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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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理發說’에 대하여 - 법관의 판결의 비유를 통하여
미래를여는책 2008.05.12 3228



퇴계 성리학 제일의 특징,  ‘理發說’에 대하여
  - 법관의 판결의 비유를 통하여



주자학의 핵심 개념은 리(理)이다. 그것은 우주만물의 존재 근거요, 운행의 법칙이며 인간이 따라야 할 표준이다. 규범으로 말하자면 ‘헌법’과 같은 존재이다. 주자학에서는 그것을 하늘(天)에다 귀의시킨다. 그리하여 주희는 말한다. ”하늘이 곧 理이다”(天卽理).
理는 인간세상을 초월하는 지존의 존재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하나님(神)’과  플라톤의 ‘이데아’, 헤겔의 ‘절대정신’에 비견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理는 서양의 지존들과는 다른 점이 있으니, 인간의 내면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이 곧 理이다”(性卽理). 이는 理가 서양의 지존들과 달리 ‘초월적(天卽理)이면서 동시에 내재적(性卽理)’인 개념임을 말해 준다.
주자학의 이상은 이러한 理를 세상에 구현하는 것이다. 理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 것이 ‘성인(聖人)’이요, 理의 사회적 표현이 바로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 즉 ‘대동사회(大同社會)’이다. 그러므로 주자학에서 理는 철학의 출발점이며 또한 종결점이다.
그런데 주자학자들간에 이러한 理의 성격을 두고 학설이 갈라진다. 理에 ‘운동성’이 있느냐 없느냐. 퇴계와 율곡이 갈라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며, 퇴계와 고봉 기대승 간의 그 유명한 사단칠정논변도 간접적으로는 理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1. 퇴계는 ‘주자학 최대의 이단’이라는 견해
2. 퇴계 理發說의 딜레마
3. 다른 견해 – 퇴계는 주자학(성리학)의 적통이다
4. 퇴계 理發說의 실천적 의미 – 16세기 역사 속에서
5. 理發의 의미- 판결의 비유

퇴계의 理發說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율곡 이이(1536-1584)이다. 그는 퇴계가 주자에게서 학설의 근거를 끌어온 것에 대해 “만일 주자가 참으로 理氣를 호발(互發)한다고 생각했으면 주자도 잘못된 것이니 어찌 주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율곡계열의 주장인 즉 ‘發’이란 말은 일단 현상적 작용을 의미하는 말인데, 원리적인 형이상자로서의 理가 어떻게 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理는 관념인데 어찌 관념이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理發과 氣發의 차이를 간과한 견해라고 생각된다.
理의 작용은 물리적인 작용이 아니다. 원리적인 작용이다. 그러므로 理의 작용만으로는 우리는 그것을 구체적인 감정으로 드러낼 수 없고 구체적인 행위로 이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理가 움직이면 세상의 질서가 바뀐다. 필자는 이를 법관의 판결에다 비유할 수 있다고 본다.

사법부는 국가 권력 중에서 가장 소극적인 기관이다. 외관상 행정부나 입법부에 비해 거의 움직임이 없다. 즉, “사법부는 입법부와 달리 입법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없다. 단지 입법된 법률이 실제에 적용되어 이해 대립이 생기면 개입할 수 있다. 그것도 직권으로 이해 대립을 법원에 가져와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그 문제를 법원에 가져와야만 다룰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사법부는 예산을 스스로 계상하여 요청할 수도 없다. 입법부의 의결에 따라 사법부의 예산이 결정된다. 또 사법부는 행정부(대통령)와 달리 자신의 의사를 구현하기 위해서 동원할 행정력도 군사력도 없다. 사법부는 어떠한 판결을 내려도 그 판결을 사건 당사자에게 강제할 수 있는 강제력이 없다. 예를 들어 사법부가 어떤 사람에게 벌금형을 내린다고 해도 행정부가 벌금 징수를 않는다면 그 판결은 실질적인 효력을 가질 수가 없다.”

이러한 사법부의 소극성은 “理는 감정도 없고, 헤아리는 것도 없고, 조작하는 힘(creative power)도 없다. 理는 하나의 깨끗하고 텅 빈 넓은 세계이며, 형태도 없고 조작할 줄도 모른다”고 하는 주자학 교과서상의 理 개념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법부의 판결은 한 개인의 운명은 물론 사회통념까지 바꾸어버린다. 판사는 판결로 말할 뿐이지만 그 판결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결문 힘, 이것이 理發의 의미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퇴계의 理發說은 사법철학으로 말하자면 ‘사법적극주의’와 통한다고도 할 수 있다. (理發과 사법적극주의에 대해서는 제4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        
                         .................이상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 미래를 여는 책, 20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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