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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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이관형 2010.09.26 1508
요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유행이지요? 그 책을 읽고 내친 김에 롤즈의 정의론까지 읽었다는, 경제학을 하는 제 친구가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물론 주류경제학을 합니다만) 회원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받은 질문이지만 제가 윤리학쪽에 어두워서 여기에 올립니다. 무수한 댓글 바라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쓰지만 정치적 저의쪽으로 생각하시면 올리지 않으니만 못해집니다. 사신(私信)입니다.


 


 

<존 롤스의 정의론, 쌀시장개방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쌀시장개방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현재 쌀수입은 수량제한되고 있으며 수입할 수 있는 수량이 적기 때문에 사실상 수입이 금지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쌀의 관세화가 제안된 바 있지만 농민단체의 반발로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물론 쌀의 관세화가 이행되더라도 관세율이 높다면 쌀의 수입은 충분히 억제될 수 있다. 하지만 쌀 소비가 오로지 가격에 의해서만 영향받지는 않을 것이므로 관세화는 어느 정도 쌀 수입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수량제한방식은 쌀 수입금지를 위한 가장 극단적인 수단이다.


쌀 시장이 개방되면 이로 인한 후생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소비자잉여가 증가할 것이다. 쌀가격이 국제가격으로 하락하거나 차별화된 품질의 쌀이 수입된다면 이로 인해 소비자의 후생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생산자잉여는 감소할 것이다. 쌀시장개방과 그로 인한 가격하락은 쌀농가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소비자잉여 증가의 크기와 생산자잉여 감소의 크기이다. 경제학은 소비자잉여의 증가가 생산자잉여의 감소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즉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의 합인 총잉여는 증가한다.


생산자잉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잉여가 더 크게 증가하여 총잉여가 증가한다면 쌀시장개방은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소비자잉여의 증가분을 생산자에게로 재분배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방식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진 셈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총잉여증가의 재분배를 통해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되고 생산자에게도 이익이 되는 정책이 실현가능한 목표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총잉여가 증가하기 때문에 쌀시장개방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다분히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총잉여가 증가하되 소비자잉여의 증가분을 생산자에게도 재분배한다면 이 정책은 존 롤즈의 정의론에도 부합한다. “우연한 차이(=쌀시장개방으로 인한 소비자잉여의 증가)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쌀경작농민)의 이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남는 문제는 소비자잉여의 증가분을 생산자에게도 재분배하는 합리적인 방식을 찾는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이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편하다. 이제 그 불편함을 호소할 차례이다.


우리나라의 무연탄산업은 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단히 중요한 에너지산업이었다. 하지만 대체자원인 석유가 워낙 높은 경쟁력을 지녔던 탓에 무연탄은 석유에게 그 지위를 내어 주었고 무연탄산업은 사양산업의 길을 걸었다. 국내에너지산업이 수입으로 인해 해외에너지산업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쌀시장개방 반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는 존 롤즈의 정의론에 따르더라도 잘못된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석유수입으로 인한 소비자잉여 증가분을 무연탄생산업자에게 재분배했어야 하는데 그랬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석유수입정책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무연탄산업과 쌀산업이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입으로 인해 처절한 경쟁에 직면할 운명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게다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산업 모두 사양산업이었다는 점이다. 국내의 쌀생산은 과다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국제가격보다 비싼 가격에 쌀을 수매한다. 그 많은 사양산업 중 왜 유독 쌀산업만은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 LP용 턴테이블을 생산하는 업자는 왜 보호받지 못했고 미용실에 밀린 재래식 이발사들에게는 어떤 보상이 주어졌는가? 쌀산업이 보호받아야 한다면 다른 사양산업들도 보호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산업구조의 변화가 있으니 경제에는 항상 사양산업이 있게 마련이다. 그 반면에 새로이 형성되어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는 산업도 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종류의 산업은 모두 존 롤즈의 임의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성장산업의 이익은 항상 사양산업에게 재분배되어야 하는가? 그래서 사양산업은 포기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해야 하는가? 이 과정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경제에는 재분배로 연명하는 수많은 사양산업과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성장산업이 남게 될 텐데 이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사양산업의 존속으로 자원의 낭비가 있고 이로 인해 성장산업에도 악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시장과 경쟁에 대한 정의론의 적용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적어도 정의론이 쌀산업이나 무연탄산업의 예와 같이 산업정책에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존 롤즈의 주장이 적용될 수 있는 곳은 따로 있는 듯하다. 예컨대 정의론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주제는 소득재분배의 문제이다. 소득재분배에 대한 차등의 원칙은 경제학자들에게도 큰 호소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를 넘어 효율성에 관한 논의에서 정의론이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가는 꽤나 회의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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