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자유게시판
생명복제와 인권
최종덕 2004.03.26 4060

생명복제기술에 브레이크 걸기

  얼마 전 국내에서 인간 난자를 이용한 체세포 복제가 성공했다는 뉴스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생명복제의 가능성이 실생활에 매우 근접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정부 및 일부 단체에서는 해당 과학자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해야 한다는 흐름까지 있는 걸 보면 대단한 민족주의의 그늘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이번 배아세포 복제 성공은 임신 가능한 여성으로부터 수집된 난자의 핵을 제거하여 동일인의 체세포 유전자 군을 난자 안에 넣고 전기 쇼크를 통하여 인공 수정시킨 뒤 실험자가 원하는 장기 기관을 배양시킨다는 프로그램 수행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치료용 이식 장기를 자신의 세포를 증식하여 만들 수 있고, 따라서 면역 거부반응을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다는 대단한 과학적 기획이다.
  
   문제는 이러한 치료용 체세포 복제기술이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듯이 개체 생명체를 복제하는 기술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이다. 정확히 말해서 기술적 차이만 있을 뿐 원리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심각한 생명윤리 문제가 뒤따른다. 생명윤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명을 정의하는 시점을 어디서부터 정할 것인가의 논의이다. 예를 들어 수정 직후부터, 혹은 장기기관을 형성하는 원시선 발생 시점부터 혹은 잉태하는 순간부터인지의 문제이다. 둘째는 난자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복제인가 아니면 윤리적 격론이 덜한 어른의 체세포에서 떼어 낸 성체줄기세포만의 복제를 허용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셋째는 왜 인문사회학자들이 윤리의 문제를 들고 나와 실험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방해해서 되겠느냐는 문제다. 넷째는 생명 복제기술 및 복제결과가 상업적으로 도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은 이미 여러 지면에서 수차례 다루어져 왔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려 한다. 과학연구의 중립성이라는 구호 때문에 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말이다. 이번 한국인이 이루어낸 체세포 복제 기술은 세계의 생명공학자들이 경탄한 사실이지만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경탄한 또 하나의 사실이 있는데, 그 점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즉 하나의 줄기세포 복제를 성공시키기 위해 인간의 난자 242개를 수집했었다는 실험적 여건이 그것이다. 이번 실험에 사용한 난자는 불임 환자 치료를 하고 남은 잉여 냉동난자가 아니라, 여성의 자궁에서 직접 끌어 낸 생체 난자였다. 여성은 일생 동안 400개 미만의 난자를 탄생시키는데, 여성의 난자를 인공적으로 자궁에서 끌어내는 일은 매우 심각한 인권 유린에 해당한다. 그것도 16명의 여성에게서 인공 성장시킨 난자를 채취했다는 점은 과학연구라는 명분을 들이대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해당 연구자는 여성 자원자로부터 난자를 채취했다고 발표했지만, 외국의 실험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실험 여건들이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수행된다는 점이 더 놀라울 뿐이다. 생명복제의 생명윤리 문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대한 한국인의 젓가락 사용이 오늘의 기술을 낳게 했다는 식의 매스컴의 화려한 선전 덕분에 여성 인권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탄생할 때는 전 세계의 수많은 매스컴에 의해 엄청난 각광을 받더니 과노화 현상으로 죽을 때는 겨우 한두 줄의 기사로 처리되고 말았던 돌리 복제 양도 277개의 난자를 파괴한 끝에 탄생한 생명체이다. 돌리 양의 체세포는 유선세포를 이용했는데, 바로 그 때문에 당시 젖가슴이 예쁘다고 해서 서구인이 선호하던 대중가수 돌리 패튼을 따서 양의 이름을 만들었다는 것 또한 남성중심적 태도가 은근히 배어 있었다. 또한 2001년 미국 국립보권원은 금전적 관계가 없는 배아에 대해서만 정식등록을 받아 준다고 했지만 벌써 세계적으로 복제기술 특허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상업적 거래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과학만능주의의 대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 슬프다. 치료 목적 복제기술은 생식목적 복제기술로 막 바로 연결되는 브레이크 없는 경사길에 놓여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 같은 인문학자라도 생명복제 기술 진행에 브레이크를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최소한의 브레이크조차 최근의 이공계 위기 상황이라는 사회적 여건과 연결시키려는 오도된 주장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조차 못하고 있다.  <끝>
  
0 개의 댓글
(댓글을 남기시려면 사이트에 로그인 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