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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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기억-통합진보당의 사태
이병창 2013.01.06 362
마케팅에 관해 나는 잘 모르지만 포지션이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일종의 마케팅이라 본다면 제일 중요한 것이 포지션일 것이다. 포지션이란 상대적이다. 객관적 본질에 있어서 중도라는 입장은 없다. 타자와 비교하여 내가 중도가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만 본다면 안철수, 문재인, 이정희의 관계 속에서 문재인은 중도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체를 놓고 본다면 (이명박)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이정희)의 관계에서 문재인은 좌파가 되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승리의 자리는 안철수의 자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안철수라는 자리이지, 어떤 개인 안철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선에서 문재인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안철수라는 자리에 문재인이 들어서야 했다. 문재인이 중도가 되려면 이정희가 대선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중요 후보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문재인은 안철수 옆에 섰고 이정희는 통합진보당 사태로 의미있는 후보가 되지는 못했으니 문재인의 패배란 삼척동자도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포지션의 원리를 선거기획에서 날고 긴다는 민주당 및 친노의 전략가 정치구단들이 몰랐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도 모른 사이에 이정희가 들어설 자리에 들어섰고 그 결과 안철수를 불러냈고, 결국 안철수 왼쪽에 서게 되었으니, 우리가 통탄해야 할 일은 바로 이 포지션의 실패에 있다고 하겠다.



안철수가 스스로 나왔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대학교수로 머무르려고 했고 그를 불러낸 것은 문재인과 친노였다. 개인적인 의도가 아니라 구조상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길게 말해온 이야기가 바로 그 구조적인 원인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민주당이 좌 클릭을 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토대에서 중간층과 민중세력 사이에 틈이 벌어 질대로 벌어졌는데, 민주당이 좌클릭하니 중도의 자리가 더욱 크게 비게 된다. 비 빈 중도의 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안철수였다.



그러면 민주당이 좌 클릭을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이 일으킨 바람 때문이었다. 그 바람은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중도였던 민주당이 지닌 한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즉 민주당 지지표가 통합진보당 지지로 이동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친노는 이 바람을 국민 전체의 좌경화로 이해하면서 드디어 자신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선거 이후 민주당에서 친노가 전면적으로 등장하여 좌 클릭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이미 통합진보당이 들어섰으니 민주당이 좌 클릭하려면 통합 진보당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런데 민주당의 친노에게 기회가 나타났다. 통합진보당에 내분이 발생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누가 파괴했는가? 모든 범죄에 대하여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은 자를 최우선적으로 범죄의 용의자로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건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으로 이익을 누가 얻었는지를 보라고 한다. 이런 합리적 판단에 따르자면, 통합진보당을 파괴한 최우선적인 용의자는 틀림없이 보수 우익이다.



박근혜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도의 자리로 밀고 들어와야 한다. 이명박이 선거에서 승리한 것도 그가 중도의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박근혜, 이미 보수의 지지를 굳혀 놓은 박근혜는 이번에 중도의 자리로 밀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당을 아무리 빨간색으로 치장하고 이름을 바꾸더라도 그 자리는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민주당을 밀어내지 않으면 그 자리에 들어설 수가 없다. 그래서 민주당이 좌 클릭할 수 있도록 해야 했던 것이다. 그 함정을 파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통합진보당을 좌파의 자리에서 몰아내야 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파괴하기 위해 조중동이라는 여론매체가 얼마나 광분했는가를 생각해 보라. 국가적 의례도 아닌 당내 집회에서 애국가를 안 부르는 것이 그렇게 문제인가? 경선부정의 빌미가 된 조직투표란 통합진보당의 구조로 본다면 불가피하고 차라리 긍정적인 것이 아니냐?



하기야 정치란 부자간에도 칼을 겨누는 것이니, 통합진보당이야 적과 싸워 힘이 안되는 것이니 원통하지만 이를 갈따름이다. 당을 파괴한 유시민이야 적의 간교한 술책에 놀아났으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소위 동지라는 관계에 있었던 친노가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조중동과 같은 대열에 섰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일이다. 진중권, 조국 공지영 등 친노 지식인의 당시 행태를 보라. 박지원, 이해찬 등의 친노 정치인의 발언을 보라.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등 친노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를 보라. 그게 동지가 동지에게 할 말이었던가? 적어도 침묵만이라도 지키면서 통합진보당이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없었던 것인가?



어떻든 좋다. 정치란 비정한 것이니, 그러나 동지를 쳐서 친노가 얻은 것이 무엇이었던가? 결국 스스로 적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일이다.



친노는 나의 친구들이었고 앞으로도 나의 친구들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시대착오적인 전략을 취했지만 그들은 탁월하고 양심적이며 젊었으니 다시 정치적으로 재기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곧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고 멀지 않아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하자. 자신의 자멸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의 표시로서 동지인 통합진보당에 범한 잘못은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친노 역시 이번에 범한 어리석음에 대해 용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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