측면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그러니까 그람시는 러시아 볼세비키 류의 기동전에 대해서 진지전을 선호했다고 하는데, 퇴계 역시 전략적인 면에서 그람시가 말하는 진지전 방식을 취하였다. 그것은 조광조의 방식과 비교해보면 분명해 보인다. 즉 조광조 가 일거에 와장창 하는 기동전 방식을 취했다면 퇴계는 장기적인 전망 하에서 진지전 방식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가 말하는 진지전의 \참호\는 퇴계에게 있어서는 전국 각지에 산재하는 \서원\, 그것이었다.” (192-196쪽)


“퇴계의 주장은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 그 새로운 인간이 누구냐. ‘4단’의 정서로 충만한 인간이요, 도덕과 정의(理)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안으로 4단의 정서를 확충하여 도덕적 내공을 굳건히 다지는 ‘경(敬)의 실천’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세상을 개혁하기에 앞서 개혁주체세력 자신의 인격수양부터 힘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념적 인간’을 앞세우는 퇴계의 개혁론은 내부적으로는 ‘인격수양론’의 형태를 띠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견 소극적으로 보이는 이 전략이 밖으로 나타날 때는 매우 전투적인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이른바 ‘인적청산론’이 그것이다. 즉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인간이!’라는 슬로건 하에 현실의 타락한 권력집단을 비판하면서 권력의 교체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혁명론이다.
그런데 퇴계의 사유에는 이처럼 ‘전투성’이 농후함에도 우리는 왜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가. 퇴계에겐 전투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퇴계의 실천은 조광조와 대비된다. 조광조가 정치현장에서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전복을 기도했다면, 퇴계의 경우는 ‘교육’을 통해 신진세력을 양성함으로써 먼 장래를 기약하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점진적으로 인적청산을 도모하는 방식이었다. 퇴계의 전략은 이를테면 ‘무혈혁명’ 혹은 ‘평화적인 세력교체’ 그것이었다.” (255-256쪽)


“그러나 사단칠정론은 과연 비판자들의 지적처럼 공허한 관념론에 불과한 것일까? 사단칠정론은 이론이다. 이론은 내용이 아무리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라 해도 그 자체로서는 실천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관념적으로 보일지라도 다수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퇴계의 사단칠정론은 그 당시 지식인 대중(사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성리학이 조선 전역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마침내는 ‘훈구에서 사림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는 힘으로 작용했다. 사단칠정론이 어떻게 16세기 지식인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시대의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기의 문제, 그것은 ‘인간’이었고 사단칠정론은 바로 ‘인간’을 뿌리에서부터 다룬 것이었다.” (343쪽)


“21세기 오늘날 자본주의의 현황을 돌아보면, 구체적 풍경은 다르지만 ‘리기론(理氣論)적으로는’ 퇴계의 시대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목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얼굴을 하고 세계를 질주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우월감에 젖어 독주하는 ‘시장주의자’들의 모습은 이미 정상적인 ‘말과 기수’의 행보가 아니다. 통제 받지 않는 자유와 욕망과 이기심의 氣發은 광기(狂氣)의 발현이라 해야 한다. …… 승자독식, 양극화, 성장지상주의, 자원 낭비, 환경 파괴 등 시장만능의 신화 아래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뒷모습은 짙어간다. 이를 시장전체주의, ‘시장이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타락한 시대를 구원할 대안으로서 4단을 주목하고 ‘理의 능동성’을 강조한 퇴계의 처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354쪽)




<보충자료①>

왜 이 시대에 퇴계인가



․ 헌법 제정 60주년, 퇴계를 통해 우리 헌법학의 현실을 돌아본다
․ 천박한 실용주의가 판치는 시대, 인문정신의 능동성(理發)을 강조했던 퇴계를 통해 인문학의 활로를 모색하자
․ 떠오르는 거대중국, ‘사상의 동북공정’을 경계하며 중국 본토의 주자학과 다른 퇴계학의 독자적 정체성을 인식하자.
․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세계철학자대회(2008.7.30-8.5)에 퇴계를 제대로 알리자. ‘사상의 한류’를 꿈꾸며
․ 법치주의의 시대, 변호사 1만명의 시대, 로스쿨의 도입과 함께 쏟아져 나올 법률가들의 시대, 인문정신을 갖춘 법률가들을 대망하며


