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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B 절 주석(1)-시장의 신격화
이병창 2019.09.11 32
정신현상학 정신 장 B 절 주석(1)-시장의 신격화

1) 근대정신 장의 구성

헤겔은 정신 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정신을 다루는 것이 A 절이고, 근대정신(계몽주의, 신앙, 루소 주의)를 다루는 것이 B 절이며, 마지막 C 절은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인데, 칸트 셸링을 다룹니다. 이 C 절을 넘어서면 절대정신으로 이행하죠.

이런 구분 자체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헤겔이 칸트의 순수의지 개념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가입니다. 칸트로부터 근대 내에서 근대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신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직 근대정신 안에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C 절, 절대정신은 메시아를 갈망하는 정신입니다. 이것이 헤겔이 제시하는 정신이죠. 헤겔은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칸트로부터 시작된 근대를 극복하려는 정신이 자기에 와서 비로소 완성됐다는 거죠.

칸트와 헤겔 이야기는 나중에 가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우리는 근대정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2) 이성의 소외와 정신의 소외

첫 구절[264: 10-265:4], 약 한 페이지에 걸쳐 헤겔은 실체와 정신의 차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실체는 이성 장 끝에 도달한 것이고, 정신은 이제 등장하는 근대정신을 말합니다.

이성 장 끝에도 소외라는 개념이 나왔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이제 근대정신에도 다시 소외가 등장합니다. 헤겔은 우선 이 두 가지 소외 개념을 비교합니다.

이성 장에서 헤겔이 다루었던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 가치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인식의 차원에서 전개됐죠. 그래서 이성 장입니다. 여기서 헤겔은 근대 사회를 발견합니다. 이 사회는 시장 교환을 통해 성립하죠. 이 시장은 개인이 익명의 상호 관계를 통해 산출한 것이지만 결국 개인을 지배하는 힘으로 됩니다. 헤겔은 여기서 소외라는 말을 처음 언급했습니다.

“의식은 개별적인 배타적 자아라는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실체는 그런 의식으로부터 배제된 현존이라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의식은 그런 현존과 자기 자신의 소외를 통해 합일해야 했으며, 동시에 그런 실체를 산출해야 했다.”

이성의 단계를 지나서 정신의 단계에 이르면 이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 가치의 문제를 넘어서 그것을 실현하는 힘, 자아가 문제가 됩니다. 이성의 장에서 개인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이 서로 관계 맺는 것이라면 여기서는 개인의 의지 즉 자아와 사회[국가]의 의지 즉 일반적 자아의 관계가 문제 되죠. 헤겔은 이 관계를 로마 정신의 끝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로마 정신은 개체적 자아인 인격과 사회적 자아인 세계의 주인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격이나 세계의 주인[황제]는 형식적으로는 법적으로 인정됩니다. 인격의 내용을 결정하는 힘은 세계의 주인의 의지입니다. 그 앞에서 인격의 자립성은 몰락하죠. 하지만 세계의 주인도 하나의 공허한 인격입니다.

세계의 주인인 황제를 지배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이성의 장에 등장하였던 익명의 상호 관계로서 시장입니다. 과거 이성 장 끝에서 시장은 하나의 실체일 뿐, 맹목적 필연으로서 존재했지요. 이제 시장은 스스로 의지를 지닌 자아 즉 정신으로서 등장합니다. 그 실체를 실현하는 힘, 의지, 정신이 곧 신이죠. 시장의 신격화죠.

3) 시장의 신격화

근대를 뒤흔들었던 종교 개혁, 그들이 신앙했던 신이 곧 시장이었다니, 헤겔이야말로 엄청난 무신론자였다고 하겠습니다. 근대에 들어 사람들은 자신의 기막힌 운명을 한탄했습니다. 그런 운명에 대한 한탄이 개신교의 지반이 되었죠.

개신교란 곧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신의 뜻이고 신의 뜻에 따라 구원과 처벌은 정해지니, 우리의 노력은 아무 소용 없고 오직 신에 대한 믿음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신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인데, 헤겔은 이런 개신교의 지반을 시장으로 봅니다.

시장이 사실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시장이 우리에게 부를 주며, 시장이 사랑하는 남편을 주며, 시장이 우리에게 권력을 부여합니다. 시장은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힘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보이지 않는 손이지요.

이제 헤겔 자신의 표현을 검토해 보죠.

“이 외적인 현실은 ... 자아에 대해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소적 elementarisch 본질일 뿐만 아니라 ..... 자아의 부정적인 노동이다.”

“외적 현실은 자기의식의 고유한 외화 그리고 탈진을 통해서 그 현존을 유지한다. 이런 외화나 타일 존은 자아를 황폐화하는 가운데 자아에게 고삐 풀린 원소의 외적인 힘을 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원소는 그 자체로 보면 자기 자신의 순수한 황폐화이며, 해소이다. 이런 해소, 그 부정적 본질은 자아이다. 자아가 그것의 주체이며, 그 행위이고 그 생성이다.“

“이런 행위와 생성이... 곧 인격의 소외이다. 왜냐하면 소외 없이 직접적으로 즉자 대자적으로 타당한 자아는 실체가 없는 것, 광란하는 원소의 유희이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들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원소 즉 자연적 힘의 광란입니다. 이런 표현은 개인이 자기가 보지 못하는 힘에 사로잡힌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힘이기에 이 힘은 맹목적, 우연이고 따라서 마치 자연 질서에서 작용하는 원소의 운동으로 표현된 것이죠.

또 하나는 부정적 노동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결국 그 힘이 사실은 자신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산물임에도 자기 밖에 존재하는 힘으로 나타나기에 부정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거죠. 그 때문에 부정적 노동은 소외, 외화, 탈진 등으로도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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