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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정신 장 주석 14-로마 정신 인격과 황제
이병창 2019.09.03 31
정신현상학 정신 장 주석(14) 로마 시대 -인격과 황제

1) 그리스 정신에서 로마 정신으로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 정신을 살펴보았습니다. 국가와 가족이란 두 극이 서로 뫼비우스 띠처럼 얽혀 있는 것이 그리스 정신의 본래 모습입니다. 이 두 극은 상호 대립하는 가운데 서로 몰락하면서 로마 시대의 정신으로 이행합니다. 헤겔은 이 이행과정을 A 절 C 항 서두에서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일반적 통일성[국가]은... 정신을 결여한 공동체이다. 이것은 개인의 자기의식이 결여된 실체이기를 중단하고, 여기서... 자아적 존재[Selbstwesen]와 실체로서 성립한다. ...

....

전자[신적 법칙]에서 개체는 .. 가족의 일반적 피로서만 존재했고 타당했다. .. 그러나 이제 그는 비현실성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이전 개인의 공동적 목적에 불과한 국가가 이제 자기를 실행하는 의지 즉 ‘자아적 존재’를 갖추게 되죠. 이 자아적 존재가 곧 황제의 권력, 실행력을 의미합니다. 반면 가족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개인은 과거 ‘죽은 정신’, 또는 ‘일반적 피’의 대행자에 불과했으나 이제 독립적인 개인으로 출현합니다.

2) 로마 시대란?

여기서 시대 규정에 관한 헤겔의 입장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괴리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앞서서 그리스 시대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폴리스 국가로 이해하고 그것은 이미 씨족 사회를 넘어선 존재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헤겔은 그리스 정신은 씨족 사회의 원리와 폴리스 국가의 원리가 서로 두 극을 이루며 대립하는 가운데 균형을 이룬 사회로 규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로마 시대를 그리스 시대의 연장으로 봅니다. 흔히 그리스 로마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헤겔은 로마 시대의 핵심은 로마 제국 시대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면서 이를 폴리스 국가의 특징을 지닌 로마 공화정 시대까지와 구분합니다.

더구나 헤겔은 이런 로마 시대 황제의 권력과 시민의 인격적 자유가 지배하던 시대가 중세 시대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이것 역시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중세가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일반적 이해와 구분되죠. 그래서 헤겔의 경우 로마 시대를 설명하는 A 절 c 항이 끝나면 바로 근대정신 즉 B 절 자기 소외의 정신으로 이행합니다.

3) 인격과 황제

로마 시대정신의 핵심은 인격과 황제가 지닌 한계에 대해서 헤겔은 미리부터 간단하게 언급합니다. 헤겔은 인격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그런 것으로서 [자기를 회신하는 존재로서] 개별 자는 적극적인[긍정적인] 일반적 존재이지만, 그 현실은 부정적인 일반적 자아로 존재한다.”

여기서 ‘적극적인 일반적 존재란’ 가족 성원은 가족 전체를 자연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대신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이해되며, ‘부정적인 일반적 자아’는 인격 개념에 대한 헤겔의 해석으로 보입니다. 인격이란 다만 형식적인 인격에서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이니까요.

또 헤겔은 황제의 권력을 일컬어 ‘그 단순성 속에서 자기반성한 실체’라고 규정합니다. 이 말에서 ‘자기반성’이라는 말이 중요한데, 그 말은 곧 ‘자기의식적 존재의 자아’ 즉 개인적 목적을 실행하는 자아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 말은 곧 설명되겠지만 황제의 자의적 권력을 암시하는 말이죠.

이런 ‘부정적인 일반적 자아’라든가 ‘자기의식적 존재’의 자아라는 말로 암시된, 인격과 황제가 지닌 한계를 보다 상세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것은 이제부터 즉자 대자적인 본질로서 여겨진다. 이 인정된 존재가 그것의 실체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인 일반성이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취약한 자아이며, 실체 속에 해소된 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그리스 정신에서 안티고네나 클레온이 가족이나 국가를 대행하는 ‘일반적 개인’, 즉 그 자연적 규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의식적 개인인 것과 같이, 형식적으로는 보편적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자의적이라는 특징은 로마 시대 개인이나 황제가 모두 갖추고 있는 특징이죠.