1. 헌법학 교과서는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

올해(2008)는 헌법 제정 60주년이 되는 해, 우리 헌법학의 현실을 돌아보자. ‘법은 역사와 문화의 소산’이라는 명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헌법이요, 우리의 국가적 정체성을 법으로 표현한 것이 헌법임에도 우리의 헌법책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없다. 서양의 역사와 사상과 이론만이 현란하게 인용되어 있을 뿐. 적어도 우리의 헌법학자라면 법학자이기 전에 우리의 역사와 사상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헌법학자는 법학자이면서 동시에 역사학자요 사상가일 필요가 있다. 또 헌법책은 법서이면서 역사서요 사상서이기도 해야 한다.
분명 우리의 헌법은 전문(前文) 첫머리에서부터 우리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민임을 천명하고 있고, 또 제9조에서는 국가에 대해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 문화의 창달’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의 헌법학자들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는 위헌적인 교과서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퇴계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어떻게 헌법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 퇴계를 ‘쉽고’, ‘생동감 있고’, 그리고 ‘현실성 있게’

천 원권 지폐 속의 인물 퇴계 이황(1501-1570), 아마 역사 상의 인물 중에서 퇴계만큼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듯 하면서도 사실은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과연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저자(유홍준)의 다음과 같은 넋두리가 퇴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대변하는 듯 하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퇴계, 퇴계 하지만 퇴계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가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자니 한심하고 부끄럽고 억울하기도 하다. 고등교육을 받고도 퇴계라고 하면 조선시대의 성리학자, 조금 더 입시적(入試的) 지식을 익힌 사람이라면 이기론자(理氣論者) 주리파(主理派) 정도를 말할 뿐이다. 그 외에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1천 원짜리 지폐에 그의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뿐이다.” (3권, 162쪽)

이 책은 이러한 퇴계를 어떻게 하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쉽고’ ‘생동감 있고’ 그리고 ‘현실성 있게’ 알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비롯된 책이다. 이 책은 우선 퇴계를 ‘오늘의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과거 속에 박제되어 있는 퇴계가 아니라 21세기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 살아 있는 퇴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3. 퇴계학의 블루오션을 향하여 – 퇴계를 ‘헌법’이라는 배에 싣고서

이를 위해 필자는 지금까지 학자들이 이야기해온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그것은 퇴계를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척도요 기준인 ‘헌법’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헌법을 통해 보면 퇴계는 결코 과거 속의 인물이 아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우리 헌법 속에 녹아 들어 현실을 움직이는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 책은 보여 주고자 한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퇴계학의 새로운 영역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까지 퇴계는 주로 인문학의 영역에서 논의되어 왔고 이제 인문학적 논의는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퇴계학의 활로는 강단 인문학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데 있다. 보다 현실과 밀접한 분야와 만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책이 ‘퇴계를 세상 밖으로, 21세기의 현실 속으로’라는 표어 아래 시도하고 있는 과학과 경제, 법치 분야와의 만남은 퇴계학의 대표적 미개척 영역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퇴계학의 블루 오션(blue ocean)이다.


4. 퇴계를 세상 밖으로, 21세기의 현실 속으로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퇴계의 현대적 의미를 밝히면 이런 것이다.

(1) 건국 60주년과 퇴계
올해는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 그동안 우리는 나라를 세웠고 산업화, 근대화를 이룩했고, 민주화를 달성했다. 이제는 ‘선진화’가 화두라고 한다. 그러나 선진화는 경제살리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어 교육 확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진화는 경제발전과 함께 대한민국을 줏대와 품격이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 필자는 선진화의 길은 ‘퇴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으로부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

