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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헤겔로 6, 9월 16일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의 표현이라는 법칙
이병창 2015.09.18 83
다시 헤겔로 6, 9월 16일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의 표현이라는 법칙

1)유기체, 생명 개념의 발견
이성은 세계를 방랑하면서 자립적인 존재(Selbstwesen)를 찾으려 하죠. 자체적인 존재란 마치 각 개인이 자립적인 자기의식(Selbstbewusstsein)이듯 사물 가운데서도 그런 자립성을 갖춘 존재를 말합니다.

앞의 주석에서 보았듯이 이성은 감각에서 지각으로 그리고 오성에 이르는 과정을 다시 한 번 되풀이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것이 ‘유기체 das Organische이라는 존재이죠. 이런 유기체는 이미 오성의 마지막 그리고 자기의식 장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존재 즉 생명Das Leben입니다. 이 생명은 개념적으로는 ’타자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는 존재’이며, 헤겔은 이런 개념적 규정이 구체적으로 생명체의 신진대사나 종의 재생산 과정에서 발견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생명의 개념 속에서 이성은 자립적인 존재의 단서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이성이 처음부터 이렇게 생명의 고유한 특성 즉 자기 보존의 특징을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이성은 유기체에 관해서도 다른 비유기체적 자연과 마찬가지로 감각, 지각, 오성의 단계로 관찰합니다. 일단 감각, 지각을 지나서 오성에 이르면 이성은 유기체에 관한 일정한 법칙을 발견하려 하죠. 이때 이성은 우선 유기체를 환경에 의존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소위 ‘환경결정론’이라는 법칙이죠.

이런 법칙에서 환경은 일반적인 토대가 됩니다. 이런 환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헤겔은 그 예로서 물, 공기, 지질Erde, 지대(Zone; 기후적인 차이를 기준으로) 등을 거론합니다. 유기체는 이런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규정성을 갖지요. 이 규정성이 유기체의 종적 본질이라는 겁니다. 환경과 유기체의 본질 사이에 관계에서 그 각각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외적으로 관계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관계가 우연한 것은 아닙니다. 환경은 유기체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니까요.

“여기에 법칙이 현현한다. 이 법칙은 토대가 유기체의 형성에 대해 관계하는 것이므로, 유기체는 그런 토대적인 존재를 한편으로는 자기에 대립해서 자기 너머에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유기체적으로 반영한다.”(145쪽)

그 결과 세계 어디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유기체 형성의 법칙이 생겨나죠. 그 법칙은 이런 겁니다. “공기 속에서 사는 동물은 새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물속에서 사는 동물은 어류와 같은 속성을 지니며, 북쪽에 사는 동물은 털로 덮여 있는 속성을 지닌다”(145쪽)는 등의 법칙이죠.

이런 법칙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 자신이 잘 알기에 그런 사람도 그 법칙을 엄격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그저 “강한 영향을 미친다(grossen Einfluss)”는 정도로 표현할 뿐이라고 헤겔은 말합니다.

이런 환경결정론은 오늘날 생물학에서는 진화론으로 재발견됩니다. 진화론은 생존경쟁을 통해 환경에 맞는 고유한 유전자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죠. 심지어 이런 이론이 발전해서 유사이는 사랑의 유전자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늘어갑니다. 크로포트킨 이래로 무정부주의자들, 심지어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이런 이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론의 결정적 약점은 헤겔이 말했듯이 환경과 그 유전자 사이의 필연적 연관을 밝히기 힘들다는 겁니다.

2)외적인 목적론
환경과 유기체의 본질 사이에 엄격한 법칙적 관계가 발견되기 어려우므로, 대개 이런 법칙은 목적론적인 관계로 표현됩니다. 헤겔은 유기체와 관련하여 외적 목적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런 예를 들기는 어렵지 않겠죠. 자주 우리는 새는 하늘이 우리에게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진 존재이고, 징그러운 짐승은 신의 징벌을 위한 도구로서 간주하죠.

