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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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만주기행9-길림에서
이병창 2013.07.25 294
아침 8시, 버스는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렸다. 벌써 나흘 째, 사람들은 피곤도 모르나 보다. 우리는 길림으로 떠났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를 한다. 상항(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왠지 꽃을 꽃고 싶고, 길림에 가면 왠지 길할 것 같아. 만주사를 연구하시는 역사가 한분이 대뜸 이렇게 말한다. 길림은 아마 계림과 어원이 같을 거예요. 맞나? 나는 왠지 그 분의 추측이 맞을 것 같다. 길림에 가면 무언가 신성한 것이 있겠지.



연변에서 길림까지 약 4시간 점심시간에 못 미쳐 우리는 길림에 도착했다. 만주의 어느 도시도 그렇듯이 도시 한 가운데는 큰 강이 흐른다. 이 강의 이름은 무엇일까? 송하강이란다. 아, 송하강이라면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강이 아닌가? 고구려의 시조인 해모수와 유하부인과 주몽이 꿈을 키우던 곳, 우리도 흘러서 마침내 고구려의 꿈속으로 들어왔구나.



그런데 길림은 계림이지, 길한 곳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가 첫 번째 목표로 했던 곳은 길림 육문중학교였다. 이 학교는 김일성이 다녔다는 중학교이다. 여기서 그는 30년 초 반일 학생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다고 한다. 이 학교에는 김일성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무턱대고 찾아왔다. 하지만 교문 앞에 내려 물어보니, 기념관은 한국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기념관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나? 이 무슨 대접인가? 우리가 뭐, 뉴라이트도 아니고 반공 목사도 아니고 소위 반북 좌파도 아닌데, 그저 학자인데, 그런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 슬펐다. 하지만 어쩌랴? 중국 공안의 결정인데. 어쩌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우리는 돌아서기로 했다. 우리는 과거 길림육문중학교의 유적으로 보이는 건물을 밖에서 우왕좌왕하면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다음 목표지로 이동했다.



다음 목표지는 손정도 목사가 목회활동을 했다는 교회를 찾는 것이었다.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속하는 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우리의 용맹한 조선족 가이드가 나섰다. 그녀는 전사들이 머리에 끈을 묶듯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약간 불룩한 배에 묶고는 뛰쳐나갔다. 그녀가 공략하는 대상은 택시 기사인 모양이다. 몇 차례 실패 끝에 뭔가 감을 잡은 모양이다. 택시를 타더니 버스를 보고 따라오라 한다.



그러나 택시 기사가 안내한 곳은 기독교 교회인데 상당히 크게 보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구수회의 결과 ‘이 산은 그 산이 아니라’ 한다. 다시 조선족 가이드가 나섰다. 이번에는 이 교회 한 목사가 공략목표이었다. 그 목사의 이야기로 자기 교회 산하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아마 그것일지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승리의 여신인양, 조선족 가이드를 앞세우고 그쪽으로 갔다.



그쪽은 시내 한가운데였다. 아마 옛날에는 우리나라 마장동처럼 우시장이 있었던 곳인 모양이다. 거리의 건물 모두 소 우자가 들어가는 간판을 쓰고 있다. 우리 역사학자 한 사람이 말했다. 맞아 그때 손정도 목사가 우시장 근처에서 목회를 했다고 했어.



그런데 손정도 목사가 누구인가 궁금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아주 작은 지식이다. 이 목사는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 목사와 같이 활동했다고 한다. 일제 말에는 신민회 활동을 했고, 만주로 이주해서는 항일 목사였다. 그는 국민부에서 좌파를 수용하는 개혁파였다고 한다. 그런 결과 김일성은 손정도 목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의 아이들과는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그 중의 한분이 해방이후 남한에서 해군제독을 지내신 손원일 제독이라 한다.



우리는 기독교와 항일운동의 상관관계에서 손정도 목사의 역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손정도 목사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그 집터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다만 그가 목회했던 교회는 남아있다고 해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의 승리의 여신, 조선족 가이드가 우리 모두에게 하차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차라리 걸어서 찾는 게 낫겠다고 말한다. 우선 나부터 투덜거렸다. 뭐 이 넓은 길림 거리에서 걸어서 찾아보라는 말인가? 승리의 여신이 내 말을 듣더니 왕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명령조이다. 교수님, 내리세요.



그녀를 따라 우리는 길림의 중심지를 우왕좌왕했지만 전진한 것은 맞다. 마침내 우리는 손정도 목사의 그 작은 교회를 찾아냈으니 말이다. 정말 코딱지만한 교회이다. 우리는 두 손으로 승리를 만끽했다. 승리의 여신, 조선족 여성 전사, 우리 가이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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