(2) 문화의 시대와 퇴계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국제경쟁력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요, 문화강국이 바로 세계적인 강국인 시대이다. 그리하여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던 백범의 이야기가 새삼 각광을 받고 있다. 근래 그 문화강국의 가능성을 보여주어 우리의 가슴을 한껏 부풀게 했던 한류, 필자는 성공적 한류의 대명사인 ‘대장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대장금이 세계인의 보편적인 공감을 얻은 배경에는 퇴계를 포함하는 16세기 정신사가 간접적으로 관계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3) 법치주의와 퇴계 – ‘법관의 철학’을 위하여
퇴계의 사상이 인문학 밖에서도 타당하다면 가장 근사한 분야가 어디일까. 필자는 법치 분야, 그것도 사법(司法)의 영역이라고 본다. 이 책은 퇴계의 성리학을 ‘정의의 철학’이자 ‘사법의 철학’으로 구성하고 있다. 퇴계 사상의 핵심 개념인 ‘理’가 사법(司法)의 이념인 정의를 뜻한다는 것과 理의 체용 구조가 사법(司法)의 형태를 상징한다는 게 첫번째 이유이다. 그의 理發은 사법적극주의를, 그리고 그의 敬의 사상은 헌법 제103조의 법관의 ‘양심’ 조항으로, 그의 말년의 대표적 저작인 『성학십도』는 이상적인 ‘법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이처럼 필자는 퇴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법철학을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대법원 뜨락에 법전과 저울을 들고 있는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대한민국 법조 엘리트들의 정신적 식민성을 상징하는 표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사법의 상징물을 ‘『성학십도』를 들고 있는 퇴계상’으로 교체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4) 자본주의와 퇴계
오늘날은 경제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이다. 퇴계학이 21세기의 거리에서도 활보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현대 사회 최대의 특징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무언가 통찰력 있는 한 마디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사단칠정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퇴계의 사상이 자본주의 시대에도 설득력 있는 사상임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헌법 제119조는 퇴계의 사단칠정설을 경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 터진 삼성 스캔들은 퇴계 학설의 타당성을 웅변하는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5) 과학의 시대와 퇴계
전혀 무관해 보이는 과학과 퇴계, 그러나 필자는 과학의 세계에도 퇴계는 설득력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한 인물을 매개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인문학자들도 퇴계를 외면하던 20세기, 한 걸출한 과학자의 정신세계 속에 퇴계가 시퍼렇게 살아 있었음을 필자는 주목했다. 그는 바로 초대 포항공대 총장 故 무은재 김호길 박사. ‘과학도 인간이 하는 것’이라고 했던 그 사람, 그에겐 포항공대도 도산서원의 재현이었다. 특히 근래에 벌어진 희대의 과학사기사건은 과학의 영역에서 퇴계의 가치를 논한 그의 지론이 탁견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과학의 시대엔 과학을 아는 자가 리더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 사람, 문과계 인사들에 의해 과학과 기술이 해체되고 있는 이 시대 그의 존재가 더욱 아쉽기만 하다.

이상에서 보듯이 이 책은 퇴계 하면 보수와 소극, 은둔, 도피, 공리공담, 사대, 모방 운운 하는 이 시대 거의 상식화된 고리타분한 퇴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한다.
“이 책을 읽지 않고 퇴계를 논하지 말라”고.




<보충자료②>

저자의 말
- 왜 일개 법학도가 이런 책을 썼는가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법대생들이 대체로 그렇듯 저도 소위 고시 공부라는 걸 했지요. 그런데 수험생활 도중에 품었던 ‘헌법’과 ‘법철학’ 과목에 대한 불만이 훗날 엉뚱하게도 이런 책으로 나타나게 될 줄이야 당시엔 알지 못했습니다.

1. 어느 법학도의 불만(1) – 헌법을 공부하면서

저는 헌법을 공부하면서 이런 불만을 가졌었습니다. 우리의 헌법은 첫머리(前文)에서부터 우리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민임을 천명하고 있고, 또 제9조에서는 국가에 대해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왜 우리의 헌법학 교과서에 우리 역사와 전통에 대한 언급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느냐, 왜 서양 역사의 성취와 서양 사상가의 주장만 현란하게 인용되어 있느냐고. 그러면서 저는 이렇게 단정했습니다. \"우리의 헌법학자들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는 위헌적인 교과서를 남발하고 있다\"고. (이 책 44쪽 참조)
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헌법학자는 법학자이면서 동시에 역사학자요 사상가여야 한다. 또 헌법책은 법서이면서 역사서요 사상서이기도 해야 한다. 이를테면 법철학이 ‘실정법 밖에서’ 인문학과 만나는 것이라면 헌법학은 ‘실정법 안에서’ 인문학과 교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거대담론의 시대는 갔다고 하지만 적어도 헌법학은 법학의 거대담론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저는 최대권 한동대 석좌교수(전 서울법대 교수)의 말을 빌어 이렇게 단정지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이상과 방향 및 목표와 가치질서를 제시하고 혹은 설명해 주는 학문으로서의 우리의 헌법학은 없다\"고. (이 책 43쪽 참조)
그리고 저는 유신정권의 그 이상한 ‘한국적 민주주의’론에 대해, 수입 헌법학에 경도되어 한국적 헌법학의 수립을 외면하였던 우리 헌법학자들의 직무유기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위력을 떨치던 때가 있었다. 바로 1970년대 유신시절이었다. 사실 박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는 우리 역사와 전통 속에 흐르는 기본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근거 없는 사이비 민주주의였다. 그의 권력은 실로 왕권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조선의 왕권은 유교이념과 그에 기초한 나름대로의 법적, 제도적 통제하에 있었지만 그의 권력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었다. 헌법 위에 그의 말씀(긴급조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유례 없는 독재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로 근사하게 포장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의 헌법학자들이 모조리 서구중심주의에 함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두들 외래의 복음에 홀딱 빠져 그저 황공해 하는 동안 주체의 공간은 텅 비었고 유신집단은 이를 손쉽게 장악하여 적절히 활용하였던 것이다. 결국 수입 헌법학에 경도되어 한국적 헌법학의 수립을 외면하였던 우리 헌법학자들의 직무유기, 이것이 허구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한 때 위세를 떨치게 된 배경이었던 셈이다.\" (46-47쪽)

