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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근대정신 장 B절 주석(22)-반역과 오만
이병창 2019.10.21 30
정신현상학 근대정신 장 B 절 주석(22)-반역과 오만

1) 감사하는 마음

앞에서 국가에 대한 고귀한 의식의 관계가 어떻게 전락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고귀한 의식은 처음 보편적 실체인 국가에 봉사해서 ‘일반적 선’이 실행되도록 했으나, 명예욕을 통해 여전히 자신의 자아를 남겨놓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아첨하는 신하로 떨어지고 반대로 보편적인 의지를 가진 군주가 등장합니다.

아첨하는 신하는 군주를 이용해 국가를 자기의 부를 증식하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되면 절대 권력자로서 군주는 ‘공허한 이름’에 불과하게 되지요. 여기까지가 앞에서 설명했던 내용입니다. 이제 부를 증식하려는 신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군주를 통해 신하가 부를 증식하면서 군주는 일반적인 자선가[Wohltaeter: 신하를 먹여살리는 자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신하의 자아는 과거 일반적 선을 위해 봉사하던 자에서 전락하여 이제 개별적 부를 추구하는 자로 되죠. 그는 자기가 얻은 부 때문에 국가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일반적 권력을 통해 확충되면서 자기의식[군주]은 일반적 자선 행위로 존재하거나 또는 그런 일반적 자선 행위란 곧 부이다.”

“고귀한 의식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전락한 일반자[부]에서 자신의 대자 존재를 획득하고 따라서 부를 인정하고 자선의 행위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2) 신하와 군주의 대결

여기서 자선 행위자로서 군주와 부를 얻으려는 신하 사이에 대립과 갈등은 심화됩니다. 왜냐하면 부는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를 둘러싸고 한편에는 주는 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받는 자가 있죠.

“이제 국가권력은 의지를 통해 자기에 집착하며 향락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는 의지에 대항한다.”

그런데 부라는 물질적 존재는 곧 사라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부는 그 자체가 무적인 것이고, 이런 부를 추구하는 자들은 이런 스스로 사라지는 부 때문에 오히려 그 자신을 상실하게 됩니다.

“일면적 대자 존재[부]는 .... 향락 속에서 본질을 결여한 것이기에 개인[신하]을 자기 내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부의 추구는 결국 한순간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항상 부는 이리저리 유동하면서 한때는 권세를 휘둘렀으나 권불십년이라 반역자로 처벌되어 재산을 몰수당합니다. 그런 가운데 모든 신하들은 자기를 상실하고 말죠. 이런 자기 상실을 헤겔은 ‘개인의 자기 내 복귀의 운동’으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상실된 자아는 더 높은 자아로 다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운동을 살펴보기로 하죠.

3) 비열한 의식

고귀한 의식이 부를 자기와 동일시하게 될 때 이 부는 그가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 부는 어디까지나 자선 행위자인 군주로부터 얻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군주가 하시라도 그에게서 빼앗아갈 수 있는 것으로 그에게 나타납니다. 그 결과 이 부에서 고귀한 의식은 오히려 비동일성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고귀한 의식은 비열한 의식으로 전락하게 되죠.

“고귀한 의식은 자아[Seilbst]가 타인의 의지의 폭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며, 따라서 이 타인의 의지가 그에게 그런 자아를 양도해 줄지는 오직 이 타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고귀한 의식은 어떤 경우에도 그의 자아가 인정되기를 기대하지만 실상 그의 자아는 타인에 속하기 때문에 게다가 “어떤 인격과 순간의 우연, 자의, 무차별한 상황”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의 상실에 이르게 됩니다.

헤겔은 여기서 이런 자기 상실을 법적 상태와 비교합니다. 법적 상태에서 인격이라는 형식 자체는 인정됩니다. 다만 그 내용만 현실의 우연적 변화에 속하게 되죠. 하지만 여기서는 그의 인격이 의존하는 물건[즉 부]이 타인의 인격에 의존하므로 그의 인격 자체가 상실되기에 이릅니다. 한마디로 그는 왕 앞에서 노예적으로 굴종하는 신하가 되죠.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그는 그에게 자선을 베푸는 군주에 감사해 왔으나 이제부터 그는 자신의 처지에 격분하기에 이릅니다.

