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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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눈물
이병창 2013.01.08 340
포지션으로 본다면 안철수의 자리가 승리의 자리였다. 실제로 대선 기간 내내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가 단일후보가 된다면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안철수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단일화 경선 규칙으로 안철수가 주장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길 수 있는 후보로 단일화하자는 것이다. 경선 규칙이란 거기에 짜 맞추어 제안되었다. 그런데 안철수의 제안은 친노에 의해 거부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규칙으로는 공정한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갑자기 여론상 안철수는 불공정 메이커가 되어 버렸다. 그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고, 결국 그는 자진 사퇴를 택했다.



문재인이 후보가 된 것은 공정한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가 후보가 된다면 패배한다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거의 오차 없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렇다면 공정성이란 것과 승리의 기준이 어떻게 이렇게 배치될 수 있는가? 공정성과 승리의 기준이 대립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철학적인 논의로 끌고 나갈 수도 있다. 공정성은 절차의 문제이다. 승리란 결과를 문제 삼는다. 전자는 절차적 정의론자의 주장이다. 후자는 결과적 정의론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진지한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대체로 전자가 옹호되는 경우도 있고 후자가 옹호되는 경우도 있다는 식으로 절충해 놓기로 하자. 목적의 선택이 문제라면 전자가 옹호된다. 반면 수단의 선택이 문제가 되면 후자가 옹호될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안철수와 문재인 두 사람 중에서 대통령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면 절차적 공정성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선택은 최종적인 목적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단일화 경선의 경우는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선택해야 박근혜라는 상대와 싸워 이길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을 선택하는 문제이며, 이런 수단의 선택은 합목적성에 비추어 선택되어야 마땅하다. 공정성이란 여기서 합목적성에 종속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나의 철학적인 판단으로 볼 때 승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안철수의 주장이 오히려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나의 철학적 판단을 믿지는 않더라도 안철수의 주장이 적어도 그렇게 불합리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철수의 주장에 대해서 지식인과 언론은 객관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문제는 그 당시 그 어떤 지식인들도, 그리고 그 어떤 진보 언론도 객관적인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을 장식하던 친노 평론가들 예를 들어 진중권, 조국 등은 안철수에 대한 공격에 앞장섰다. 친노에 의해 장악된 진보 언론들은 연일 안철수의 제안의 불공정성만을 과장하여 보도하였다. 이런 분위기는 어떤 지식인도 감히 안철수를 옹호하려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압박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된 논의도 없이 여론은 악화되었고 안철수는 사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퇴를 발표하는 그의 눈에 나는 분노의 눈물을 보았다. 그러나 분노를 참는 그의 얼굴은 긴장되었지만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미 대선은 패배했다고. 나중에 그가 분노를 다스리고 다시 문재인 후보를 위해 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의 엄청난 인간적 도량을 보았다. 나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그때 또 다시 통합진보당을 매장하려 했던 마녀사냥이 떠올랐다. 통합진보당을 부정선거의 당으로, 종북의 당으로 몰아가던 그 무시무시하던 마녀사냥이 다시 한 번 안철수를 향하여 쏟아지는 것이 아니냐? 이번에는 불공정 메이커라는 마녀사냥이다. 나는 또다시 쏟아지는 그런 마녀사냥적인 여론에 대해 분노했다. 정말 친노가 이렇게 권력화 되었는가?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감히 나설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통합진보당 사태에서는 감히 여론에 저항하고자 했다. 내가 통합진보당 평당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번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이정희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놓고보니 정말 부끄럽다. 사실 나역시 마녀사냥식 여론을 두려워했었던 것 같다.



대선에서 패배한 지금 다시 한 번 묻는다. 친노 지식인들과 친노 언론인들이 당시 과연 공정한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었던가? 친노가 이미 더 이상 합리적 여론 형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권력화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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