저는 이 책에서 조선왕조 5백년 기틀을 놓은 헌법 『조선경국전』을 쓴 삼봉 정도전을 우리 역사상 최고의 헌법학자라고 평가하면서, 우리의 헌법학자들은 그의 헌법정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풍부한 인문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 48쪽 참조)

2. 어느 법학도의 불만(2) – 법철학을 공부하면서

한편 저는 법철학을 공부하면서 헌법학에 대해 느낀 것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 가는 불만과 비애를 느꼈습니다. 우리의 법철학 교과서는 순 서양 이론 일색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고 규범이 있기 마련이라는데, 왜 우리의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는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법철학적 사유의 흐름이 없었겠는가. 인문학의 서구중심주의와 식민성이 법철학 분야에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근래 인문학계엔 그래도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고, 우리 ‘인문학의 식민성’을 자성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법학의 인문학이라 할 법철학은 위기라고 외칠 만큼의 자각도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책 58쪽 참조)
현실의 거리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상식화된 지 오래고,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는 법의 잣대 하며, 뿌리 깊은 전관예우의 관행, 수시로 터져 나오는 법조비리, 재벌의 집사요 참모로 전락한 초라한 전직 판사와 검사들, 비행 재벌의 로비에 놀아나는 전현직 경찰수뇌부들, 근래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91%의 사람들이 \"법보다 돈과 권력이 더 위력적\"이라고 한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법철학자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법현실이야 시궁창에서 해매든 말든 ‘법철학’이라는 고상한 성채에서 아무도 읽지 않는 (그것도 식민성에 쩔은) 논문들을 양산하고 있지나 않은가. 저는 우리 법철학의 수준이 비극의 법현실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법의 이념이 ‘정의’라면 우리 조상들에게 정의에 대한 관념이 왜 없었겠는가. 저는 조선시대 성리학이 바로 ‘정의의 철학’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가 바로 정의를 표상한다는 겁니다. (이 책 372쪽 참조)
혹자들은 성리학이 중세적 사상이요, 중세사회가 마감되고 근대사회로 옮겨 가던 시점에서 임무를 마침과 동시에 생명력도 다했다고 하지만, 성리학은 법철학의 영역에서 새롭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법은 곧 인간의 문제\"라는 걸 인정한다면 말이지요.
우리는 법치주의라는 말을 당연한 전제처럼 사용하지만, 사실 글자 그대로의 ‘법치’(法治, 법이 다스린다)는 좀 문제의 여지가 있는 말입니다. 실제로 다스리는 주체는 법이 아니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정치인, 법을 판단하고 집행하는 판사, 검사, 공무원, 또 법을 지키고 존중함으로써 법을 실효성 있게 하는 일반 국민들, 모두 인간입니다. 이들이 법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법치주의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문제를 빼고 법치주의의 성공을 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리학은 법과 제도에 앞서 ‘인간’의 문제를 사유의 중심에 두고 있는 사상입니다. 무릇 시대가 변하고 체제가 바뀌어도 ‘인간’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성리학이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3. 퇴계를 통해서

저는 우리 헌법학과 법철학에 대한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우리 역사상 대표적인 사상가인 퇴계의 사상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리공담이라고 힐란하고 있는 퇴계의 사상에서 저는 뜻밖에도 헌법과 법철학적 사유가 농후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1) 퇴계와 헌법