이를 우리는 ‘외적 목적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헤겔은 이런 외적인 목적론을 “필연성 넘어 제멋대로 나돌아 다니는ueber ihr sich ueber sich bewegt" 사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유기체의 자기 유지라는 개념이 목적 개념(내적 목적)인 한에서 이런 외적 목적론은 환경결정론에 비해 유기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한층 다가선 것은 사실입니다.

이성은 이런 환경결정론과 외적 목적론을 넘어서 유기체 자체 속에 자기의 고유한 목적을 찾으려는 데로 나갑니다. 이런 목적 개념을 헤겔은 ‘실재적 목적’이라 합니다. 그것은 “타자와 관계하여 자기를 유지하는 것” 간단히 말해서 자기보존을 말하죠.

이런 ‘자기 목적’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원인’과 ‘결과’, ‘능동’과 ‘수동’이라는 반성적인 개념들이 하나로 통일되죠. 그와 더불어 ‘시초’와 ‘결과’라는 반성 개념도 통일됩니다. 자기 목적이란 곧 원인이면서 결과이고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이며, 시초이며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기체의 개념이 헤겔이 이미 오성의 단계 끝에서 발견한 생명의 개념과 같은 것입니다.


3)동물의 본능적인 목적 수행
그런데 헤겔은 이런 자기 목적이라는 개념 속에서 이성은 무엇인가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기가 발견한 것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는 못한다”(sich aber in seinem Funde nicht erkennt) 고 합니다.

자기 목적 개념에서 어떤 외면적인 것은 ‘눈에 보이는 것(was es ist)과 실제로 그것이 추구하는 결과(was es sucht)는 서로 다른 것이 됩니다. 어떤 것이 무엇인가는 최종적인 결과를 보아야만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결과는 어떤 것이 이미 내재하고 있던 목적의 실현에 불과합니다. 내재하는 목적이란 감추어져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그저 현상적인 것에 불과하죠.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것 속에는 목적이란 것이 내재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생명체의 자기 목적은 이미 자기의식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의식이 환경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고 반면 단순한 생명체란 환경에 수동적으로 종속하지만, 자기를 유지하고 자기를 목적으로 실현하며 자기에로 되돌아온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생명체 특히 동물에게 이미 ‘자기감정Selbstgefuehl’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 자기감정이 발전된 것이 자기의식이죠.

자기의식과 달리 생명체는 자기의 목적을 의식적으로 추구하지 않습니다. 생명체는 그저 외적인 상황에 대해 관계할 뿐이죠. 그가 왜 그런 상황에 관계하는지 그는 의식하지 못하니, 이 관계는 맹목적이며 기계적인 필연성에 따르는 것(헤겔적 언어에서 이것은 우연성과 일치한다)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생명체는 자기의 목적을 즉 자기 보존을 수행하죠. 이런 관계를 헤겔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따라서 동물의 충족은 이런 대립으로 분열되며, 이성의 본능은 자기 자신을 즉 목적을 발견하지만 동시에 이 목적을 사물로서 발견한다. 그러나 첫째 동물에게서 목적은 목적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밖에 속한다. 둘째 동시에 이런 목적으로서 목적은 대상적이며, 그 목적은 동물에게 의식으로서 자기 속에 속하지 않으며, 다른 오성에 속한다.”(147쪽)

“동물은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즉 동시에 그의 본성은 필연성을 은닉하고, 우연적인 관계의 형식 속에서 서술한다. 왜냐하면 동물의 자유, 또는 동물의 고유성(대자존재)는 필연적인 것에 대해 그것이 우연적인 것인 마냥 관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은 스스로 자신의 개념을 그 존재 밖에 두고 있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이성은 필연적으로 자기의 고유한 개념을 자기 밖에 속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사물로서 직관하며, 이성이 그것에 대립하고, 따라서 뒤집어 본다면 이성과 그 개념에 대립하여 서로 무차별한 것으로서 직관한다.”(148쪽)

