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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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심사가 틀어지는 밤
이병창 2013.12.17 360
나의 관상론



나는 본시 관상을 믿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작가 김갑수 선생님은 사람의 관상이 중요하다면서 여러 일화를 들려주는데, 그때마다 정말 용하다 하고 감탄했다. 그래도 난 관상을 믿지 않는다. 천길 물길보다 더 깊다는 사람의 마음을 어찌 관상 하나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관상을 정말 믿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사람이 둘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바로 장성택과 유시민이다. 장성택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올해 초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잠시 착각했었다. 그래서 북한의 진짜 지도자는 장성택이란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TV에 나오는 장성택이란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언가 마음속으로 꺼려지는 바가 있었다. 그의 관상이 한마디로 너무 느끼했던 것이다. 왜 그런 느낌을 주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받고 나는 스스로 너무 놀랐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는지?



나는 나의 관상이 틀리기를 바랬다. 하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장성택에 대한 북한의 판결문을 보니 내 관상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가 지도자이었다는 나의 판단은 잘못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말한다. 난 그의 구체적 죄목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그게 사실인지 아닌 지도 잘 모르지만 그는 북한에 살기에는 너무 느끼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난 북한의 내정에 관해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한다. 나는 평소에 북한에 관해서는 우리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관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대국 중국과 소련 미국과 일본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는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같은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북한도 우리와 동일한 처지이니까)이며, 아마도 북한 역시 기꺼이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와 더불어 가려 할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가능한 한 북한을 이용하자. 그게 나의 민족관이다.



그러니 북한이 장성택을 처형하든 말든 나로서는 관심이 없다. 사실 내가 장성택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한 사람 유시민 때문이다.



또 한 사람 유시민은 내가 대학원 재학 시절에 80년대 초에 학교에서 우연히 보았다. 나와 그는 같은 학교에 다녔다. 물론 나는 늦깍이 대학원생이었고 그는 당시 학부 학생으로서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했었다. 나는 그의 인상을 보고 놀랐는데, 교활한 원숭이 상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마도 유시민처럼 생긴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뒤 나는 그를 잊어 버렸다. 오늘까지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나는 그에 대한 관상 때문에 그가 제안하는 모든 정치적 운동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나는 노빠이었지만 유시민 쪽은 건너가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정체는 몇 십 년이 지나 작년 통합 진보당 사건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언론을 이용하는 교묘한 솜씨는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나도 관상을 볼 능력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언론을 살펴보니 그런 유시민이 장성택과 이석기가 닮았다고 했다. 둘 다 공포 정치의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유시민의 말을 보고는 처음에는 그가 이석기 의원이 정권의 희생양이 되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하고 있기에 그런 발언을 하는 줄 착각했었다. 그래서 아니, 유시민이 어쩌자고 저런 말을 했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의 말은 기분이 나쁜 말이었다. 장성택과 이석기, 두 사람이 비교되기에는 두 사람의 관상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석기 의원을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의 사진을 통해 보건대 그는 정말 맑은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거의 아이들의 웃음과 같았다. 나의 관상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적어도 느끼한 장성택과는 너무 다른 얼굴을 가졌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시민의 의도는 박근혜의 공포정치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고 나 역시 그 점에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런데 그렇게 옳은 유시민의 말이 나는 왜 이렇게 기분 나쁜가?



하지만 비유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아무리 비유를 해도 이석기 의원을 장성택에 비유할 수 있는가? 박근혜가 공포정치라는 말은 옳은 말인데 잘못된 비유를 하니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내가 아직도 덕이 부족한 때문일까? 괜히 심사가 틀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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