먼저 헌법적 관점에서 퇴계의 사상을 파악한다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리발(理發)을 브랜드로 하는 퇴계학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주자학, 양명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이 책에서 저는 퇴계사상의 특징을 헌법 제1조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즉 헌법의 비유를 통해 퇴계의 사상과 주자학, 양명학과의 차이를 논하고 있으며, 아니 퇴계학은 오히려 이들을 ‘실천적 측면에서’ 종합한 체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3부 11장, ‘주자학, 양명학, 퇴계학의 차이 / 헌법의 비유를 통해서’ 참조)
둘째는, 퇴계의 유명한 논설이자 공리공담의 전형으로 소문난 사단칠정설을 공(公)과 사(私)의 코드를 통해 접근한 다음, 이를 헌법 제119조의 ‘경제조항’과 관련하여 해석한 점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제119조 ①항은 기발(氣發)을 앞세우는 7정의 논리로, 적정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남용의 방지, 경제 민주화를 위한 규제를 명시하고 있는 ②항은 리발(理發)이 이끄는 4단의 논리로 이해하였습니다. 퇴계의 사단칠정설을 자본주의 체제와 관련하여 해명한 것은 이 책 최대의 특징이라고 할 것입니다.(제3부 9장 ‘퇴계와 고봉 간의 사단칠정론변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제4부 5장 ‘자본주의 시대의 퇴계’ 참조)
셋째는 리기론(理氣論)과 함께 퇴계 사상 양대 축의 하나인 경(敬)의 사상을 헌법 제103조의 ‘법관의 양심’ 조항과 관련하여 해석한 점입니다. 경(敬)이 없이 리(理)의 실현이 있을 수 없듯, 법관이 양심을 저버릴 때 법정에서 정의는 결코 구현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사법이 기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헌법의 양심 규정은 사법제도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규정임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제103조 ‘양심’의 의미를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에서 말하는 양심과의 차이를 통해 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한 특징이라고 할 것입니다. (제4부 ‘퇴계와 법치주의’ 중 ‘敬의 철학과 헌법 제103의 양심’ 참조)

(2) 퇴계와 법철학 / 사법철학(司法哲學)을 위하여

다음 법철학적 측면에서는 퇴계를 어떻게 보았느냐. 저는 퇴계의 사상을 ‘사법의 철학’ 혹은 ‘법관의 철학’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저는 오늘날 민주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법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과연 변화된 위상에 걸맞는 ‘사법의 철학’(제도 개혁 차원이 아닌)이라는 게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퇴계를 통해 사법의 철학을 정립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는 퇴계의 대표적 학설이요 논란 많은 리발설(理發說)을 ‘법관의 판결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 다음(이 책 210쪽 참조), 나아가 사법철학의 관점에서 이를 법적 정의 실현을 위해 사법의 적극적 자세를 요구하는 ‘사법적극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경(敬)의 사상은 사법 정의의 실현을 위한 법관 내면의 ‘양심의 추진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그리고 퇴계 말년의 대표적 저작인 『성학십도』는 ‘이상적인 법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근래에 제도화된 배심제(국민참여재판제도)는 ‘열린 사법’을 지향하는 퇴계의 법철학과 조화를 이루는 제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퇴계의 사상은 직업 법관 뿐만 아니라 ‘잠재적 법관’인 모든 국민에게도 직접적인 의미를 가지는 사상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퇴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법철학을 구축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뜨락에 법전과 저울을 들고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대한민국 법조 엘리트들의 정신적 식민성을 상징하는 표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사법의 상징물을 ‘『성학십도』를 들고 있는 퇴계상’으로 교체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상 제4부 6장 ‘퇴계와 법치주의/사법의 철학’ 참조)

이처럼 법치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퇴계는 결코 과거 속의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리발설(理發說)을 중심으로 한 사단칠정설, 경(敬)의 철학 등 그의 사상의 핵심은 우리 헌법 속에 녹아들어 대한민국의 현실을 움직이는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4. 법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위하여 / 학문간 소통의 한 사례

저는 이 책을 통해 법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시도해 왔습니다. 요즈음 학문간의 소통, 경계 허물기,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이 책이 바로 학문간 소통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비록 아마추어 서생에 불과하지만 이 책엔 퇴계를 중심으로 법학과 철학(동양철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심지어 자연과학의 입장까지 두루 반영되어 있습니다.
학문은 현실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 법치의 현실은 법학의 수준과, 정치의 질은 정치학의 수준과, 경제의 질은 경제학의 수준과, 우리의 정신문화는 인문학의 수준과 함수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트 스펠마이어는 최근에 번역 출간된『인문학의 즐거움』(정연희 옮김, 휴먼앤북스, 2008)에서 인문학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자폐(自閉)적인 이론을 버리고 대중의 생생한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시대의 중요문제에 대해 적극 발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의학 인문학’ ‘법 인문학’ ‘미디어 인문학’처럼 활동 영역에 따라 다른 학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사회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은 ‘법 인문학’의 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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