“감사의 정신은 따라서 가장 심각한 내버려짐[Verworfenheit]의 감정, 가장 심원한 격분이 된다.”

여기서 격분이란 독일어 Emporung의 번역인데 이 말이 곧 반역도 의미합니다. 군주의 은총이 사라지면 신하는 반역을 꾀합니다. 격분은 그런 반역을 일으키는 감정이라 할 수 있겠죠. 헤겔은 이런 격분, 반역 개념을 이용해서 앞에서 설명한 아르 메니 오스라는 연극에서 신하인 미하엘이 반역을 일으키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4) 절대 군주

그런데 비열한 의식이 느끼는 이런 격분은 오히려 그의 대자 존재를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격분은 그의 개인적 행복[대자 존재]이 파괴된 것에 대한 격분이니까요. 적어도 그의 개인적 행복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헤겔은 반역하는 신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나 자아로서 이 비열한 의식은 이런 모순을 직접적으로 넘어서며, 그에게 그의 대자 존재가 낯선 것으로 된다는 이런 내버려짐을 다시 내버리고, 그의 자아를 [타인으로부터] 수용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 격분하고, 이런 수용성 속에서 주도적[Fuer sich]으로 된다”

신하의 격분에 대해 이제 자선을 행위 하는 군주는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까요? 앞에서 군주는 아첨하는 신하 앞에서 다만 이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군주는 이제 격분하는 신하 앞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와 지배하는 힘을 획득하게 되죠. 더구나 이런 군주는 개별적 신하에 대립하는 개별적 군주가 아니라 모든 개별적 신하에 대립하는 보편적 존재가 됩니다. 다시 말해 신하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죠.

“그는 [군주] 본질을 상실한 대자 존재, 희생된 본질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의] 전달을 통해 그는 즉자로 된다. 그는 .... 다만 자기만 향락한다는 개별성을 지양하고 지양된 개별성으로서 일반성 본질이 된다.”

“그는... 자아를 지배하는 힘이며, 자신을 독립적이고 자의적인 존재로 알며, 그가 지출하는 것은 타인의 자아라는 사실을 안다.”

5) 군주의 오만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진짜로 절대 군주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자아를 버리지 못합니다. 타인의 자아 모두를 지배하는 자아로서 그는 오만에 빠지죠. 그의 자아에 지배되는 신하는 그의 변덕스러운 자의에 종속하면서 자신을 상실하게 됩니다. 여기서 절대 군주의 오만이 등장하죠.

“부[절대군주의 부]는 신하들과 버림받음을 공유하지만 격분 대신 오만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그는 신하와 마찬가지로 대자 존재를 우연적인 사물로 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이런 우연성이며, 인격은 이런 우연의 폭력 아래 존재한다.”

절대군주와 신하는 각각 대자 존재이지만, 전자는 자의적인 지배자이고 후자는 그 자의에 종속하는 자입니다. 그 때문에 전자에게는 오만이 후자에게는 격분이 일어납니다.

그에 반해 격분하는 신하에게서 그는 자아, 개별성, 대자 존재를 상실하면서 이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그는 이를 통해 절대군주의 자의 자체를 벗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국가에 대해 비동일성을 느끼는 비열한 의식은 다시 부 자체,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비동일성을 느끼는 철저한 비열한 의식이 됩니다.

“타인의 자아 자체를 한 끼의 식사를 주고 획득하는 오만 속에 그 자신은 이런 복종을 신하의 가장 내적인 본질을 통해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 타인의 내적인 격분을 간과한다. 신하에게서 대자 존재의 자기 동일성이 단적으로 비동일적으로 되고 모든 동일한 것 모든 존립하는 것이 상실되는 가운데, 그[군주]는 [신하가] 이 사슬, 이 순수한 상실을 완전히 내던진다는 것을 간과한다.”

신하가 이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되면서 절대 군주 또한 변화하게 됩니다.

“그는 이런 가장 내적인 심연 앞에서 이 바닥 모를 깊이 앞에서 직접 서 있다. 여기서 모든 지주와 실체가 소멸한다. 그는 이런 심연 속에서 비천한 사물, 그의 변덕이 전개하는 유희, 그의 자의가 보여주는 우연을 볼 뿐이다.”

그 결과는 모두의 몰락, 교양 세계의 몰락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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