이 구절에서 자기의 ‘목적’, ‘필연성’, ‘개념’을 ‘자기 밖에 둔다’거나, ‘사물로서 발견한다’거나, ‘우연성으로 발견한다’는 등 유사한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자신의 목적이 외적인 강제로, 본능적인 것으로 강제된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이런 동물에게서 “행동은 자신이 수행하는 목적에 대해 무차별하고 우연적이 되죠”. 또 이 경우 행동은 전적으로 ‘무법칙적인 것 gesetzlos’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개별적 행동은 다만 수단이지만 그 개별성 때문에 전적으로 개별적이거나 우연적인 필연성(본능이라는 의미)이라는 규정 하에서 나타난다.”(148쪽)

“동물의 행동은 그 자체에서 아무런 내용을 지니지 않은 공허한 효과를 지닐지 모른다. 그런 효과란 기계의 효과와 같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기계조차 목적을 가지고 이를 통해 그 효과는 일정한 내용을 가지기 때문이다.”(148쪽)

사실은 자기의 목적이지만 이를 의식하지 못하므로 강제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거죠. 이런 관계를 헤겔은 ‘자기에게서 목적Zweck an ihm selbst’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an 곁에’ 라는 전치사가 사용된 것이 중요합니다. ‘내재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므로 강제로 여겨진다’는 측면을 그런 전치사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물의 자기보존은 여전히 동물의 목적이므로, 목적은 사실 자기 밖에 속하는 것이 아니죠.

“그의 활동은 그 자체에서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며, 어떤 외적인 것에 의해서 자기내로 되돌아가도록 강제된 것zuereuckgelenkte Thaetigkeit가 아니다.”(149쪽)

4)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물론 관찰하는 이성은 아직 이런 자기목적이 본능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죠. 이성에게 두 가지 계기가 구분됩니다. 둘 다 현존하고 고정된 계기이죠. 양자는 곧 목적과 행동(또는 효과)이죠. 이 두 가지는 외적으로 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사실은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죠. 행동이란 그 목적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찰하는 이성에게 그 행동은 본능적일 뿐이고, 그것이 자기 목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내재적으로 관련되어 있기에 “어둡고 피상적인 방식으로” 이런 연관이 나타나기는 하죠.

이 관계를 헤겔은 쌍을 이루는 두 가지 반성 개념 즉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로 규정합니다. 목적이 감추어져 나타나므로, 그것이 내적인 것이 되죠. 이런 경우 내적인 것이 어둡고 피상적으로 나타나므로,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의 표현이라”는 법칙이 확립됩니다. 이런 법칙은 이전의 환경결정론의 법칙과 구분됩니다.

환경결정론에서 법칙은 두 가지 서로 무관한 존재 즉 환경과 유기체의 관계이었습니다. 사실 유기체의 자기유지라는 내적 목적과 외적 본능적 행동의 원래는 일치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관계가 어둡고 피상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니, 그 차이는 ‘내용은 동일한데 형식만 다르다’는 관계에 불과합니다. 동일한 내용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즉 하나는 내적인 것으로 다른 하나는 외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거죠.

“유기체적 존재가 불가분적으로 그 근거에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내용으로서, 양자에게서 동일한 것으로서 놓여 있다. 따라서 대립은 다만 순수한 형식적인 대립일 뿐이다.”(149쪽)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의 표현이라는 이 법칙은 나중에 인간의 인상이나 골상에 관한 다양한 학문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죠. 범죄자에게 고유한 인상과 골상을 찾으려는 시도는 마침내 유태인에게 고유한 인상과 골상을 찾으려는 시도로 발전되었죠. 헤겔은 나중에 이런 시도를 모조리 비판합니다.

유사한 관점인데, 풍수지리학도 유사한 관점입니다. 풍수지리학은 산에도 남성 산(예를 들어 장군봉)과 여성 산(옥녀봉)이 구분된다고 합니다. 또 산에도 복을 쌓는 산(예를 들어 노적봉)과 화를 주는 산(대개 바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산들, 관악산 등)이 있다고 보죠. 이런 풍수리지리학도 산세라는 산의 외적 형태에 산이 지닌 어떤 정신이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상학과 골상학, 그리고 풍수지리설은 모두 유기체에 관한 이성의 관찰에서 나오는 결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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