3) 스토이시즘과 인격 개념

헤겔은 이런 로마 시대의 황제의 권력과 인격적 개인 사이의 관계를 스토이시즘과 회의주의와 비교합니다. 스토이시즘과 회의주의는 자기의식 장에 출현했습니다. 여기서 자기의식은 일단 개인이 자기의 동일성[삶의 동일성]을 인식하지만 의지에서는 아직 욕망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때 출현합니다. 욕망하는 인간은 자신의 자유[즉 자기 동일성의 실현]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게 되죠. 그 결과 생사의 투쟁이 벌어지면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출현하죠.

노예는 우선 자신의 자유를 단지 사유 속에서만 인정합니다. 즉 그는 그에게 외부적으로 주어진 운명을 사유를 통해 그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죠. 그의 자유는 공허한 사유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이것이 스토이시즘 예죠.

이런 스토이시즘을 넘어 회의주의가 등장합니다. 회의주의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그의 부정은 역시 사유를 통한 것에 지나지 않죠.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이런 회의주의를 통해 전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회의주의는 끝이 없이 부정하고 부정합니다. 그 역시 스토이시즘과 마찬가지로 사유 속에서만 자유를 얻을 뿐입니다.

결국 스토이시즘과 회의주의는 사유 속에서 자유를 얻는 것으로 현실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런 스토이시즘과 회의주의가 이제 이성의 차원에서 전개되면서 로마의 추상적 인격 개념이 출현하죠. 여기서 이성의 차원이란 나와 타자가 상호 관계 속에서 인륜적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뜻입니다.

4) 인격의 개념 규정

다시 헤겔의 설명을 따라가 보기로 하죠. 우선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격은 인륜적 실체의 삶으로부터 벗어난다. 인격은 의식이 현실적으로 타당한 자립성을 얻은 것이다. 비현실적 사상[Gedanke]은 현실을 단념함으로써만 생성되는 것이니, 이는 이전에 스토이시즘 정인 자기의식으로 출현한 적이 있다.”

“법적 상태의 원리[즉 인격]은 현실로부터 도피를 통해서 자립성에 관한 단순한 사상에만 도달한다. 이런 원리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데[Fuer sich] 그 방식은 .... 어떤 현존도 포기하며 그의 본질을 다만 순수한 사유 속의 통일성 속에만 두는 것이다.”

이 말은 스토이시즘이 자유를 사유 속에서 주어진 것을 자기에게 고유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유를 얻듯이 인격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인격이란 다만 선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인격은 자유롭죠[인격의 ‘자립성’]. 이런 인격의 측면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합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그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즉 ‘실체적 삶’에서] 주어질 뿐입니다. 물론 이렇게 주어지는 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차등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에게 무엇이 주어지는 것인가를 그 자신이 선택할 수는 없지요. 이런 내용의 측면은 전적으로 외부에서 결정됩니다.

헤겔은 이런 점에서 인격이 스토이시즘과 동일하다 합니다. 다만 스토이시즘에서 주어지는 운명은 아직 자연적인 것입니다. 반면 인격에서 주어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요.

5) 인격의 추상성

마치 스토이시즘이 회의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듯이, 인격적 자유는 또한 회의주의와 비교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격적 자유는 모든 현존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토이시즘의 추상적 자립성은.. .. 아무런 형체도 얻지 못한 채 하나의 우연한 존재와 사상에서 다른 존재와 사상으로 헤매고 다닌다. ..... 마찬가지로 법적인 인격의 자립성은 동일한 일반적 혼란이며 상호적 해소이다.“

헤겔은 인격의 ‘순수하고 공허한 일자성’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실체이며, 즉 개인의 상호 관계이며 이것은 개인에게 우연한 현존과 비본질적인 운동과 활동을 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는 이런 것들을 자신의 본질로 여기지 않고 부정하게 되죠. 이런 점에서 인격 역시 세상에 대해서 회의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죠.

“일정한 현실은 회의주의에서는 .... 부정적 가치를 갖듯이 법에서는 긍정적 가치를 갖는다. 부정적 가치의 측면은 현실이 사유에서의 자아, 즉자적인 보편자의 자아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데 있으며 긍정적 가치는 그것이 범주 또는 인정되고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데 있다.”

여기서 긍정적 가치란 곧 나의 소유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고 부정적이란 그 소유가 나에게 주어질 때 나는 사유 속에서만 자유로운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법의 의식[인격]은 현실적으로 인정받을 때 오히려 자기의 실재성을 상실하며, 완전한 비본질적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어떤 개인을 인격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경멸의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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